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문학관
작품올리기 라이브러리 명예의전당 정보마당 대화의장

    

   
 









작품올리기 > 수필

기억창고속에 묻어둔 바보인생
민유종12-26 23:32 | HIT : 151
기억창고속에 묻어둔 바보인생

2020.12. 21. 02:35. 추워진 날씨가 영하 12도를 지나간다.
겨울 찬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더 춥게 느껴지는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인 거 같다. 길 가던 남자 사무실로 들어간다. 통상적으로 화장실을 찾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사무실 당직자가 그를 내보내자. 그는 휴게실로 들어간다. 무슨 일 인가해서 휴게실에 들어가 불을 켜주고 그를 본 순간,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그의 손에는 왕뚜껑 하나 손에 들고 두리번댄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고, 그가 불편해하지 않게 휴게실을 나왔다. 한참이 지난 뒤 들어가 보니, 왕뚜껑에 물을 가득 채워,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품에서 소주를 꺼내 병에 입을 대고 마신다. 손에는 커피 스푼 하나 들고 있기에, 종이컵 하나와 나무젓가락을 가져다주었다. 젓가락을 두 손으로 정중하게 받으며 깊숙이 고개 숙여 "고맙습니다."인사를 한다. 옷차림은 노숙 생활에 절어 허름해도 기본 예의는 갖춘 사람이 무슨 사연으로 노숙자가 됐을까!? 딱하고 측은한 마음이 든다.

두 시간 반쯤 지난 후에 휴게실을 나온 그 사람, "고맙습니다. 잘 쉬었다 갑니다."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장갑도 끼지 못한 맨손이다. 이 추위에 얼마나 손이 시릴까. 내 주머니 속 핫팩 두 개를 꺼내어 그 사람 손에 쥐여주며, "흔들어 주면 뜨거워지는 거 아시죠?" 머리 숙여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가는 그의 뒷모습이 처량하다. 축 처진 어깨, 구부정한 허리, 보물인 듯 오른손에 움켜쥔 소주 병. 휘청대는 그의 뒷모습에서, 문득 내 인생의 기억 창고 한편에 깊숙이 숨겨둔, 30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일곱 살 된 자식을 멀고 먼 나라로 떠나보내고, 실의에 빠져 방황하던 그때, 내 모습도 저 모습이었겠지, 소주병 손에 들고 병나발 불면서 밤거리를 헤매던 때가 있었다. 집에는 넋이 달아나 실어증 걸려 말없이 아들 사진만 바라보는 아내, 밥상 옆에 쓰러져 잠든 딸. 바라보면서 무너져 내린 억장이 갈가리 찢겼다.
찢긴 가슴을 달랠 수 있는 건 오직 술이었다. 술을 마신다고 갈가리 찢어진 가슴 이어 주는 건 아니지만, 술을 마셔도 취하질 않아 취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반년을 살았다.

희귀병에 걸려 삼 년의 투병생활 중 절반은 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루라도 입원을 늦게 하게 되면 온몸이 붓고 복수가 차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다. 갈수록 병세는 나빠져가고. 삶에 희망은 사라져, 더 이상 삶의 집착은 아이에게 고통만 줄 뿐이라는 최후의 선고를 받았다. 이때 아이의 주치의였던 세브란스병원 원장님의 주선으로, 아이를 지켜보던 미국인 의사의 제안을 받았다. 미국에서 아이와 같은 희귀병을 치료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은 99% 지만, 살 수 있는 희망은 1%도 안된다.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 희망을 걸겠느냐?" 하고 물었다.
"저는 살 수 있다는 1%에 희망을 걸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살려달라고 매달 리고 싶었다, 죽지 않게만 해달라고, 우리 부부 두 무릎 꿇고 애원했다. 미국인 의사 담담하게 얘기를 해준다. 지금 현재 아이의 상태는 최악이고 아무리 지금처럼 반복되는 치료를 해도 반년을 넘지 못한다. 아이에 대한 모든 걸 포기하고 생사를 나에게 맡기겠느냐, 만일의 경우 아이가 죽는다 해도 원망하지 마라 자식을 포기해라, 할 수 있겠느냐. 어차피 살아갈 수 없는 기로에서 무엇을 어찌하겠는가.! 아무리 궁리해도 오직 답은 하나다. 내가 할 수 없는. 지푸라기를 잡아야 한다.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아이를 미국으로 보냈다. 죽어도 아빠하고 있겠다는 아들을 버리고 모든 각서를 써주고 최종 양육권 포기각서를 써주고 아이를 보냈다. 미국으로 아이가 떠나고 멍한 아내를 바라보며 할 말을 잊었다. 9일이 지난날 원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아이가 혼수에 빠져 깨어나질 않는다. 희망이 없다. 더 이상 기대하지 마라."

한 통의 전화를 받은 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원장님한테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말이 우리가 들은 마지막 말이다. 이렇게 쉽게 떠날 것이었다면, 차라리 내 품에서 보내줄걸, 땅을 치고 후회를 해본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 미쳐가는 나를 보았다.  그날부터 술독에 파묻혀 살았다.
살아있어도 산목숨이 아닐 것이고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신을 멀리 타국에 두고 어찌 밥이 목에 넘어가겠는가? 식음을 전폐하고 울면서 살았다. 그때 떠오른 노래 "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울면서 되뇌며 나는 참 바보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아이의 건강을 지켜주지 못하고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나 자신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졌다. 술에 절어 새우는 밤, 소리없는 눈물 삼키며 한숨으로 밤을 새우는 아내를 바라보며 울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흘러간 여섯 달, 퇴근 후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저녁상을 차려 놓고 앉아서 술 한 잔을 따라준다. 덜컥 겁이 난다.

"여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놀라지 말고 내얘기 들어요. 혜선이 아빠 우리 오늘부터 정신을 똑바로 가져봅시다. 우리가 이러면 우리 혜선이 어떻게 해요. 그리고 형진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 형진이 절대로 죽지 않아요.
살아서 돌아올 거예요. 형진이가 돌아와 엄마 아빠 잘못된 걸 알면 어떻게 해요. 혜선이와 형진이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해봐요."

어머니는 강하다는 모성애의 큰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의 말에 너무도 감격해 울기만 했다. 그날부터 술을 먹지 않았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해가 바뀌고, 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가슴에 새긴 이름을 부르면서...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연말이 되면 울면서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그때 아이모습 떠올라 눈시울을 적신다.
오 년의 세월이 지난봄, 원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당장 오라는 다급한 말에, 우리는 택시를 타고 달렸다. 총알처럼 달리는 택시가 느리게만 느껴졌다. 죽은 줄만
알고 있던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인가. 살아있던 아이가 죽었다는 것인가.

원장실에 들어가니.원장님 웃음 띤 얼굴로  아이가 살아있다는 말과, 그동안 있었던 치료 과정의 힘들고 어려웠던 상황을 얘기해 주었다.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은 할 수는 있으나 아직 완쾌되지 않아 오랜 기간 치료를 해야 되기 때문에 올 수 없으니 기다리지 마라. 그리고 병원 치료비는 모 제약회사 후원금 으로 충당되어 우리가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아이가 살아있다는  말에 혼절했던 아내, 깨어나 엉엉 울며 원장님께 큰절을 올렸다.

어린 것이 참아내느라 얼아나 많이 힘들었을까. 살 수 있다는, 1% 와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 99%가 아이를 살려내는 기적을 낳았다.

아직까지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네 아이의 아빠가 되고 수양아버지의 사위가 되어 의사가 됐다. 나의 아들로 태어나, .또다른 부모를 만나 살아난 기적을 이룬
나의 아들이다.

인생 꽃길만 걸어온 게 아니다. 자식을 버리고 살아온 힘든 삶과, 맨주먹으로 시작
해서 둘이서 일궈 논 결실이지만, 열 개를 가져다 주면, 백 개로 쪼개고 나눠서 키워온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호강은 시켜주지 못하고, 모질게도 고생만 시켜준 못난 남편, 그래도 지아비로 받들어준 고맙고 고마운 아내 덕분에, 네 아이의 아빠 노릇 할 수 있고, 다섯 아이의 손주들 재롱을 받을 수 있는 보금자리 있음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지긋지긋하게 속 썩이는 남편을 내 편으로 생각해 준 아내, 제발 술 좀 그만 마시라는 말을, 듣지 않는 고집쟁이 남편, 술독에 빠져 살던 그때, 그대로 두었더라면, 노숙자 모습이 내 모습 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내의 말을 고분 하게 받아주는 착한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래도 가끔은 보이차를 마시는 척 하며 복분자 술을 반주로 몰래 마신다. 보이차가 아니라 술이라는 걸 알면서 모르는 척, 눈감아주는 고맙고 고마운 아내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

그가 떠난 후, 휴게실 청소를 하는 젊은 당직자가 하는 말.
"컵라면 먹고 소주 병을 들고 술을 마시기에 가라고 했어요."
"갈 데도 없는 사람으로 보이던데 날이 밝거든 보내지 그랬니."
"그 사람 마스크도 안 쓰고, 소주 병들고 다니며 마시는 사람, 어떻게 해요, 그래서 가라고 했어요."
"안되긴 했지만 요즘  코로나 비상 시국이라 너도 어쩔 수 없었구나."

컵라면 먹느라 마스크를 벗은 줄만 알았는데 쓰지를 않았구나. 마스크 안 쓴 줄 알았으면, 새 마스크를 씌워주고 예비로 가지고 다니는 장갑을 끼워서 보낼걸. 주머니에 있는 핫팩만 손에 쥐어 보냈다. 가고 난 뒤에 생각나는. 가슴 찡한 아침이다.

  목록보기

번호 제 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600 단꿈으로 피어난 후록스     이 경옥 2021·04·17 47
599 별이 빛나는 밤     이 경옥 2021·04·06 94
598 만수산 저녁노을     정하득 2021·04·02 63
597 하루종일 우울모드     이 경옥 2021·03·25 102
596 나 좀 살려줘!     김장호 2021·03·21 78
595 내일 해는 서쪽에서 뜨는 걸로     이 경옥 2021·02·16 150
594 잊지 말아요     이 경옥 2021·02·03 161
593 나의 단상/떠나지 않은 겨울 끝에서     백원기 2021·01·26 123
592 눈사람 그대, 알몸으로 껴 안고     정영옥 2021·01·11 152
591 소소한 하루     이 경옥 2021·01·06 175

    목록보기   다음페이지 1 [2][3][4][5][6][7][8][9][10]..[60]   [다음 10개]

   
 
스토리 문학관 | 운영진 소개 | 이용안내 | 사이트맵
사업상담:storynim@naver.com / 이용문의:storynim@naver.com
Copyright 2004 storye.net All rights reserved. | Since 2000.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