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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그리워진다.
이 경옥08-04 10:31 | HIT : 111
섬, 그리워진다.


장마의 화려한 공연이 시작되었다.비의 두드림 연주는 벽을 울리고 고막을 뚫는다.담벼락 뒤로 위치한 앞집 아저씨네 참깨밭에선 황톳물이 쉴새없이 뒤꼍으로 쳐들어와 장독대는 섬이 되고 있다.빗줄기로 얼룩진 유리창에 바싹 다가가 작은 섬,초라했던 초가지붕의 옛 섬을 떠올린다.
내가 너댓살 정도 되었을 때인 것 같다.

엄마,아빠,오빠 둘.지금 기억으론 그렇게 다섯이 살았던 집이다.가끔 언니도 기억에 등장하는데..ㅡ이상하게 언니는 어쩌다 한번 떠오를까 말까 한다ㅡ같이 살긴 했던 모양이다.
아궁이가 하나,솥이 걸린 흙 바닥은 엄마의 부지런함으로 반질반질 윤이 났고, 변변치 않은 식기들은 쇳빛이 반짝반짝 빛나 은그릇이 부럽지 않았다.부엌과 연결된 쪽문으로 작은 밥상이 넘어오면 어른 셋 누우면 꽉 찰 안방에 또 이어진 쪽문으로 꼬물꼬물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엄밀히 방은 두개지만 작은 쪽문으로 이어진 골방이 오빠들의 보금자리였다. 달짝지근한 호박국의 냄새가 좁은 방에 가득 차면 스댕밥상은 어느새 난장판이 되고,내 입에 모이를 밀어 넣어 주시던 엄마의 호통소리가 작은 창을 찢고 뒤꼍 사과나무에 걸렸다ㅡ이 사과나무는 나의 정글짐이였고,오빠들의 철봉이였다ㅡ늦가을까지 매달린 엄마의 호통소리는 뻘겋게 달아올라 달디달기까지 했다.

그리 알콩달콩,부족해도 조용했던 나날들이 지나던 계절은 한여름에 접어 들었다.마당은 넓었으나 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기에 텃밭 하나 가꾸지 못해 오솔길처럼 좁게 만들어졌다.마을길로 나가려면 좁은 마당길을 지나 이웃집들의 높은 돌담 사이의 또 좁다란 골목을 지나야 했다.돌담아래 소복이 피어있는 채송화는 어두운 골목에 빛을 내는 길잡이였다.어린 눈에 채송화는 5월의 장미였다.
하루는 내 새끼손가락만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거짓말 아니다.지붕에서 삐져나온 지푸라기보다 굵은 빗줄기가 집을 누르는 느낌까지 들었다.누군가 지붕에 모자를 씌워 촥 가라앉은 머리같았다.그래도 빗소리는 자장가 같아서 흙벽을 두드려대는 울림에 낮잠에 빠진거 같다.순간,밖은 요란해졌고 익숙한 동네 아줌마의 고함소리가 들렸다.골방을 지키던 오빠들도 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기웃거렸고 이내 안방문이 열리며 엄마,아빠,아줌마는 나와 오빠들을 부둥켜 안기 시작했다.이제 국민학교에 입학했던 막내오빠는 울기 시작했다.나도 덩달아 울었다.아빠등에 업힌 나는 방문이 열리자마자 울음을 멈췄다.울 용기조차 없었다.방문 밖의 광경이란 공포였다.날은 어둑해졌고ㅡ비 때문인지 저녁시간이였는지 모르겠다ㅡ좁은 마당길은 사라지고 온통 흙탕물이 마루위까지 올라와 있었다.여전히 비는 쏟아지고 있었다.아줌마와 엄마는 오빠들을 하나씩 끌어 안고 물살을 헤쳐 나갔다.생각보다 밀려드는 흙탕물의 흐름은 쎘고 휘청거리며 엎어지기를 반복했다.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골목길이 멀기만 했다.아빠의 목에 올라탄 나는 발끝에 찰랑이는 물이 자꾸만 잡아 당기는 거 같아 아빠의 머리를 더욱 세게 잡았다.남자인 아빠도 바듯이 걷는 걸음이라 앞서가는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지르는 소리가 엉덩이를 울렸다.엄마랑 오빠들이 죽을까봐 겁이 났다.하늘이 무서웠다.무조건 잘못 했다고 빌고 또 빌었다..

고작 5미터도 안되는 마당길을 지나고 고개를 돌려 집을 바라봤다..눌린 초가지붕이 펑펑 울고 있었다.방문도 보이지 않을만큼 많은 눈물이 흘렀다..불어난 흙탕물은 초라한 섬 하나를 만들고 있었다.

그 섬을..

우리는 울면서 떠나고 있었다.
유 화
1972년 장마는 우리동내 하방 중방 상방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중방까지 물이 차올랐다.
나는 꼬마 때라 아무것도 몰라 상방 친구 내 집으로 피신해 있었다.
그러나 붉은 빗물은 하염없이 쏟아져 내려 상방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흙탕물이 차오르고 엄마와 아버지는 처음엔
다리, 가슴, 목까지 빗물에 잠긴 체 중요한 물건만 빼내 온 듯 싶다.
우리는 옹기와 도자기를 팔았는데 모두 풍선처럼 물 위에 둥둥 떠다녔고
온 동내의 집기들이 물에 떠다니는 상황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염소도 돼지도 집채만한 소아지도
울음소리를 내며 강으로 떠밀려 내려갔다. 우리는 매년 장마철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치루어야
한해가 지나갔다. 난 그때마다 감리교회와 충헌탑이 있는
산마루 꼭대기에 올라 그 모든 광경을 목격했고
그때 아마도 우리의 시절이 오버랩되는 그런 상황은 왜일까
시간의 기억은 슬픈데 오늘은 왠지
그때의 기억을 소환한 아픔이 나쁘지만은 않다.
귀겹고 앳된 소녀도 같은 시간의 기억을 같고 있다는 것이
지나간 것에 대한 슬픈 기억까지도 그리운 추억이 되므로

난 어쩌면 그 조그마코 까마잡잡한 소녀를 지금 만나는가 보다.
이제야 아픈 기억을 소환한 우리의 동질감이
빛바랜 세월에 조금은 서로에 안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때 그 소녀의 겉모습은 변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컨츄리한 정서를 내심 새겨가며 읽어 본다.

가족은 변하지 않는 사랑의 끈끈한 정이다.

시인/ 유화

인생은 떠나는 여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슬품까지도 아름다운 시간을 추억했습니다. 고운 작품 하소서.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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