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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고성혁10-11 07:35 | HIT : 112
  삶은 퇴화(退化)의 과정이 분명하다. 몸과 마음은 세월을 따라 고목처럼 늙는다. 깊은 산 속 고목을 본 사람들은 안다. 나무들이 바람과, 바람을 따라 부딪치는 비와 눈을 먹고 자라 고목이 된 뒤 끝내는 다시 그것들에 의해 넘어져 부서짐으로써 숲이 된다는 것을. 그것이야 말로 진실된 삶의 과정이다. 나는 때로 죽어 넘어진 통나무처럼 드러눕는다. 바람 부는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지나온 삶을 반추한다. 가슴 가득히 후회를 안고. 그러면 다가서는 내 삶의 해거름 풍경이 뚜렷해진다.

  철없던 젊은 시절 나는 어머니에게 정말로 고약하게 굴었다. 왜 나를 낳았냐고 대놓고 물었다. 무얼 하려고 낳아 남들 다 가는 대학 하나도 가르치지 못하느냐고 어머니의 슬픔을 물어뜯었다. 그것도 자주. 어머니는 그런 야차 같은 나를 우두커니 쳐다보기만 했다. 남의 집 방 한 칸을 빌려 사는 처지였으므로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희미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빛이 없는 컴컴한 뒤편에서 나를 쳐다보다가 울었다. 그때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어떻게 인내하셨을까. 그랬던 사실을 어머니는 시절이 그랬다는 말로 손사래 쳤고 나는 철이 없었다는 변명으로 눈을 감았다.

  세월은 장강의 앞 물결처럼 밀리다 어느 날부터 내게 말을 건넸다. 이 어처구니없는 놈, 네놈의 잘못을 알겠니. 길거리를 지나면서, 혹은 티브이를 보면서, 비틀어진 할머니들의 손가락을 보면서 깨달은 삶의 진실들. 나는 천천히 세월을 알아갔고 어머니는 늙어갔다. 그것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었을 것이다. 늙은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세 번이나 입원하셨고 결국 6개월을 누워 계시다 운명하셨다. 내 아들 손 한 번 잡아보자 하시면서. 삶의 고비마다 내게 가르침을 주시던 어머니.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죽음도 오래 전 떠나왔던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었다. 어머니뿐만 아니다. 이제 나도 수많은 고비를 넘긴 노년이 됐다. 나도, 그 누군가도 어머니처럼 돌아가야만 한다.

   우리 동네에도 많은 노인들이 계신다. 많은 양반들이 늙고 병들어 몸을 움츠리고 산다. 할아버지 한 분은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보행을 하시는데 세월을 견뎌온 만큼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었다. 지나치다 인사라도 건네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옛 얘기를 건네지만 그건 겉일 뿐, 속은 마른 억새처럼 스산하다. 얼마 전부터 영감님은 다리까지 절뚝였다. 치료하시지 왜 그냥 계시냐고 물었더니 “늙어서 수술할 수가 없대. 대학병원에서도 기력이 달려 안 된다고만 하니 어쩔 수가 없네.”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삶의 무력을 절절히 통감한 나머지 가슴이 아렸다.

  허리가 아픈 할머니, 다리를 저는 할머니. 아프지 않은 노인이 없지만 그중 그래도 건강하다고 할 만한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그 할머니는 봄에서 가을까지 새카만 얼굴로 들일을 했다. 여름이면 길가 논에서 바지를 걷어 올리고 풀을 뽑기도 했고, 가을이면 가장 먼저 가을걷이를 했다. 푸른 고추모종을 건네주던 할머니의 봄빛 속 파안대소가 미소를 짓게 했었다. 오늘 아침 고샅을 나서는데 그 할머니, 보행 보조기를 짚고 먼 산을 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 망할 놈의 세월이라니. 지난겨울의 모진 바람이 노인의 앙상한 몸을 얼마나 할퀴었단 말인가.

  뜬금없이 산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까지. 삶은 덧없이 지나간다. 그러니 고목처럼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부귀영화가 무엇이란 말인가. 불현듯 헛된 것도 모자라 진실을 왜곡하고 진실 때문에 고통받아온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판 인간들이 떠오른다. 5·18을 두고, 4·3을 두고, 세월호를 보며 눈을 치뜬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들. 그들이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오신 위안부 할머니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부 바다 건너 사람들보다 무에 낫단 말인가. 오로지 세속의 욕구를 위해 섞고 바꾸어 경박한 모욕만 아무렇게 내뱉는 그들에게 이 꿈같은 봄빛이 너무나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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