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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댁네 가정은 안녕하신가 18
four진07-24 17:02 | HIT : 79
18.  학교  

  모르는 전화번호가 뜨면 겁이 났다. 이번에는 은제 다니는 K여고 생활안전부 교사 한치구라고 했다. 남자였으니 상담교사는 아니었다. 예의를 다하는 듯 했지만 딱딱한 어투였다. 은제는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찍 등교한 상태였다.

“은제가 아동보호시설에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보호자인 어머님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또 그 얘기?

“어제 은제와 얘기 다 끝냈는데요.”

  하지만 한 선생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은제가 몹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찾아와 자신에게 화풀이라도 할까봐......”

“그렇게까지 분별력 없는 사람 아니에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의 일이니 만약 이성을 잃고 쫓아오기라도 한다면 제가 막겠습니다. 은제가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요.”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요? 집에 도움을 주실만한 분이 안 계신다고 하던데......”

“안 되면 문 걸어 잠그고 경찰이라도 부르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이를 놔두세요. 고3입니다. 곧 시험이에요.”

“저는 이번 일에 대해 내용을 정확히 모릅니다. 관련자들만 알게끔 비밀 유지가 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상담 선생님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하시네요.”

  또 그 망할 상담 교사. 그 미친 년이 왜 또......
  그녀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참았다. 은제가 다니는 학교였다. 전학을 시키지 않는 한, 학교에 가는 순간부터 아이는 학교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엄마인 그녀조차 가정 폭력으로 조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전학도 불가능할 것이다. 일단 이 일이 잘 마무리되어야 했다. 그래서 간곡히 말했다.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애 아빠 뿐 아니라, 저도 이번에 가정폭력 문제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전 아이를 때리지 않았습니다.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인정하지만요. 그런 것들이 다 죄가 된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 것은 싫습니다. 안 됩니다. 그냥 제가 지키게 해주세요.”

“그 마음 압니다. 저도 고2 딸을 키우고 있는걸요. 아이들과 안 싸우면서 살 수는 없지요. 말을 안 들을 때는 소리도 지르고 머리도 한 대씩 쥐어박죠. 그런데 무엇보다도 은제의 의사가 그러니까요. 직접 오셔서 은제와 얘기해 보시는 건.......”

  한 선생은 처음의 딱딱했던 어투를 바꿔 다소 찬찬한 음성으로 그녀를 설득했다. 현수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듯 한 한 선생의 말이 고마웠다.
  세상에 문제 없는 가정이 어디 있으며, 다툼 한 번 없는 집안이 어디 있겠는가.
  2년 전 3층에 살던 여자는 남편의 칼부림에 놀라 아이들과 함께 그녀의 집으로 도망쳐온 적도 있었고, 전 동대표였던 집에서는 여자가 하자보수금을 모두 털어먹는 통에 남자가 그 짐을 다 떠안느라 한동안 사네 마네 했으며, 바람 난 여편네 때문에 매일 술 마시고 가재도구를 부수던 앞 동 총무네는 아이들 생각해서 다시 잘 살아보자고 다짐한 지 한 달 만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기도 했다. 그들 모두가 그녀와 전혀 모르는 사이였을 때는 더 없이 행복해 보이던 가정이었다.
  고교 동창들 중에도 속내를 다 털어놓고 지내는 친구들이 모이면 속 썩이는 가족들 얘기가 대화의 태반이었다. 철없는 시어머니 때문에, 술만 마시면 새벽인 남편 때문에, 폭력적인 고등학생 아들 때문에, 집 나갔다가 애 달고 들어온 딸 때문에 속 앓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그들 모두 가족들로 인해 생긴 곪은 상처, 터진 상처, 아문 상처, 도진 상처를 가족 안에서 치유하려고 노력했다. 대화하고, 안 되면 부딪치고 싸우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아픔과 실수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다 보면 언젠가 더욱 단단하게 결속할 수 있겠지, 하고.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가족의 극히 사적인 일들이 공권력에 의해 제재를 받아야할 상황이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들의 개입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차를 몰고 K 여고로 향하는 와중에 문득, 오늘 학교에서 상담 교사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머리끝이 쭈뼛해지면서 열이 올랐다. 왜 멀쩡한 집안을 풍비박산 내려고 하느냐고, 화를 낼까? 댁네 가정은 얼마나 모범적인 가정이냐고 따져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네가 뭔데 함부로 신고를 해서 이 난리를 치르게 했느냐고 뺨이라도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자신은 없었다. 아이에게 잘못했던 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녀는 아이의 모든 행동을 책임져야 할 보호자였기 때문이다.
  차를 학교 건물 뒤편에 주차하고 현관으로 들어서자 은제 또래 아이들이 청소를 하거나, 쫄쫄쫄 몰려다니며 장난치는 모습이 보였다. 마냥 파랗고 싱그러운 아이들 속에 혹여 은제가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렸는데 없었다.  
  한 남자가 1층 구석에 있는 ‘생활 안전부’ 문을 열고 나오다가 그녀를 발견하자 반갑게 맞았다.

“은제 어머님이시죠? 들어오시죠.”

  여러 교사들의 책상이 창가를 따라 일렬로 늘어져 있고, 한가운데에 회의나 상담을 위한 긴  탁자가 놓여 있는 방에는 한 선생 뿐이었다.
  한 선생은 50대로 보이는 키가 작고 마른 체형, 며칠을 집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까칠한 수염을 턱 밑에 달고 있는 털털한 외모의 남자였다. 교사라고 하니 그런 줄 알지, 딱히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외모처럼 수더분한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긴 탁자 앞에 그녀를 안내한 그는, 음료수와 과자를 내놓으며 친절히 대했다.

“음료수 드세요.”

“학생들이 요즘 이 과자를 좋아해서 가끔 사 놓는데 드셔보세요.”

  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탁자 앞에 앉으며 그가 내민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받아 들었다.
  그는 맞은편에 앉더니 같은 부모로서 그녀의 입장을 모두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다.

“이번에 많이 놀라셨죠? 어디 애들이 부모 마음 같나요? 제가 어머님을 믿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입발림 소리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세상 모두가 그녀를 ‘가정 폭력범’으로 몰아 손가락질 하고 있다는 두려운 감정에 다소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는 제자들에게도 좋은 교사 같았다. 대화 중에 무턱대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학생들이 있어도 나무라지 않았다. “쌤~” 하고 부르면 밝게 돌아보며 대꾸했고, 일일이 상대해주다가 내보냈다. 그녀의 학창 시절 교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세상이 변하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녀의 학창 시절인 7,80년대에는 학교에서 교사들의 지위란, 절대적이었다. 교사에게 맞는 건 다반사였고 말대꾸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까라면 까고, 구르라면 굴러야 하는 군대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히 누구도 교사를 신고하지 않았다. 큰 문제가 없는 한, 교사의 위치는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있어서 신성불가침이었다.
  물론 부모를 대하는 자식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항해도 그 한계가 있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서 꼰대일 수 밖에 없었을 터. 하지만 부모의 꼰대짓, 엄한 훈육, 매질이나,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정도 일로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예전의 대한민국의 정서라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지금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 몰랐다.  
  
“이걸 한 번 보시죠.”

  한 선생은 준비해 놓았던 팸플릿 한 장을 그녀에게 내보였다.

“이 곳이 아까 말씀드렸던 보호 시설인데요. 가정형 시설이라 깨끗하고 입소 기준도 까다로워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쉼터와는 다릅니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팸플릿을 열어보았다. 사진에는 회의실, 휴게실, 이층 침대가 있는 침실 등 깔끔한 방들이 하나씩 나열되어 있고 컴퓨터까지 갖추어져 있는 방까지 따로 있어 생활하는 데에는 큰 무리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은제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

“저어......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보낼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애 아빠가 그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러자 한 선생의 태도가 돌변했다.

“만의 하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합니까? 이 쪽이 나으실 겁니다. 안 그러면 공권력이 투입돼서 아이를 억지로 쉼터에 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쉼터에는 가출 학생들 같은 불량 학생들도 섞여 있어서 아이를 위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아버님이 찾아오시면 어머님과 싸울 수도 있으니 그런 것보다는 일단 이 쪽으로 아이를 피신시켜 놓으시는 것이 안전할 거라고........상담 선생님께서 잘 알아보고 이미 시설에 말씀 다 해놓으셨다고 하니까......”

  상담교사라면 이가 갈렸다. 그 여자가 왜 이토록 아이를 시설에 입소시키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부모 앞에는 낯짝도 디밀지 않는 것이 참으로 가소로웠다.

‘부모는 만나기 두려운 거냐? 한 대 맞을까봐? 그 정도 일인 것은 아니?’

  그러면서도 답답했다. 자신을 같은 부모로서 이해한다고 여겼던 한 선생조차 ‘공권력’ 운운하는 소리에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어머니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는 절차상 하는 소리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마침 은제가 들어왔다. 은제는 엄마를 보더니 조금은 미안한 지 헤헤 웃었다.
  그녀가 물었다.

“은제야, 네가 보호 신청한 거니?”

“응.”

“왜?”

“아빠가 집으로 찾아오면 어떡해? 난 지금도 무서워. 학교로도 찾아올까봐.”

“엄마가 지켜줄게.”

“엄마가 날 어떻게 지켜? 아빠가 엄마보다 힘이 센데.”

  그녀는 낙담했다. 은제는 엄마가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고 불신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피해자라 분류되는 아이가 시설에 가겠다고 하니, 아무도 말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할 수 없이 그녀는 한 선생을 돌아보았다.

“이 곳에 가면 얼마나 있어야 하나요? 아무 때라도 제가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데려올 수 있나요?”

“그럼요. 당연히 어머님이 보호자니까요.”

  보호자? 말이 보호자지, 그녀는 피의자 취급을 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부모인데도 보호자로서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한 선생은 바로 책상 앞으로 가 시설에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 그녀는 은제를 보았다. 은제의 표정은 그저 이런 상황이 얼떨떨해 보이기만 했다.

“잘 지낼 수 있겠어?”

“응.”

“만약 갔다가 집에 오고 싶으면 바로 전화해.”

“알았어.”

  캠프라도 가는 양, 가볍게 대꾸하는 은제의 태도에 그녀는 명치 끝이 찌르는 듯 아팠다.
  잠시 후, 한 선생이 탁자 앞으로 돌아왔다. 뭔가 얘기가 잘 안 되었는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처한 표정이었다.

“이상하네요. 상담 선생님이 이미 얘기를 다 해놨다고 했었는데...... 학교장 추천서도 필요하고, 어떤 상황인지부터 확인을 해야 입소 허가가 난다고도 하고........”

  어이가 없었다. 얘기 다 해놨다고, 지금 당장 안 보내면 무슨 사달이라도 날 것처럼 부모인 그녀에게 ‘공권력’ 까지 입에 올리며 닦달하던 그의 말에 실소를 터뜨릴 뻔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아이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가 앞서서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아이를 잘 다독여서 데리고 가기만 하면 되리라.
  그런데 한 선생은 시설에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뭐라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여겼는지 그녀를 또 종용하기 시작했다.

“애 아버지께서 오늘이라도 찾아오시면 어쩝니까? 접근 금지 신청이라도 하시지요.”

“아니, 지금 애 아빠가 이 상황에 대해서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접근 금지 신청을........?”

“그러니까 미리 해둬야지요.”

  한 선생은 이번에는 경찰에 전화를 해서 접근 금지 신청을 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접근 금지 신청을 하려면 본인이 직접 와야 한다는 말을 그녀에게 전달했다. 그녀의 답을 듣지 않고 한 행동이었다.

“뭐 그렇게까지......”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아이도 그러기를 바랐다.
  그녀는 은제를 태우고 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아이 아빠에 대해 접근 금지 신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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