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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올리기 > 소설

<중편> 댁네 가정은 안녕하신가 20
four진07-30 13:23 | HIT : 79
20.  형사

  토요일 아침 내내 분주했다. 은제가 시설에 입소해 있는 동안 필요할 만한 것들이 무엇인지 이 것 저 것 챙겨서 큰 비닐 백에 담았다. 얼마나 있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빨리 데려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판단으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누구의 충동질에 의해서건 간에 은제의 선택이 전제되어야 했다.
  그녀의 하소연을 들은 성미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가 있으라고 해. 불편하든, 편하든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 또 트집 잡는다. 지난 번 은제 남자 친구 일도 봐라. 만약에 네가 죽자 살자 억지로 끊어놓았으면 그 반발심 평생 갔을 수도 있어. 네가 풀어주고 지켜봐주니까 알아서 돌아왔잖아. 사춘기가 괜히 사춘기니? 평평하지 않은 바닥에 던진 공이야. 어디로 튈지 알 수도 없고, 그게 언제든 내 얼굴로 달려들 수도 있단 말이야.”

  십분 공감하고도 남을만한 말이었다. 어디로 튀어 오를지 모르는 공, 그 공이 지금 그녀의 얼굴에 강타한 셈이었다.
  은제에게 용돈을 주고 오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또래 애들과 있다보면 군것질도 해야 할 것이고, 필요한 것이 생길 수도 있었다. 지갑을 뒤져보니 달랑 만 원짜리 한 장 뿐이었다. 재래시장이나, 만 원 이하 금액을 결제할 때에만 현금을 쓰고 나머지는 카드를 사용하다보니 지갑에 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은행부터 들렸다가 은제에게 가야겠다 하는데,
  
“엄마!”

  퍼즐 놀이에 한참이던 은기가 안방문을 벌컥 열고 달려왔다. 은기는 얼른 자신의 휴대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빠 문자 왔어. 어떡해?”

  휴대폰을 받아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은제 전화 안 받네 아빠 2시쯤 데리러 갈 테니까 누나랑 준비하고 있어>

  재근은 이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직접 전화를 걸어서 전할까? 아니면 경찰에게 물어봐야 하나?
  그녀는 은기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아빠 전화나 문자 다시 오면 지금처럼 엄마에게 가져와.”

  그리고 담당이라는 황 형사에게 전화했다. 서은제 엄마라는 사실을 밝히자 황 형사의 말투는 몹시 까칠해졌다.

“그런데요?”

“어제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시기에 최 경위님께 말씀 전해달라고 했었는데 어떻게 되었나 해서요. 오늘 아이들이 애 아빠 만나는 날이었거든요. 데리러 오기 전에 상황이 이렇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해서 전화 드렸던 건데 금방 애 아빠가 애들 데리러 오겠다고 문자가 왔네요.”

“어제는 일찍 퇴근해서 오늘 아침에 얘기 들었습니다. 조사 담당 윤정우 형사가 전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전달은 된 건가요?”

“윤 형사 말로는 아이 아버님에게 전화를 했는데 뭐라고 뭐라고 화를 내더니 끊더라더군요.  전 그것 밖에 못 들었습니다.”

“저어....... 제가 그 윤 형사님이라는 분께 직접 여쭤볼 수 있을까요? 전화번호가.......”

  그녀는 최대한 공손히 부탁했다. ‘담당 형사’라는,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가 갖고 있는 지위도 지위였지만 응대하는 말투가 듣기 거북할 정도로 화가 나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달려드는 그의 대답은 대답이 아니었다.

“이봐요. 애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어머니도 지금 조사 받고 있다는 사실 알아요, 몰라요? 매일 술 마시고......”

  그는 ‘매일 술 마신다’는 말을 빠르게 고쳐 말하며 성을 냈다.

“거의 매일 술 마시고 욕하고 때렸다면서요?”

그녀는 기가 막힌 그의 돌직구에 당황하고 말았다. 지금 당장 조사 받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되고 보니 저도 모르게 항변이 나왔다.

“아니에요. 아이 때리지 않았어요. 술 마신 것 사실이고, 욕설을 아주 안 한 것도 아니지만 절대 때리지 않았어요. 욕도 그렇게 심한 욕도 아니었고........”

그러자 돌아오는 소리는 더욱 가관이었다.

“나에게서 바라는 대답이 뭡니까? 왜 나에게 화를 내는 겁니까? 전화 끊을까요? 내가 그 날 아이 조사 때 같이 있었어요. 아이 입으로 하는 소리 다 들었다고요! 어떻게 할까요? 내가 끊을까요?”

  그는 술 취해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사납게 퍼부었다. 그녀가 묻는 물음에 대해서는 하등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가해자 주제에 다른 가해자에 대해 묻는 것이 고까웠는지, 아니면 항변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형사와 싸우면 불리한 것은 그녀 자신뿐이었다. 가까스로 감정을 수습한 그녀는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변명한답시고 목청을 높였나? 그래서 저러나?’

  그녀는 인내심을 다해 황형사의 하는 양을 듣고만 있다가 목소리를 낮춰 찬찬히 말했다.

“화내는 것 아닙니다. 갑자기 제게 뭐라고 하시니까 저 나름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을 뿐이고, 전 정말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황 형사는 그녀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더 큰 소리로 펄펄 뛰었다.

“애 아버지 조사 끝나고 어머니도 조사할 겁니다! 그 때 항변하세요! 아이 얘기 내가 다 들었으니까 조사하고 죄가 인정되면 처벌을 받아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그녀는 한참이나 넋을 빼고 있었다. 이런 것인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취조 당하는 피의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황 형사는 무고함을 주장하는 타칭 가해자의 인권 따위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가해자를 무섭게 추궁하고 엄하게 닦달을 해서라도 사실을 토설하게 만드는 입장인 것이다.
  공권력의 공포가 이런 것이구나, 억울해도 참아야 하는구나, 아이를 아프게 한 죄가 이토록 큰 것이구나.
  그녀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길 없다는 사실에 더욱 낙담했다. 이 죄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아야 할 만한 죄인가, 공권력이 무어라고 남의 집안 일에 끼어들어 이토록 한 가정을 갈기갈기 찢어놓는가 하는 분노가 들끓었지만 응대할 방법을 몰랐다.  
  명치가 다시 아팠다. 넘어가지 않는 아침밥을 꾹꾹 눌러가면서 먹은 이유는, 자신이 건강해야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 거라는 책임감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숨조차 넘기기 힘들었다.
  학교에서도 그녀에게 보호자라 말하면서 가해자로 인식했다. 담당 형사는 아예 대놓고 상습 폭행범으로 낙인찍었다. 그들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무조건 넌 죄인이니 납작 엎드려서 법의 심판을 받으라 했다. 앞으로 더 잘 하고 아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살겠다고 한 들, 그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 하니 할 말이 없었다. 가혹하다, 너무 가혹하다, 해도 그것은 그녀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정작 도망치고 싶은 사람은 그녀였다. 도망칠 수만 있다면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 미국에 있는 현희에게로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현희라면 그녀의 방문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을 다 듣고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부담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현재도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는 형편이었다. 연고자도 없는 타지에서 홀로 악전고투하고 있을 동생에게 더 이상 짐이 될 수는 없었다.
  이때 은기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의 손에 들린 휴대폰 벨 소리가 맹렬히 노래를 불렀다. 직감적으로 재근이라는 것을 알았다. 올 것이 왔구나!
  그녀는 조용히 아이의 손에서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내보냈다.

“나야.”

“여보세요?”

  재근은 그녀가 대신 전화 받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되물었다.

“나야. 은기 전화 내가 받았어.”

  그제야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짧게 말을 끊었다.

“왜?”

  목구멍으로 넘긴 숨이 명치에서 다시 걸렸다.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경찰에게서 전화 안 왔어?”

“경찰? 무슨 소리야?”

  그녀는 그간의 일을 소상히 전했다. 은제와 싸운 일, 그동안 화해하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 한달 보름 만에 신고가 들어간 일, 그리고 그녀는 가정폭력범으로, 그는 성폭행범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추측대로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경찰이 전화했을 때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화를 내면서 끊었다고 했다.

“그 전화 보이스피싱 아니야. 실제 상황이야.”

  그는 발끈했다.

“내가 무슨....... 내가 무슨 성폭행범이야! 당신도 알잖아! 은제 어렸을 때부터 내가 안아주고 다리 길어지라고 매일 밤 다리 주물러주고, 예뻐서 엉덩이도 토닥이고 한 거지, 아무렴 내가 어떻게 내 딸한테.......! 내가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해! 아빠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서 조사원 왔을 때 당신 그런 사람 아니라고 말했어. 하지만 요즘 미투니, 가정폭력이니 해서 사회적으로 날카롭잖아. 아무래도 그냥은 넘어갈 것 같지 않아.”

  기가 막히다는 듯한 장탄식이 수차례 휴대폰을 타고 전해졌다. 그녀는 그 심정을 충분히 공감했다. 자신보다 더 느닷없고, 황당하고, 충격적일 수도 있으리라.
  그녀는 그에게 황 형사 전화번호를 불러주며 절대 화내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오늘 자신이 당한 억울한 상황도 전하며, 그러니 더욱 화를 내지 말라고 했다. 그는 알았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번에는 그녀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차분한 음성이었다.

“형사하고 통화했어. 조사 날짜 잡히면 전화할 테니 나오래.”

“화 안 내?”

“응. 은제는?”
  은제를 시설로 입소시키기 직전 한 선생이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은제는 기관에서 강제로 시설로 입소시킨 것으로 해라, 엄마인 자신도 시설 위치를 모른다고 해라, 아버지를 피해서 간 것이니 절대 시설 위치를 가르쳐줘서는 안 된다. 그녀는 한 선생이 시키는 대로 말했다.
  다행히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난 은제가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줄 몰랐어.”

“하지 말라고 말했다던데.......”

“장난하는 줄 알았어.”

“은제가 당신 많이 무서웠나봐. 그래서 싫다는 표현도 제대로 못했겠지.”

  그는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결단을 내리 듯 말했다.

“난 은제 엉덩이 안 만지면 되고, 당신은 술 안 마시면 되지 뭐. 은제가 싫어한다면 안 하면 되잖아.”

“그래.”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연락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행이었다. 재근이 빨리 상황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듯 해서, 왜 술 마시고 아이와 다퉈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었느냐고 화를 내지 않아서.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직접, 황 형사에게 묻기 전에 그에게 전화 해 언질을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의논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는 또 얼마나 답답할까?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날까? 그로서는 아마 상상도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제 딸을 성폭행한 파렴치한 아비로 몰렸으니 그 마음 오죽 아플까? 그녀처럼, 아니 그녀보다 훨씬 더 아플 수도 있었다.  
  잠시 후, 은기에게 그의 문자가 다시 왔다. 그는 의연했다. 아니, 적어도 그런 투의 문자였다.

<은기야 누나 조금 있으면 올 거야 누나 돌아오면 우리 다시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재밌게 놀자 아빠 우리 은제랑 은기 아주 많이 보고 싶어 사랑해.>

  은제로부터도 재근의 문자가 전달되었다.

<은제야, 아빠 화 하나도 안 났어 아빠가 미안해 은제가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줄 몰랐어 앞으로는 안 그럴게 기다릴 테니까 나중에 마음 풀리면 전화 줘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해>

  그녀는 그의 진심을 믿었다. 그는 자식을 극진히 사랑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버지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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