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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논현동
신외숙 ( HOMEPAGE )06-13 11:19 | HIT : 140
(단편)  논현동


강남은 럭셔리하다.

기하학적 고층빌딩과 步道(보도) 한 가운데 꽃의 행렬은 젊음과 함께 묘한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유난히 하체를 강조한 글래머스한 여자들의 발걸음이 모여드는 이곳은 잘 세팅된 패션 무대 같다.

always ready




영어 표기가 적힌 티셔츠를 몸에 두른 여자가 어디론가 발걸음을 급히 옮기고 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서 남자 친구의 팔짱을 낀 여자는 화장이 짓뭉개져 있다. 연예인으로 보이는 한쌍이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아진다. 그들은 광고 촬영을 위해 온 것 같다.




카메라 앵글이 돌아가고 광풍 같은 댄스 음악이 거리 전체를 흔들고 있다. 행인들은 열기에 들떠 촬영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싱겁게도 촬영은 금세 끝나고 만다. 자동차에 내려 걸어가는 장면을 단번에 끝내고 만 것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일제히 한곳으로 쏠리다가 다시 흐트러지고 모종의 담합한 의지와 함께 제각각 걸어가고 있다. 영화 광고를 알리는 대형 전광판에서는 불빛을 자막과 함께 행인들에게 쏘아대고 있다. 이곳에선 젊음이 대세다. 젊음에 취하지 않고서는 이 거리를 지날 수 없다.

마치 외국에 온 듯 강남 특유의 열정이 거리 곳곳에 넘치고 있다.




팬티 자국이 선명한 레깅스를 입은 여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다. 남자들의 눈길이 일제히 여자의 둔부에 쏠린다.

한 마리의 인어가 물속을 헤엄치듯 인파를 빠져 나가는 여자의 모습은 나신을 보는 듯하다.

예쁘면 다야.

성형외과 광고가 빌딩마다 물결친다.




젊음은 화려함의 극치다. 각종 특권과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무한대의 가능성이자 패기이다. 그 젊음이 흐르는 강남은 항상 럭셔리하다.

아레나 버닝썬의 유혹이 흐르는 거리. 폭풍치는 듯한 댄스 뮤직에 따라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 싸이 거리를 지나자 곧바로 호텔 행렬이 이어진다. 국내 최고 재벌녀가 다녔다는 성형외과 건물이 눈앞에서 행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다시 젊음이 환생이라도 한 것일까.

J의 마음도 바람처럼 흔들린다.




젊음도 세태의 물결을 탄다. J가 대학시절인 30년 전만 해도 젊음의 거리는 단연 종로나 무교동이었다. 그 다음 순서는 명동이었고 세월이 조금 더 지나서는 동숭동 대학로였다. 그러던 것이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로 몰려가더니 한동안 신촌이 주 무대로 바뀌었다.




신촌 홍대 앞은 예술의 거리로 한동안 자리매김 되어 주말이면 홍대 앞 전철 역사 앞은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각종 거리 예술공연이 홍대 주변에서 펼쳐져 많은 관객이 운집했었다. 그러더니 몇 년 전부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점 세계에 후폭풍을 몰고 오면서 강남 거리가 젊은이들의 명소가 되었다.




패션거리가 젊은 열기와 함께 강남을 물들이고 있다. 물뽕이라는 신종 마약과 재벌 3세들의 성적 타락상이 이슈로 떠올랐던 아레나 지하 나이트 클럽. 지하 주차장 옆으로 활짝 핀 튜울립이 색상 경연을 펼치고 있다.

빨강. 노랑. 보라. 주황.




쾌락의 센터였던 클럽은 성폭행과 권력 유착 조세 포탈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다. MD라는 영업직원이 성매매의 알선책이었다는 게다가 그들은 공권력과 유착해 비리를 양산했는데 목 금 토 일요일 4일간 영업에 5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고 한다.




하루 입장객만 1300명에 이르고 직원만 400명이 넘는 아레나는 남자는 돈에 의해 여자는 외모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성적 타락의 온상지가 되었다. 테이블블 당 수억을 호가하는 범죄 온상지 클럽은 연예인과 금융업 종사자들 운동선수등이 이용했는데 그만큼 범죄 수위도 높았다.




물뽕 등 마약 투약은 주로 재벌 3세 등의 유학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미모인 젊은 여자들은 불법촬영과 성관계 동영상으로 악용 되었다. 이 모든 범죄의 주요 인물인 연예인은 증거 불충분으로 영장이 기각돼 자유의 몸이 되었다. 청와대 게시판까지 올라간 그의 기각 사건은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는데 J도 그 중의 하나였다.




J의 딸 영현은 아레나 클럽이 마주보이는 S기업에 근무하고 있었다. 빼어난 외모로 연예인이 되라는 제의도 많이 받았지만 모두 뿌리치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를 원해 선택한 직장이었다.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다져진 몸과 마음은어떤 유혹도 넉넉히 이겨내리라 스스로 믿고 있던 터였다.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시작한 직장생활이 2년이 못돼 삐걱대기 시작했다. 수없는 긴장감 속에 상처와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만성피로와 무기력증이 심화됐다. 한마디로 번아웃이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직장 동료의 꾀임에 빠져 클럽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클럽은 직장 맞은편 호텔 지하에 있었고 퇴근하면 곧바로 달려가 합류했다. 클럽은 입구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클럽의 조명과 음악은 정신을 마비시키는 마취제 같았다.




환각에 취한 듯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노라면 남자들이 주위에 까맣게 몰려들었다. 개중에는 TV에 나오는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연예인이었다. 그 얼굴은 보는 순간 순간적으로 마음이 안정됐다. 열기와 흥분 속에는 불안도 뒤엉켜 있었는데 낯익은 얼굴이 바로 눈앞에서 손짓을 하자 마음이 적이 안정된 것이다.

그래도 공인(公人)인데.




영현은 음주가무는 전혀 좋아하지도 않고 소질도 없지만 이상한 열기에 들떠 연예인으로 보이는 그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영현의 외모를 두고 끝도 없이 칭찬했다. 원하면 얼마든지 연예인으로 데뷔시켜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순간영현의 뇌 속에는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쳐 올라왔다.

까짓 한번 살다 가는 인생인데 이참에 행로를 확 바꿔 봐?




첫날은 그런대로 넘어갔다. 클럽의 VIP 주 고객이라는 젊은 남자는 매너도 좋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헤어질 때는 택시 타고 가라며 수표까지 던져 주었다. 돈의 위력이 한순간에 느껴지면서 영현은 몽롱한 환상에 빠졌다. 이튿날 직장에 출근했는데 전혀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았고 퇴근 후 클럽에 가 몸을 풀 생각을 하니 저절로 기운이 났다.




동료는 클럽에 관해 모르는 게 없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연예인의 명단을 꿰면서 모종의 거래를 암시하기도 했다.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다간 한방에 가겠구나, 조심해야지.

그러나 퇴근과 동시에 발걸음이 저절로 클럽으로 향했다, 언제 소문이 났는지 직장 동료들은 모두 그녀를 클럽걸로 불렀다. 엎드리면 코 닿는 거리였다. 주머니에는 돈이 항상 두둑했다. 남자가 현금카드를 제의했지만 거절했다. 나중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클럽은 환락적인 분위기라 마약과 같았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끊을 수 없는 마력이 수시로 그녀를 이끌었다. 직장에서 근무하다가도 클럽의 분위기가 떠올라 일을 그르칠 정도였다. 수시로 판단력이 흐려지고 실수가 잇따랐다. 이성이 마비됐는지 별일 아닌 것 같고도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그런 날이면 클럽에 달려가 더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그리고 클럽에서 만난 남자들과 술잔을 부딪치고 제 3의 장소로 옮겨 2차 3차를 갔다. 나중에는 클럽의 MD가 지정해 주는 오피스텔로 가 환락파티에 빠졌다. 클럽의 VIP고객이라는 남자가 건네주는 술잔을 받고 그대로 정신을 잃은 것이다.




나중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전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직장에 무단 결근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정신상태도 문제려니와 온몸이 피멍이 들어 도저히 외출할 수조차 없었다. 하체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짐작컨대 밤새 성적 농락과 학대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후회가 밀물처럼 몰려왔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매사에 변별력이 떨어지고 미칠 듯한 공포가 몰려왔다. 병원에 가 진정제를 맞고 난 영현은 동료에게 사직서를 대신 제출해 줄 것을 부탁했다.




심각한 사고를 당해 도저히 출근할 형편이 못 되니 알아서 처리해 달라고 했다. 이미 직장에는 그녀에 대한 소문이 일파만파 전해져 있었다. 클럽에 출근하다시피 도장을 찍더니 드디어 인생 쫑났구나. 인생 퇴출이란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떠다니던 어느날 그녀는 모르는 남자의 호출을 받았다.




논현동에 있는 모 오피스텔로 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아니 명령이었다. 그는 다짜고짜로 이름부터 확인하더니 은근 협박조로 말하며 액수까지 제시했다. 순간 그녀는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것처럼 큰 충격에 휩싸였다. 덫에 걸린 것이다.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퇴사하고 전화번호마저 바꾼 상태였다. 이제는 옴쭉달쭉 할 수 없는 올가미에 갇힌 것이다. 영현은 남자에게 사정했다. 며칠 전 오피스텔에 들렀을 때 온몸이 피멍 상태라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자는 듣지 않았다. 상관없으니 시간 맞춰 약속장소로 가라고 했다. 생각은 강한 거부 의사를 나타냈지만 입에서 전혀 엉뚱한 말이 나왔다.

“네 알았어요.”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 나가 일어설 수조차 힘들었지만 영현은 오피스텔을 향해 걸어갔다. 강남 네거리를 건너고 호텔 틈새를 비집고 들어선 오피스텔은 강한 소독 냄새가 진동했다. 마약 도구를 소각하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후처리를 한 때문이었다.




그녀가 오피스텔 입구에 막 도착할 때였다. 갑자기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사방에서 카메라 불빛이 터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인파속에 숨겼다. 핸드백 속에 숨겨 두었던 선글라스를 꺼내 쓰는 동안 누군가 그녀를 향해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핸드폰에서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엄마의 전화였다. 정신없이 돌아서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팔목을 강하게 붙잡고 늘어졌다.




“약속은 지켜야지.”

“이 손 당장 놔욧.”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그녀는 소리를 꽥 질렀다. 당장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했다. 경찰 제복이 그녀에게 다가오면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 사람이 아까부터 자꾸 만지려고 했어요.”

사람들 입가에 묘한 비웃음이 번지는 순간 남자가 군중 속을 뚫고 대로변을 향해 쏜살같이 도망쳤다. 아득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영현은 순간 생각했다.

나도 떠나야 한다.

낯모르는 곳으로.




그 이후의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지나가는 택시를 무조건 올라탔다. 택시 기사가 어디로 모실 거냐고 몇 번이나 반복해 물었지만 너무 떨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기사가 후면경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호기심이 잔뜩 묻은 표정으로 그는 재차 물었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네? 터 터미널요.”

“터미널 어디요? 동서울 터미널이요? 아님 강남 고속터미널요?”

“그냥 아무 데나…….”

“네? 농담 마시고 빨리 결정하세요. 이 한강다리 건너면 다시 유턴도 못한다구요.”

집으로 갈까? 그랬다가 그쪽 사람들이 닥친다면? 몸이 덜덜 떨렸다. 순간 자신이 추리소설의 한 대목을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착각이 들었다. 범죄영화의 한 장면도 떠올랐다.




되도록 멀리 도망쳐야 한다. 그것도 아주 멀리. 불길한 상상 드라마가 머릿속에서 끝도 없이 펼쳐졌다. 이러다간 피해망상증 환자가 되겠구나.




“동서울 터미널로 가 주세요. 빨리요.”

“드디어 결정을 하셨네요. 그럼 지금부터 밟겠습니다. 세게.”




기사는 후면경으로 그녀를 훔쳐보며 여전히 기분 나쁜 투로 말했다. 택시가 터미널에 닿자 영현은 습관적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기사가 카드를 받으려는 순간 그녀는 큰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잠깐만요?”

그녀는 기사의 손에서 낚아채듯 카드를 빼앗고는 만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요.”




택시에서 내리자 따가운 볕이 그녀의 발길을 가로막았다. 횡단보도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길가에 좌판을 벌인 상인들이 손짓을 하며 호객 행위를 했다. 그때였다. 터미널 출입구 쪽에서 선글라스를 낀 남자 서너 명이 자기들끼리 신호를 보내며 소리치고 있었다.




순간 영현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극한의 공포가 몰려오면서 정신이 일시정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고개를 숙였다 다시 드는 순간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무작정 창구로 달려가 승차권을 끊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시외버스에 올랐다.




선글라스를 낀 상태로 바깥 풍경을 보니 세상이 너무 어두워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도착지를 향해 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영현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핸드백을 움켜쥐었다. 스마트폰에서는 계속 문자 수신을 알리는 발신음이 울렸다.




손이 덜덜 떨려 문자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녀의 눈은 문자메시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안전을 걱정하는 엄마의 문자 메시지가 9통이나 와 있었다. 나머지는 급전 대출을 알리는 스팸 문자였다. 시외버스 운전기사가 승객 수를 확인 하더니 안전벨트 맬 것을 지시했다.




안전벨트를 매면서 영현은 아차 싶었다. 도착지를 제대로 확인 안 한 것이다. 급한 나머지 창구로 달려가 표를 끊고 무작정 올라 탄 것이다. 승차권을 확인한 순간 휴 소리가 났다. 시외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기사가 확인한 것을 무심코 지나친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시외버스는 강변도로를 지나 점점 북쪽으로 진입했다. 신도시 아파트 군단을 지나더니 엄청난 호수를 끼고서 사행길로 접어들었다. 도로명도 꼬부랑길이었다. 2킬로가 넘는 터널도 여러번 지나고 드디어 도착지에 닿았다. 주변이 대부분 농경지에다 군 주둔지역인 소읍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대학 다닐 때 군 입대를 앞두고 명현에게 읍소하던 경민이 생각났다. 경민은 그녀가 속한 미디어학과는 물론 단과대학에서도 못 생기고 형편없기로 유명했다. 그래도 보는 눈은 있어서 남자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영현을 마음에 두고 대시를 한 것이다.

그것이 통하지 않자 군 입대를 앞두고 눈물로 호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집안이 가난한 그는 졸업도 하기 전에 입대했는데 모두들 하는 말이 그는 반드시 군에 뿌리를 박을 것이다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추레한 외모 때문에 취업이 요원할 것이다 지레짐작한 것이다.

지나가는 군인들을 보자 느닷없이 그가 생각났다. 그가 나를 좋아했던 건 진심이었을까? 남자한테 과연 진심이 있는 걸까?




영현은 클럽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남자를 보면서 결론내린 게 있었다. 남자들한텐 진심이란 게 없다. 남자들이란 하나같이 사랑과 욕정을 구분 못하는 짐승같은 본능만 있을 뿐이다.

겉으로는 인간성 운운하면서 매너 좋은 척하는 놈일수록 때에 따라 더 잔인한 면모를 보이고 여자를 물건 취급하듯 한다. 못생긴 남자일수록 더 많은 여자를 소유하고 싶어하고 매너가 엉망이다. 피해의식이 강하고 거칠고 이기적이다. 예전에 엄마가 하던 말이 있었다.




“열 계집 싫다는 남자 없다더라. 남자는 아무리 착해봤자 다 거기서 거기다. 멀쩡하게 가정 잘 지키고 살던 남자도 돈벼락 맞아봐라, 백퍼센트 천퍼센트 바람 핀다. 한마디로 돈지랄을 하는 거다.”




그러나 성도덕의 타락과 쾌락이 보편화 된 현대에서는 그 말도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의 해악으로 자살사이트와 성매매는 이미 보편화 된 상식 수준에 와 있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힘으로 아무리 성매매를 근절시킨다 해도 효과는 미지수인 것이다. 항상 그렇다.




그러게 요즘 세상은 비혼이 대세처럼 여겨지고 경제를 빌미로 출산 기피 현상이 극에 달해 백약이 무효인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향해 그렇게 간절하게 애원했던 경민의 눈길은 무엇이었을까?

못생기고 미래가 안 보인다는 이유로 여러 여자들로부터 거절당했던 경민의 진심은 어떤 류의 감정이었을까? 감정을 색깔이나 순도(純度)로 나타낸다면 경민은 어느 정도였을까?




영현은 터미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늦은 저녁을 때웠다. 해는 벌써 기울어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터미널 근처는 음식점과 상가만 몇 있을 뿐 그 흔한 다이소 하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요란한 불빛이 켜진 곳마다 모텔 아니면 여관이었다.




영현이 도내 버스 정류장을 지나 모텔 입구를 지날 때였다. 체격이 작은 군인 한명이 여자의 허리를 껴안고 모텔 계단을 올라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남자는 이미 술에 만취한 듯 걸음이 흔들렸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남자의 목소리도 어디서 많이 들은 목소리였다.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남자가 군인 베레모 모자를 옆으로 돌리더니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영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 이영현 맞지? 나 아까부터 니가 터미널에 내릴 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어 혹시나 했는데 진짜였네.”




영현은 순간적으로 영혼이 이탈된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경민이 바로 눈앞에서 자신을 힐난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연이라는 기정 사실 앞에서 뭔가 따지듯 말하는데 상당히 기분 나쁜 말투었다. 아무리 만취 상태라 해도 비아냥조였다.




그를 부축하고 있던 여자가 그의 뺨을 갈기며 말했다.

“오라. 니가 그렇게도 오매불망하던 여자가 바로 이 여자였냐? 망할 자식 그러면서 왜 잠은 나랑 자? 이 호랑말코 같은 자식아.”

여자는 경민의 정강이를 발길로 힘껏 차더니 그대로 돌아섰다. 영현을 향해 힘껏 눈을 흘기고는.

영현 역시 그에게서 돌아섰다.

돌아서는 영현에게 경민이 뇌까렸다.




“나, 너에 대한 동영상 본 적 있다. 니가 어떤 놈들하고 붙어서 너도 그런 년이었냐?”

순간 영현의 두 손이 경민을 향해 거침없이 뺨따귀를 날리고 있었다.

“너도 그런 놈들하고 똑같은 거 아니었니? 나쁜 자식.”

재수 없는 새끼. 너도 내가 만났던 그 놈들하고 하등 다를 바 없는 놈이었구나. 조금 전까지 경민의 감정의 순도에 대해 생각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움과 자책이 일었다. 꼴에 너도 사내라고 똑같은 놈이었구나.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 되었을 거란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얼굴까지 적나라하게 나갔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동영상은 단톡방뿐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도 교묘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얼굴 쳐들고 살긴 힘들게 됐다. 그동안 남자들이 자신을 향해 짓던 비웃음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20년 전엔가 디바로 불리우던 여가수의 성관계 동영상이 유포 되었을 때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때가 있었다. 언젠가 그녀가 방송에 출연해 그때를 회고하며 말했었다.




“빌딩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였어요, 이 정도에서 뛰어 내리면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걸까?”

관객들은 그녀를 향해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십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녀는 동종업계의 연예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예쁜 딸도 낳아 키우고 있다, 그러나 그후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가정이 평탄치 않은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나도?




영현은 두려움으로 가슴이 바작바작 조여 왔다.

무작정 도내 버스를 올라타고 아무 데나 내렸다. 논밭 한 가운데 무인텔이 보였다. 가끔 인터넷 상에서 무인텔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종업원이 없는 무인텔. 영현은 천천히 무인텔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도 없는 저곳이라면 죽기에 안성마춤 같았다.




걸음이 천근만근 늘어졌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더운 바람에서 훅 열기가 느껴졌다. 스마트폰에서 계속 진동이 울렸다.

귀찮아 꺼버리려다 문지메시지가 와 있는 걸 확인했다. 남동생이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엄마가 심장수술 하기 위해 입원했으니 빨리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도 적혀 있었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늦은 시각이었다. 이미 막차도 끊겨 있었다.




그녀는 무인텔에 도둑처럼 들어가 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영현이 막 서울행 시외버스에 오르려는 순간 낯익은 얼굴이 지나가며 말했다.




“영현아 나 너에 대한 동영상 아무 것도 안 봤다. 그거 다 내가 꾸며낸 거짓말이다.”

망할 자식, 누가 그 말을 믿을 줄 알고.

영현은 그의 등뒤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이 멍청한 놈아 너도 그 놈들과 똑같은 놈이야 알겠어.”

  

  

어머니의 심장수술은 가족이 꾸며낸 거짓말이었다.

“세월 지나면 다 잊혀지는 법이란다. 걱정 말아라, 다신 그런 꾀임에 안 넘어가면 되는 거란다.”

“그래도 마음에 남은 흔적은 안 없어지잖아.”

“성령의 능력으로 이겨내야지.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법밖에 없단다. 이 유혹 많은 세상에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늘 성령으로 무장해 죄 짓는 장소에는 가지 말아야지. 그 죄가 주는 쾌락보다 더 큰 만족을 주시는 이를 바라봐야지.”

차라리 비난이라도 했다면 덜 부끄러울 텐데.




그런데도 마음이 안정되고 힘이 나니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 계속 동영상이 퍼져 나간다면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유출을 막아야 하는데. 인터넷에서는 동영상의 유출에 대한 기사가 실시간별로 올라와 있었다.

경민이까지 알게 된 걸 보면 동영상이 급속도로 퍼져 나간 건 거의 기정사실이다. 영현은 언젠가 강남 거리를 지나며 보았던 수없이 많던 성형외과 건물을 떠올렸다.




이참에 성형수술을 해버려?




그러나 가슴에 남은 큰 생채기는 결코 못 지울 것 같았다. TV뉴스에서는 아레나 클럽에 대한 탈세와 유명 연예인의 성매매 그리고 재벌 3세들의 신종 마약 물뽕에 시시각각으로 보도하는 영상이 떠올랐다. 누군가 말했었다.




“난 재벌도 강남 졸부도 정치인도 부럽지 않아, 돈만 많으면 뭘해? 매일 피튀기는 경쟁 속에서 불안속에 살잖아, 내가 아는 강남 졸부는 위가 안 좋아 매일 죽만 먹는다더라. 밤에는 불안 때문에 수면제 없이는 잠도 못 이룬대. 그게 진짜 행복일까? 난 그들보다 가진 건 없어도 내가 훨씬 행복하다고 생각해. 난 없어서 못 먹어. 등만 붙이면 잠이 와, 대궐 같은 집 없어도 마음 하나는 편해. 돈 많은 재벌 하나도 안 부러워, 돈 많으면 뭘해? 돈 처들여 유학 보내면 마약이나 하는 걸.”




날마다 좌불안석이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스스로 위안점을 찾으려 해도 불안이 끝도 없이 가슴을 치받고 올라왔다. 가끔씩 환상도 환청도 들려왔다. 마약에 취한 것도 아닌데 비슷한 증상이 몸과 마음을 휘몰아쳐 멘붕에 빠지는 것이다.

한번의 실수가 아니었다. 동료의 꾀임에 빠진 건 실수라 쳐도 이후에는 스스로 자초한 거였다. 클럽은 그렇게 마약 같은 분위기로 이성을 마비시키고 쾌락으로 이끌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도둑처럼 의식을 점령하고 조종했다. 의지는 쾌락의 하수인이 되었다.




인간의 의지로는 그 어떤 쾌락의 힘을 끊을 수 없다. 노예가 될 뿐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스스로 쾌락의 종이 되기를 자처하는 걸까. 거기에는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길고 긴 방황이 시작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악마의 유혹은 생각을 통하여 찾아왔다.




버닝썬의 화려한 조명과 환락적 분위기. 불나비처럼 모여드는 남자들의 시선과 몸놀림. 쾌락의 대가로 주어진 엄청난 액수의 현금 다발. 뒤엉킨 생각속으로 혼곤한 잠이 몰려왔다. 매일같이 미로를 헤매는 악몽을 꾸었다.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쫒기다 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뒤에서 목을 움켜쥐는 손이 있었다.

헉!

숨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제키며 소리를 질렀다.

억! 억!




소리는 목안에 갇혀 새어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구나. 그때였다. 누군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가만히 말했다.

“저길 보렴.”

간신히 눈을 떠 앞으로 바라보는데 어둠 속에 흰옷 입은 천사가 보였다. 그 뒤에 울고 있는 여인의 모습도 보였다. 어머니였다.

어 엄마.




목을 움켜쥐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점점 약해지더니 스르르 풀렸다. 잠에서 깨어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엄마가 그동안 나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계셨었구나. 이상하게 기운이 났다. 오랜만에 밥상에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다. 그동안 나를 클럽으로 이끌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 강한 마력의 힘을 나는 왜 이기지 못하고 계속 클럽으로 향했던 걸까. 내가 그동안 믿고 의지했던 신앙의 힘은 왜 나를 왜 지켜주지 못했던 걸까. 그때 내부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그건 바로 네 탓이야.

그럼 네 탓이지. 니가 네 마음을 지키지 못한 거잖아. 신이 주신 자유의지를 스스로 팽개쳐놓고 누구 탓을 하는 거니? 무엇이든 선택에 대한 결과는 스스로 지는 거야.

내 탓이라고?



그러나 스스로 정죄할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진 않다. 클럽의 분위기를 이용한 마수의 손길을 피하지 못해 일이 벌어진 것뿐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일뿐 정죄받고 심판 받아야 할 인간들은 바로 그들이다. 영현은 수시로 생각과 전쟁을 벌였다.




때론 망상이 찾아와 괴롭혔고 강한 음성이 들려와 안정되는가 싶으면 자책의 음성이 곧바로 자신을 공격했다. 불안과 평안이 빗금치듯 마음을 점령했다 사라졌다. 자책과 두려움도 한동안 점령하다 사라지는가 싶으면 어느새 긍휼의 음성이 찾아와 자신을 격려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단다. 후회하는 순간 돌이키고 자신과 화해하고 용서하는 거란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 강하게 비춰오는 거란다. 자! 자리에서 일어나라. 내가 네 손을 잡아 주리라.

그런데 전 그, 손을 잡을 수 없어요. 제 잘못이 너무 크거든요.

내가 내미는 손을 잡기만 해라. 내가 네 미래를 책임지고 이끌어 주리라.

미래라구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바로 그거였어, 내가 두려워하던 형체의 그림자가 바로 그거였던 거야.

마음속에서 어둠이 점점 밀려나고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둠을 이기는빛의 함성이었다. 영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하늘은 햇살을 사람들 마음속에 골고루 뿌려주고 있었다. 집을 나온 영현은 한강대교를 건너 대형 십자가 탑 앞에 섰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많은 직장인들이 공원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원두커피 잔을 들고서 담소를 나누던 젊은 남녀들이 그녀가 지나가자 일제히 쳐다보았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동물원 구경하듯.

순간 영현은 가슴이 철렁했다, 클럽에서 만났던 남자들과 투숙했던 오피스텔이 떠올랐다. 경민이 보았다던 동영상 장면도 떠올랐다. 가슴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머리를 뒤집어쓰고 일어났다. 아득한 현기증이 일면서 몸이 공중에 붕뜨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젊은 여자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혹시 지난번 TV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예인 아닌가요?”

“네에? 연예인요?”

그러자 옆에 원두커피 잔을 들고 서있던 또다른 여자가 말했다.

“아침 드라마에 출연하신 적 있으시죠?”

영현은 잠시 정신이 멍때리는 것 같았다.

연예인이라니? 황당하기도 했지만 방금 자신이 느꼈던 혹시 유출 됐을지도 동영상에 대한 두려움이 또다시 떠오르면서 멘붕현상이 일었다. 이러다가 공황장애 패닉상태가 되겠구나. 영현이 긍정도 부정도 않자 그들은 그녀를 연예인으로 단정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내 말이 맞잖아. 그 여자랑 꼭 닮았다니까.”

“싸인해 달라고 할까. 그런데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지 않니? 얼굴도 몸매도 정말 환상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현은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 표시를 했다.

“어머 감사라니요? 저희가 영광이죠? 겸손하시기까지 하시네요.”

그들은 영현을 정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예인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남자들도 커피를 마시다 말고 그녀에게 집중하며 말했다.

봐, 영화배우 맞다니까. 그런데 왜 매니저도 없이 혼자 온 걸까?

야! 연예인은 뭐 혼자 다니지 말라는 법 있냐?

하긴. 그런데 정말 예쁘다, 완전 죽인다 죽여.




남자들은 한술 더 떠 그녀의 외모를 칭찬했다. 햇살이 점점 따갑게 내리쬐기 시작했다. 강바람이 목덜미를 휘감듯 지나갔다. 녹색 풍광이 빌딩과 도로 양편으로 늘어서서 지친 마음을 위무하고 있었다. 권태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보라고 그곳에도 지하나이트 클럽이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는 도로 한가운데 횡단보도 앞에서 커다란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서 안타깝게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가슴에 십자가를 붙인 그는 노방 전도자였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유일한 구원의 길 십자가 앞으로 나오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달리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도 근심도 말라……

사람들은 그의 곁을 지나며 비웃거나 모른 체 그냥 지나쳤다.




누가 듣는다고… 지 목만 아프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방금 전 영현에게 연예인이 아니냐고 말한 직장인이었다. 전도자 옆으로 잘려진 두 다리를 고무판으로 동여맨 장애인이 바닥을 끌며 지나갔다. 그가 파는 좌판에는 수세미와 바퀴벌레 잡는 약이 잔뜩 실려 있었다. 그 밑으로 배터리가 장착된 녹음기에서 계속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가사가 심금을 울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픔도 상처도 곧 지나가리라. 곧….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밑도 끝도 없이 자꾸만 감사가 흘러나왔다.

  

언젠가 들은 간증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금융인중의 하나였다. 일류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가장 유망하다는 직장에 취업해서 억대의 연봉을 받았다. 그가 가장 하기 쉬운 일은 돈을 버는 것이라고 했다.

  

매일 돈을 흥청망청 쓰는데도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이 몰려왔다. 급기야 그는 술중독과 마약 중독에 빠졌다. 그럴수록 허망함으로 미칠 듯이 괴로움만 커졌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어느날 그는 인생 최대 만족을 주시는 절대자를 만났다. 그것도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은 그가 만난 절대자와 그가 체험한 신의 존재에 궁금해 하면서도 그가 가진 신적능력에 대해 더 집착했다. 그가 개최하는 집회 현장마다 엄청난 기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왜 자기한테는 절대자가 그런 식으로 만나주지 않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그들은 과연 그처럼 돈 버는 능력을 내려놓고 절대자에게 순종했을까?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힘겨운 영적 전쟁터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갔을까? 그는 절대자에게 순종함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영적 기쁨또한 얻었다. 탁월한 신적 능력으로 명성도 얻었지만 그만큼 자유의지도 제한 받았다.

  

자신의 의지보다 영적 사명감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것을 포기한 만큼 또 많은 것을 부여 받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에너지와 영적 소망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세상이 주는 쾌락보다 진리의 기쁨이 주는 위대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지에 오르고 싶어한다. 그곳에야 말로 인생 최대의 희락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지에는 성공의 상징인 돈과 명예 쾌락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라갔다고 치자. 그 다음은?

내려오는 일밖에 더 있을까? 어쩌면 고지야 말로 가장 위험한 곳인지 모른다. 가장 많은 적수가 기다리고 있고 언제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그 자리가 안전하고 말했을까?

  

그곳이야 말로 행복이 보장된 자리라고 가르쳤던가? 누가 도덕이나 이념의 가치관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던가? 돈은 성공의 가치 척도이고 쾌락과 일맥상통하니 거기에 집착하라고 누가 말해 주었던가?

악한 영의 속임수이다.



사람들은 모두 속고 있다. 악한 영이 들려주는 달콤한 말에 속고 쾌락과 맞잡고 자신을 스스로 속이고 기만한다. 미래를 방기하고 사탄이 들려주는 거짓말에 파멸을 자초하고 만다.

J는 영현이 신앙에 불만을 표시한 날부터 악한 영의 기운을 감지했다. 청소년 시절만 해도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고분고분 잘 따라하더니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엇나가기 시작했다. 상처와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우울감을 호소했고 신앙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클럽은 그녀가 알고 지내던 세상과는 별천지였다.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이고 쾌락과 찰나의 기쁨이 입을 열고 들어왔다. 클럽에서 제공하는 술과 마약과 쾌락에는 고통이 배재돼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스트레스나 상처도 생각나지 않았다. 일단 취하고 보고 후유증은 나중이었다.

  

나중에는 이성과 판단력이 마비되고 의지를 상실했다. 사탄이 의지를 점령한 것이다. 사탄은 제일 먼저 그녀의 감정을 지배했고 이성(理性)과 의지를 제압했다. 정신이 방전된 상태에서 사탄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거짓말에 능통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주어대는데 뻔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하는데 후회나 가책도 없었다.

  

처음에는 동료의 말에 속더니 나중에는 자기 스스로에게 속고 온통 거짓말 속에 휩싸여 살아갔다. 모두가 그녀를 포기했다. 구제불능이라 했다. 대인관계를 마지막까지 포기하고 났을 때 그녀가 기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죽음에 대한 유혹도 심심치 않게 찾아왔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혼란한 정신은 매일 방황을 거듭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났을 때 마음속에 들려오는 세미한 음성이 있었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

내가 너를 싫어 버리지 않겠노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영현이 눈을 떳을 때 어머니 J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의 내용이 가슴에 와 닿을 때마다 영현은 전율했다. 몸에서 악한 기운이 빠져나가면서 새 힘이 났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물러가고 산 소망이 생겨났다. 하지만 어둠은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새롭게 죄책감과 수치심을 주입하면서 고통이 심화댔다, 하지만 고통이 심할수록 의지는 강해졌다. 그리고 소망의 끈도 더 단단해졌다. 그녀가 방황을 끝내고 영적 도피를 멈추던 날 인터넷에 새로운 기사가 떠올랐다.

범죄의 온상지였던 버닝썬이 폐업한 지 몇 달 만에 새로운 업소명으로 오픈한다는 소식이었다, 벌써부터 많은 젊은이들이 개업날짜에 맞춰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업소는 진즉부터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세상은 아직도 사람들의 뇌속에서 나쁜 기억은 빠르게 삭제하고 쾌락 일변도로 사람들의 뇌를 계속 잠식해 가고 있었다.

강남은 럭셔리한 분위기로 또다시 많은 젊은이들을 빨아 당기고 있었다. 글래머스한 여자들의 발걸음과 부의 상징을 뿜어내는 VIP 고객들을 유치하느라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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