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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댁네 가정은 안녕하신가 17
four진07-20 20:54 | HIT : 75
17.  책임

  그녀는 침대 위에 똑바로 누운 채 천장만 응시했다.
  조사원들의 1차 조사는 끝났지만 곧 경찰의 조사도 따로 있을 거라고 했다. 다시 부를 수도 있다고 했다. 재근도 곧 조사를 받게 될 거라고 했다.
  그녀는 대부분의 사실을 시인했다. 술을 자주 마셨고, 아이와 다툼이 있어 마음 상하게 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에 대해 충분히 사과했고, 앞으로 고쳐나가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만약 그 사과가 아이가 생각할 때 부족하다면 죽는 날까지라도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잘 하면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여전히 자신의 행동이 공권력이 개입해야 할 정도의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신고는 들어갔고 그녀는 조사를 받아야 했다.
  재근이 받을 마음의 상처도 걱정이 되었다. 딸을 성추행한 애비라니....... 그런 치욕스런 오명을 쓰고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그토록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마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할 것이 뻔했다.
  게다가 아침에 밝은 표정으로 나갔던 은제를 떠올리면 이 상황들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까지 벌인 것인지 제 딸이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참기 힘든 분노까지 일었다.
  당장 전화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수업 시간 중에는 휴대폰 소지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통화는 불가능했다. 휴대폰은 1교시 직전에 일제히 담임교사에게 제출했다가 하교 시간에 받아온다고 알고 있었다. 더러 못 쓰는 휴대폰을 대신 내고, 슬금슬금 쉬는 시간마다 휴대폰을 열어보는 아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다. 하지만 은제는 그 정도로 영악한 아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빨리 하교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물어봐야 했다. 왜 신고했는지? 뭐가 불만인지?
  한참을 누워 있는데 은기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엄마, 뭐 해? 어디 간다고 안 했어?”

“가긴 어딜 가. 엄마가 갈 데가 어딨.......”

  하는데 오늘 면접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미 면접을 보러 가기로 한 시간으로부터 30분이나 지난 상태였다. 왜 안 오느냐는 전화는 없었다. 실력도 알 수 없는 ‘초짜’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기다려주는 고용주는 없는 것이다.
  한숨만 나왔다. 당장은 현희가 보내준 돈으로 급한 대로 과외비는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재근이 보내주는 양육비로는 아이들 먹이고, 등록금 대고, 학원비, 과외비, 소소한 생활용품까지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다만 얼마라도 벌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어미로서 면이 서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은기의 간식거리를 챙겼다. 소시지와 방울토마토를 주니 거실 바닥에 엎어져 조용히 휴대폰을 갖고 노는 은기였다. 그런 은기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천진한 아이는, 이 조용한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얼마나 심각한 지 알 턱이 없었다. 그 안에서 홀로 잘 놀고 잘 버티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게 더 짠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다 문득 아이의 성장이 두려워졌다. 저 아이도 커서 엄마를 적대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사고라도 치면 어쩌나? 여자 아이의 사고와 남자 아이의 사고는 방향성이나 그 폭발력부터가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벌써부터 그 조짐이 보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하지 못하면 펄펄 뛰며 화를 냈다. 저토록 착하고 귀여운 아이가 말이다.
  그녀의 몸이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이제 아무 것도 자신할 수 없었다. 자식에 대한 믿음도, 무조건적인 사랑조차 이런 상황에서라면 영원하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만큼 배신감이 컸다.

“엄마, 누나 언제 와?”

  심심했는지 은기가 다가와 물었다. 시계를 올려다보던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수학 과외 시간이 10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은제는 아직까지 귀가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묵묵히 기다렸다가 조용히 불러서 물어야겠다, 화 내지 말고 일단 차분히 물어보기나 해야 겠다 했는데 별 수 없이 급하게 전화를 해야 했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는 은제에게 그녀는 차갑게 물었다.

“어디야?”

“세영이네 집.”

  어이가 없었지만 화를 내지 말기로 했다.

“수학 과외 있는 것 잊었어?”

“알아.”

“그런데 왜 안 오고 거기 가 있어?”

  그런데 은제의 대답은 끝내 그녀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에 불을 당기고 말았다.

“나 보호 시설에 들어갈 거야.”

“뭐?”

“나 같은 아이들 보호해주는 곳이 있다고 했어.”

“누가?”

“상담 선생님이.”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언뜻 한달보름 전 모녀간 싸움이 있던 바로 다음 날, 은제가 상담 교사를 찾아 갔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너무 속상해서 상담 교사와 상담을 했다고, 상담 교사 말로 기관에 도움을 청하면 엄마에게 알콜 중독 치료를 받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은제는 조심스럽게 꺼냈었다. 당시는 어이가 없었을 뿐이다. 자기가 뭔데 사람을 알콜 중독자로 분류하고 치료를 받게 하겠다는 건지 콧방귀만 뀌었다. 그래도 은제의 걱정하는 바를 알아 정히 엄마가 걱정되거들랑 일단 지켜봐 달라고 했다. 약속을 꼭 지켜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지만 속내 알콜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일이 지금에 와서 터진 게 분명했다.

“너 그렇다고 사전에 말도 없이.......!”

  그녀는 일단 전화를 끊고 수학 과외 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뒤, 다 온 길을 돌아가게 했다.
  다시 은제에게 전화를 하려니 속이 끓었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래도 이대로 아이를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가 전화를 받아준다는 것이었다.

“대체 엄마가 뭘 잘못했니? 요즘 엄마 약속 잘 지켜내고 있었잖아.”

“엄마 얼마 전에 약속 어기고 또 혼자 술 마셨잖아.”

“딱 한 번이야. 우진씨랑 다툰 날....... 그 외에 엄마가 노력하는 것 안 보여?”

“안 보여.”

  은제는 이상하리만치 단호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자꾸 의심이 들고 화가 났다.

“시설 들어가면 너 학교 보내주고 밥 해 먹이고 대학 보내준대?”

“거기서 밥도 주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고 했어.”

“그래서? 집보다 거기가 더 편할 것 같아?”

“응. 가고 싶어.”

“가서 어쩌려고? 너 거기 가 있으면 뭐가 달라져? 네가 바라는 게 뭔데?”

“엄마가 바뀌길 바라. 엄마가 술도 약속대로 줄였으면 좋겠고.......”

“노력하고 있잖아!”

“몰라. 난 안 보인다고!”

“그래서 신고했니? 엄마 알콜 중독이라고? 가정 폭력범이라고? 엄마가 남자 친구랑 잠자리한 얘기까지 다 떠벌이면서?”

  화가 격해지자 소리를 질렀고, 급기야 아이의 고함 소리가 휴대폰을 뚫고 터져 나왔다.

“아냐! 나 신고 안 했어! 그 날 이후 상담 선생님 만난 적도 없고 부른 적도 없어! 갑자기 오늘 상담실로 오라고 해서 갔을 뿐이야! 경찰도 오고, 기관이란 곳에서도 오고. 그 사람들이 나 앉혀놓고 그 전에 말했던 얘기들 다시 말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나도 무서웠다고!”

  은제는 서럽게 흐느꼈다. 그 울음 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절절히 전해졌다. 그 고운 눈에서 흐르고 있을 굵은 눈물방울이 떠올라 명치가 쑤셨다. 그녀는 연신 밀려나오는 탄식을 말리지 못하고 무겁게 토해냈다.
  예상이 맞았다. 상담 교사의 짓이었다. 기왕 신고할 거면 당시에 터뜨리지 왜 한 달 보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겨우 다독여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가정에 돌을 던진 건가 알 수 없었지만 은제는 아니라니 천만다행이었다.
  배신감마저 들었던 분노는 사라지고 안타까움이 들어찼다. 이왕 엎질러진 물, 퍼 담지 못할 거면 다시 채우자 싶었다.
  그녀는 은제의 울음소리가 잦아지기를 묵묵히 기다렸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엄마가 다 잘못했어. 엄마가 미워서 했든, 화가 나서 했든 네가 말한 엄마의 행동들, 다 인정할게. 그리고 엄마가 노력하고 있었는데도 아니라고 하니, 더 노력할게. 하지만 네가 엄마가 바뀌기를 바라고 시설로 들어가 버린다면 엄마는 절대 안 바뀔 거야. 너도 없는데 내가 왜 노력하니? 난 그냥 마시고 싶은 대로 술 마시고 그러고 살 거야.”

“협박하지 마.”

“협박 아냐. 그럴 필요 없으니까 안 하는 거야. 너랑 약속한 건데 네가 없으니 지킬 필요 없는 거잖아. 너도 네 멋대로 하는데 나도 내 멋대로 살다가 죽어도 할 말 없잖아.”

“은기 있잖아.”

“은기는 은기고, 너는 너고.”

“.........”

“돌아와.”

“엄마 화났잖아.”

“엄마 화 났을까봐 안 들어온다고 한 거야?”

“.........응........”

“엄마 화 안 났어. 화 안 낼게. 너 잘못 없어. 엄마가 데리러 갈까?”

“.........잠깐. 상담 선생님이랑 얘기해 보고 전화할게.”

  또 상담 선생? 왜 그 자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거냐? 그 자가 뭔데 허락을 받으려는 거니? 그 자가 널 지켜준다고 하디? 그 자가 널 위해 뭘 해줄 수 있는데?
  하지만 말았다. 그건 차후에 따져도 될 일이었다. 일단 은제를 집으로 들어오게 하고 안정시키는 게 관건이었다. 고3이었다. 곧 중간고사고, 앞으로 몇 달간은 대학을 가기 위해 피 터지게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험한 일에 휘말리게 한 죄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리고 남의 일이라고 멋대로 일을 터뜨린 상담 교사의 잘못이었다.
  잠시 후, 은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담 교사가 말렸다고, 하지만 자신이 집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그러자 상담 교사 말이, “무슨 일 있으면 다시 나와. 내가 시설 알아봐 줄 테니까.”   미친년.
  1시간 후 은제는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집에 돌아온 은제를 붙들고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 힘든 하루를 보냈을 아이에게 얼른 씻고 쉬라고 했다. 공부는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그동안 공부하느라 모자란 잠 푹 자라고 했다.

“나머지 일은 엄마가 다 책임질 테니까 넌 이제 신경 쓰지 마.”

  그녀의 진심이었고, 책임져야 할 일이 뭐든 다 책임지리라 다짐했다.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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