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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올리기 > 소설

<중편> 댁네 가정은 안녕하신가 16
four진07-19 18:20 | HIT : 83
16.   범죄자들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은제를, 자신의 아이를 폭행하다니, 그것도 자신이......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받은 지 2시간 후,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두 명의 조사원들이 왔다. 2,30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였다.
  여자 조사원이 그녀에게 명함을 건넸다. 조사원 김성희라는 이름 아래 기관의 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아동학대 신고 전화 112’라고 되어 있었다.
  지난 번 은제 실종 신고를 했을 때 경찰과 마주 앉았던 식탁 앞에 조사원들과 마주앉은 그녀의 가슴이 당시와는 사뭇 다른 심정으로 방망이질 쳤다.
  막 은제와 상담을 마치고 왔다는 김조사원의 첫 말은 ‘혹시나’ 했던 대로 ‘술 문제’였다.

“술을 자주 드시나요?”

  그게 이유인가? 그녀는 순순히 대답했다.

“예. 좀.......”

“얼마나 자주 드시나요?”

“그 전에는 2,3일에 한 번 정도 마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고 은제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나요?”

“폭력이라뇨? 아뇨. 그런 적 없습니다.”
“아니면 훈육 차원에라도.......”

“요즘은 훈육 차원이라도 매를 들지는 않습니다. 먹힐 나이가 아니죠.”

“마지막으로 매를 든 것이 언제인가요?”

  조사원의 물음은 구체적이고, 간결했다. 그에 대한 대답도 구체적이었지만 짧지는 않았다.

“중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방학식 날 성적표를 달라고 했더니 개학날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리 믿고 있는데 얼마 후, 은제 친구와 그 어머니가 놀러왔습니다. 이런 저런 아이들 얘기를 하다가 성적표 얘기가 나왔지요. 그 때 알았습니다. 이미 성적표를 받았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다지 성적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터라, 시험을 못 봐서 보여주기 싫었나보다 싶었지요. 그런데 다음 날,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또 다른 거짓말이 들통 났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의 종아리를 몇 대 때리고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게 마지막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통 믿지 않는 눈치였다. 조사원은 이번에는 폭행과 욕설에 대해 물었다.

“술 마시고 식탁을 엎는다든가, 욕설을 한다든가 하지 않으셨나요?”

  아마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의 일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아, 한 달 반 쯤 전에 제가 아이와 심하게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화가 나서 식탁을 엎으려고 했지만 밑에 전기선이 얽혀 있어서인지 은제가 막아서인지 이 정도 들었다가 놓은 것이 다입니다.”

  그녀는 당시 일을 떠올리며 식탁을 10cm정도 드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리고 대답을 이었다.

“욕은....... 욕을 아주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어떤 욕을 합니까? 구체적으로.......”

“지랄한다, 미쳤구나....... 그 정도입니다.”

“그 때도 술을 드셨나요?”

“예.”

“얼마나 드셨죠?”

“2 병정도....... 하지만 다음 날, 아이가 장염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일이 있었는데 싸운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건가 싶어서 깊이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술이 문제인 것 같아서 은제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술을 끊고 싶지는 않다, 대신 줄이겠다, 친구나 손님 왔을 때만 마시고 양도 정해놓고 적당히 마시겠다. 이후 계속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사실이었다. 한달보름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가끔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일찌감치 잠을 청하는 한이 있어도 약속은 지키려고 했다. 다만, 얼마 전 우진과 가볍게 다툼이 있었는데 그 날 조용히 한 잔 마시기는 했다. 소주 딱 한 병이었다. 그 정도는 은제도 이해해주리라 여겼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아이가 신고를 한 건지, 그것도 요근래 은제와 싸운 일도 없었고, 아침에도 밝은 표정으로 학교에 갔던 아이가 왜?
  그런데 다음 질문을 듣는 순간, 그녀는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남자 친구가 있으시죠?”

“예.”

“그 친구분과 잠자리를 하는 소리를 아이가 들었다던데.......”

  잠시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그것도 문제가 되는 것인가? 정서적 학대라고 할 건가? 누가 일부러 들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과 밤에 섹스를 한 것도 죄인가? 그 소리를 들었다고 그걸 또 남에게 말했나? 그렇게 내밀한 얘기까지?
  어이없음을 넘어 이제 슬슬 분노가 치밀어 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대답은 차분했다. 죄라고 인정할 수 없기에 못할 말도 없었다.  

“잠자리.......했습니다. 하지만 들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이혼 후 힘든 시기에 만난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 잠자리도 했습니다. 섹스를 할 때 소리를 지르거나 유난스럽게 구는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언젠가 은제가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그 소리가 뭔지 알아서 들었다고 하는 건지, 몰라서요. 하지만 일단 들었다고 하니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솔직히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섹스는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교감하는 육체적 방법이다, 하지만 이 행동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어른이 되면 알 수 있다, 네가 어른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섹스를 하게 될 것이다, 함부로 몸을 굴리지만 않는다면 섹스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라고요. 하지만 어쨌든 다음부터는 조심하마, 했고, 그 때 아이가 충분히 이해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은제가 저에게 다른 친구들 경험담도 들려줬으니까요.”

“친구들 경험담이라면.......?”

“교성이요. 또는 살이 맞닿는 소리. 섹스 중에 나는...... 다른 아이들도 귀가 있으니 들을 수 있었던 거죠. 제 부모들이 내는 소리를 말이에요.”

“아........”

  당당해지리라 했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낯이 붉어졌다. 이상하게 구차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구구절절 말하고 있는 게 모두 변명만 같았다. 했다, 안 했다, 그것만 대답하면 되는 것을  오해가 생길까 싶어 설명을 길게 하다보니 사족이 되고, 그게 더 사람을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죄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변명을 꼼꼼히 듣고 있던 김 조사원이 이번에는 방향을 바꿨다.

“이혼은 언제쯤 하셨나요?”

“한 5년쯤 전입니다.”

“아이가 아버지를 자주 만나나요?”

“2주에 한 번씩, 다른 일 없으면 아이 아버지가 토요일에 아이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데려다 줍니다.”

“아이가 아버지를 무척 무서워하는 것 같던데요.”

“어려서부터 많이 무서워하긴 했습니다. 물고빨고 할 정도로 아이들을 예뻐하긴 하지만 한 번 야단칠 때는 무섭게 야단을 치는 편이거든요. 아마 가부장적이고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그렇게 해야 아이들 교육이 되고, 그게 아버지 노릇이라고 아는 사람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아이의 엉덩이를 만지거나 허벅지 안 쪽을 만졌다던데요.”

  이번에도 당황스러워서 곧바로 말을 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일도 문제였지만, 은제가 했다는 아빠에 대한 증언이 그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 미투 운동이고 가정폭력이고 말이 많아서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미투 운동’이라면 그녀도 TV와 인터넷을 통해 많이 들어 알고 있었다.
  미국 헐리우드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한 제작자의 성폭행과 성추행이, 현직 유명 스타들에 의해 하나둘 폭로되면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이 나라의 문화 예술계와 정치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그야말로 사회 혁명과도 같이 무섭게 확산되었다.
  이 전까지는 가해자의 권력이 두려워서, ‘네가 꼬리친 것 아니냐’는 여성 혐오적인 비난이 두려워서 쉬쉬하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나도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나도’ ‘나도’ 하며 폭로한 내용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을 통해 터져 나왔고, 이에 따른 가해자들이 생겨났다. 이제는 의혹만으로도 ‘가해자’라 지목된 자는 사회적 지탄은 물론이거니와, 업계에서 매장될 지경이었다.
  가장 이슈가 되었던 사건은 사회적으로, 예술적으로 존경받는 한 시인의 사례였다. 매 해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유명했던 시인을 성추행범으로 ‘미투’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동종 업계 여류 시인이었다. 여류 시인이 폭로한 가해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술자리에서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자위 행위를 했다는 둥, 성기를 내보였다는 둥 그의 입에 담기도 힘든 행위들이 그동안은 천재 예술가의 기행 정도로만 치부되다가 드디어 성추행으로 온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 것이다.
  폭로 이후, 시인을 옹호하는 반박 글이 SNS에 오르는가 하면, 그 자신 또한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 며 강력이 부인하고 폭로자들을 고발하는 등 몸부림을 쳤지만 똥물을 뒤집어 쓴 그의 명성은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었다. 교과서에 실린 그의 글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까지 들끓었기 때문이다.
  공인이자,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의 경우는 그 잣대가 더욱 극단적이었다. 누구라고 하면 다 알만한 남자 연예인들이 줄줄이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둔갑했다. 지인, 후배, 제자들을 상대로 성추행하고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난 그들은, 그 결과 사회에서 매장되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정치인은 정치 생명이 끊겼고, 사업가는 기업의 존망 앞에서 허리를 바짝 낮췄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반대로, 가짜 피해자가 가짜 미투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까지 생겼다. 불륜이 무슨 자랑거리라고 관계를 밝히겠다며 언론 플레이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억울함을 호소하며 법정에 서서 무죄를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폭로가 사실이든, 아니든 이름이 거론된 것만으로도 ‘성폭력범’ ‘괴물’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아무런 증거도 없고, 목격자도 없는데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죄인이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재근은 그 어떤 누구의 상황보다도 더 암담한 상황이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 아닌 자신의 딸아이에 대한 성추행 혐의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사이, 그동안 잠잠하게 듣고만 있던 남자 조사원이 처음으로 입을 뗐다. 그의 말씨는 조곤조곤하고 차분했던 김 조사원의 태도와는 달리, 단호하고 고압적이었다.

“알고 계셨나요?”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애 아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은제가 과민해서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천륜을 끊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오. 만약 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분명 ‘아버지라는 위계를 이용한 성폭행’입니다. 그것을 알고도 방조했다면 이 또한 처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위계를 이용한 성폭행?! 방조?
  순간, 그녀의 등골을 타고 저릿한 한기가 흘렀다. 남자 조사원은 아버지라면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말을 입에 담고 있었다. 모두 사실이라면 재근은 제 딸에게 아버지라는 위계를 이용해 절대 해서는 안 될 더러운 패륜을 자행한 ‘성폭행범’이고, 현수는 술 마시고 아이를 폭행한 ‘가정 폭력범’에, 아비의 성추행을 방조한 ‘방조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의 딸에 의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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