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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올리기 > 소설

<중편> 댁네 가정은 안녕하신가 24
four진08-07 19:28 | HIT : 131
24.  사건 종결

  은제는 그동안 1학기 기말고사에 전력을 다했다. 주요 과목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숙지해야 하는 수능은 버겁다면서 내신 성적만 적용되는 수시로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갈 수 있는 마지막 평가인 셈이다.
  은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은 절간처럼 조용해졌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TV는커녕 음악도 틀지 않았고 손님도 들이지 않았다. 물론 가끔 꼭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이 있으면 방해가 되지 않게끔 볼륨을 최소로 줄여 들릴락 말락 한 상태에서 브라운관 앞에 바짝 붙어 방송을 보기도 했다. 고3이 있는 여느 집과 다를 바 없는 광경일 것이다.
  토요일 오후였다. 오랜만에 재근의 친구이자, 그녀의 친구이기도 했던 동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광주에서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동철은, 그녀의 신혼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재근과 그녀의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그가 결혼하고 딸 하나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린 뒤에는 서로가 바빠서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끔 만나 술 한 잔씩 나누곤 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혼 후에는 그조차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어이, 선달이 잘 지내냐? 은제 은기 잘 크고?”

‘선달’은 남자처럼 털털한 그녀를 가리켜 동철이 부르던 별명이었다.

“그럼. 너는? 하영이 잘 크고?”

“나도 잘 지내. ”

  은제가 고3이다, 공부하느라 정신없다고 하자, 그는 ‘언제 그리 컸냐’며 놀라는 시늉을 했다. 이어 제 딸 하영이는 초등학교 3학년생인데 노래도 잘 하고 공부도 잘 한다고 자랑했다.

“마누라 잘 얻어서 집도 사고, 아이 낳고 잘 사는 것 보니 기특하네.”

  그녀가 농을 던지자 그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게. 결혼 잘 했다 소리 많이 들어.”

“좋겠다. 너라도 그렇게 행복하게 사니 말이야.”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 이혼해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제 집 자랑만 한 것 같아 미안했던 모양이다.
  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건 그냥 물어보는 건데...... 재근이랑 합칠 생각은 없는 거야?”

  생각하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간단히 대꾸했다.

“없어.”

“왜? 외롭지 않아?”

“넌 외로워서 결혼했니? 난 아냐. 그리고 한 번이면 족해. 난 이대로가 좋아.”

“그래도......”

“순간적인 감정으로 이혼한 것 아냐. 그 사람이 아주 나쁜 사람도 아니었고. 다만...... 더 힘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너.......많이 힘들었구나.”

  그의 동정어린 목소리가 그녀를 조금은 아프게 했다. 좋아서 결혼했고, 남들만큼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싶었다. 돈은 없어도 벌어오는 돈 아껴 적금 들고, 전셋집이나마 조금씩 늘려가는 재미로 아웅다웅 사는 동안,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모두 과거지사였다. 이제 그녀에게 결혼은 별 의미가 없었다. 가장 소중한 두 아이를 갖게 된 것, 그 것 외에 결혼을 통해 남은 것은 없었다. 죽는 날까지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세상에 단 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은 신기루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겠다는 듯 이후로는 다른 소리만 주절거리는 동철의 태도가 점점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불쑥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사실은....... 어제 오늘 재근이한테 전화 해 봤는데 안 받네. 재근이에게 무슨 일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무슨 일? 그녀는 움찔했다. 무슨 일이라면 분명히 있다. 은제의 일. 재근이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 하고 있을 바로 그 일. 하지만 그녀는 시치미를 뗐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그런 일을 일일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재근으로서도 몹시 부끄러워할 만한 일일 테니 굳이 입에 올려서는 안 되었다.

“글......쎄.......”

“모르지? 혹시나 해서........”

  동철의 전화를 끊고 그녀는 몇 번이고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했다. 전화를 걸어볼까,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조사받는 일은 다 마무리 되었는지, 심정은.......어떤지......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잠시 후, 황 형사의 전화가 왔다. 사건이 터진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전 날 아이 아빠를 조사했다며 재근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이번에는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자격으로 질문을 받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혹시 결혼해 사는 동안, 아이 아빠가 변태적인 성적 취향을 보인다든가 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녀는 앞에 존재하지도 않는 황 형사의 전화를 받는데 고개까지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니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억지로 섹스를 한다든가........”

“아니오. 절대요. 그가 원했지만 제가 싫어서 일 년 동안 섹스를 하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저를 끌고 가려는 짓은 한 적이 없습니다.”

  황 형사는 주로 재근의 성적인 취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었고 그녀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전화를 끊고 그동안 망설이던 일을 하기로 작심했다. 그녀는 부랴부랴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 먹이고 집을 나섰다.
  차를 몰고 그녀가 간 곳은 40여 분 거리의 재근의 집 앞이었다. 회사도 멀지 않으니 어디에 있건 간에 만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을 하고 확인 없이 움직였다.
  먼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고, 한참을 기다려도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그가 살고 있는 빌라로 올라갔다. 벌써 알고 집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장군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여기까지 오는데 오랫동안 망설였던 것과는 달리, 숨 한 번 쉬지 않고 초인종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다섯 번을 초인종이 울리고나서야 안에서 문 따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집안의 실체가 드러나며 재근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관 앞 센서등에 비친 그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며칠이나 안 깎았는지 수염은 덥수룩하고, 떡 진 머리는 은기가 자주 보는 ‘드래곤볼’의 주인공이 변신할 때처럼 바짝 곤두서 있는데다가, 누런 눈꼽이 박힌 흐리멍덩한 눈이 거의 몇날며칠 역전에서 노숙하는 노숙자만 같았다.
  그는 왜 왔냐 묻지도 않고 문을 열어놓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현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비릿하고 지릿한 냄새가 훅 끼쳤다. 무슨 냄새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현관 앞을 막고 있는 허벅지 높이의 철창을 넘어 들어가자 냄새의 주범인 장군이 반갑게 달려들어 꼬리를 쳤다. 그녀와 그가 함께 키우던 암캐, 하지만 똥오줌을 가리지 못해 그녀에게 미움 받고 쫓겨날 뻔 한 것을 그가 데려다 키우고 있는 바로 그 개가 과거 주인이었던 그녀를 알아보더니 짖지도 않고 펄쩍거리며 반가워했다.
  그녀는 장군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좁은 주방을 지나 하나 뿐인 방으로 들어섰다. 그의 방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혼 후 두 번째 이사할 때 이삿짐 나르는 것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다는 그를 대신해 아이들을 데리러 오면서 들어온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좁은 방일망정 깨끗이 치워져 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싱글 침대 하나, 옷장 하나, 냉장고와 작은 TV 하나, 책장과 작은 탁자 하나가 세 벽면에 빽빽이 들어찬 작은 방의 바닥에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술병들이 뒹굴고 있었다. 그는 그 안에 널려 있는 쓰레기들과 별 반 다르지 않는 모양새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말 것을. 아니, 이럴 줄 알았기에 그녀는 온 것이다.
  그녀는 빈 병들을 발로 차 옆으로 밀어놓으면서 그의 앞에 마주앉았다.

“괜찮아?”

  우문인 줄 알면서도 의례적으로 묻는 자신이 어이없었다.

“재근씨?”

“아이들은?”

“밥 먹이고 온 거야.”

  이 와중에도 아이들을 먼저 걱정하는 그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녀가 보기에 걱정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아니고 그였기 때문이다.

“밥은 먹었어?”

“응.”

  그가 ‘응’이라고 말한 것은 언제 배달시켰는지 모를 짬뽕 뿐인 게 분명했다. 술병 옆에 아무렇게나 놓인 플래스틱 그릇 안에는 퉁퉁 불어터진 면발 때문에 국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짬뽕이 담겨 있었다.

“나가자. 나가서 밥 먹자.”

“생각 없어.”

“그럼 다른 거 배달시킬까? 당신 좋아하는 보쌈이라도.......”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초점 없이 벌겋게 부어오른 눈 속에 그녀의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같이 한 잔 할래?”

“차 갖고 왔어.”

“그럼 말고......”

  그는 날파리 한 마리가 떠 있는 소주잔에 소주를 마저 따라 채우더니 단숨에 주욱 들이켰다. 이어 다시 잔을 채우려 하는 것을 그녀가 병을 빼앗아 대신 채워주었다.

“회사 안 갔어?”

“토요일이잖아. 어제는 월차 냈고....... 경찰에서 조사 받으러 오라기에.......”

“아까 나한테도 전화 왔었어.”

“응........”

그는 무슨 질문을 하더냐고 묻지도 않았다. 관련한 모든 말들이 상처인 듯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냉장고 앞에 여러 개의 식당 광고물이 붙어 있었다. 그 중 하나를 떼어 전화하려고 하자 그가 말렸다.

“안 먹어.”

“나도 밥 안 먹었어. 술 더 있지?”

  그녀는 전화를 걸어 보쌈을 하나 시킨 뒤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냈다.

“차 갖고 왔다며?”

“대리 불러 가지 뭐.”

  그 때부터 두 사람은 말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배달되어온 보쌈은 전혀 줄지 않았다. 걱정이 된 그녀가 몇 번을 권해서야 그는 고기 한 점을 먹는 척하다가 말았다.
  강술을 이기지 못한 그가 어느새 꾸벅꾸벅 졸더니 잠이 들어버렸다. 그녀는 그제야 주섬주섬 일어나 주변을 치웠다. 소주 병이 자그마치 20여 병. 그녀가 마신 한 병을 뺀다 해도 매일 이렇게 마시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같이 사는 동안에도, 그 이후에도 재근이 이렇게까지 망가져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불같이 화를 낼지언정 금방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독감을 앓듯 하루 앓고는 툭툭 털고 일어나 말짱한 얼굴로 일을 나가던 사람이었다.
  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은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정말 못 견디게 힘들다. 숨이 막힐 지경이야. 어머니도 오늘 내일 하시는데....... 걷지도 못하셔. 나도 가끔은 못 알아보셔. 나 이제 누굴 믿고 사니?”

  어머니도 떠나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더 이상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살까? 과연 살 수 있을까? 지금 재근은 억지스러운 죄목에 연루되어 매일 고문당하고 있는 기분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왜? 진짜 죄다운 죄를 지은 사람들은 오히려 제 죄를 부정하면서 뻔뻔하게 고개 들고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던데, 왜 그녀와 그는 그럴 수가 없는 걸까? 부모는 자식 앞에서 털끝만큼의 죄도 지어서는 안 되는 건가? 과연 그녀와 그가 한 행동들이 죄가 되는 것일까? 미안한 짓을 했다고 죄인 취급당해야 하는 걸까? 그보다 그 죄목이 두려웠다. 제 자식을 폭행한 죄, 제 자식을 범한 죄. 그런 혐의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두렵고 괴로운 것이다.
  그녀는 깨끗이 치워진 바닥에 베개를 내려놓고 그를 눕혔다. 그리고 그 곁에 앉아 남은 소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서 눈을 떴을 때에도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지난밤에는 깨닫지 못했던 지독한 술 냄새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술 마신 두 사람이 토해낸 숨 때문이리라.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가 날 지경이었다.
  그녀는 창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 24시간 하는 해장국 집이 보였다. 그가 이사하던 날, 그녀와 그, 두 아이들, 과거 한 가족이었던 네 명이 함께 식사를 했던 곳이었다.
  그녀는 해장국 2인분을 사 들고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해장국은 냄비에 옮겨 담고 김치는 봉투 그대로 해서 침대 머리 맡 작은 탁자 위에 얹어놓고 있으려니 장군이 낑낑대며 매달렸다. 화장실에 동글동글한 개똥 두 덩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서는 그토록 똥오줌을 못 가리고 마루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기 일쑤더니 그의 집에 와서는 배변을 잘 배운 모양이었다.
  그녀는 개똥을 치웠다. 화장실 옆에 놓인 사료 봉투를 들어다가 개 밥 그릇도 가득 채웠다. 그제야 그의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 때까지도 재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은 그 어느 요일보다 한가로워 집 앞을 오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홀로 차를 몰고 빈 골목길을 빠져나와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내내 쓸쓸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세상에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혼자가 되어 버린 그녀와 그처럼 외로웠다.  

                                 **

  며칠 후, 경찰서로부터 우편물 하나가 왔다. 수신인이 서은재로 되어 있는 사건처리결과 통지문이었다.

<귀하의 사건 관련하여 피의자는 어릴 때부터 귀하가 예쁘고 귀여워 장난을 친 적은 있으나 추행하지는 않았다며 범행 사실에 대해 부인하고 있고, 귀하의 모(母) 또한 피의자가 예뻐서 장난을 칠 수는 있지만 추행할 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진술하는 점 등으로 보아 피의자가 추행을 했다고 볼 만한 명확한 증거나 자료가 없어 불기소(혐의없음) 의견으로 지방경찰청에 송치하였습니다. 수사에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리고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연락바랍니다>

  드디어 그의 혐의도 벗겨졌다. 정확히 말하면 명확한 증거나 자료가 없으니 더 이상 조사할 수 없어 사건을 종결한다는 내용이었다.
  통지문을 읽자마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의 만신창이로 망가진 모습을 보았고, 그 모습을 통해 상처 입은 그녀 자신을 보았다. 혐의가 없다한들, 그동안 겪은 일들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당분간은 치유될 성 싶지 않은, 어쩌면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을 지도 모를 상처에 그녀는 아픈 명치를 부여잡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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