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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의 한낮 풍경
고성혁07-06 06:16 | HIT : 127
산골의 한낮 풍경



  할머니가 일을 하고 계신다. 이 마을도 예전, 사람들이 넘치던 70년대에는 60호가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의 흔적이 없다. 휴일에 아빠를 따라 할아버지를 찾아온 아이들 이외엔 아이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그저 노인들뿐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집 앞 콩밭에서 할머니가 묵묵히 무언가를 하고 계신다. 건너 숲에 이르기 직전의, 작은 땅뙈기에서 앉은 듯 선 듯, 잠시 보이다가 다시 푸른 콩잎 속에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그 모습이 마치 그림 같기도 하고, 파도 속을 스치는 작은 돛단배 같기도 하다. 그 풍경 속으로 딸랑대는 강아지의 목줄소리까지 겹치자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나까지 그 안에 잠긴다.

  아, 베짱이가 되었구나. 게으른 내가 돌연 죄스럽다. 뙤약볕이 내리 쬐다가 후드득 비를 흩뿌렸다.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점 하나가 되어 마치 기도라도 하는 양 묵연하다. 그 모습에서 어떤 신성함마저 느껴진다. 그래, 농부님이시다. 사업가가 사업을 하고, 교수가 강의를 하고, 시인이 시를 쓰고, 기술자가 땀 흘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저 어른도 봄에 씨를 뿌리고, 잡초를 캐고, 산돼지를 막아가며 지금까지 살지게 키웠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지금에 이르렀고 그리하여 조금 있으면 타작을 하고 나머지 콩대를 말려 땔감으로 사용할 것이다. 수확의 삶 속에 가득한 창조의 신기함. 할머니께서 전혀 그것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없다. 할머니는 이미 몇 십 년 동안 거룩한 창조를 계속 해오시지 않았는가.

  언뜻 숲 언저리를 살펴보니 작업이 이미 끝난 듯 할머니의 모습이 없어졌다. 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약속이 있으셨을까? 그래서 그 비를 맞으셨을까? 햇빛이 가득한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 담소라도 나누고 계시는 걸까. 시간이 넘치는 문외한은 궁금하다. 뜬금없이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개울 건너 닭장 안의 닭들이 경쟁하듯 꼬끼오 소리를 내뿜는다. 새벽에만 우는 줄만 알았는데 한낮의 정적을 깨는 저 소리. 저 소리의 사유는 무얼까. 알을 낳았다는 건가. 알 수 없다. 이제부터산골의 풍경을 꼼꼼하게 배워야 한다. 닭이 우니 개들도 왕왕 따라 짖는다. 다른 곳에서도 따라 한다. 산골의 정오가 ㄷ자 형태로 이어 내려온 숲의 끄트머리에서 가장 가까이 내려앉는다. 숲에서 작은 개울을 풀쩍 뛰어 건너면 밭이다. 최근, 그 밭과 길의 경계에 어떤 분이 '지난 선거에 지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플래카드로 울타리를 치셨다. 정적이 가득한 이곳에 필요 없을 것 같은 울타리를 굳이 치신 이유를 알 듯하다. 어떤 노인이 시골길을 가다가 버려진 플래카드를 주웠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요모조모 살피다가 무릎을 치셨다.

  그렇지, 밭에다 세우는 거야, 경계도 되고 가을 낱알을 노리는 새떼도 막을 수 있을 거야. 어르신은 본인의 생각에 흡족해 하곤 새벽 일찍 댓바람으로 일어나 튼실하게 울타리를 치셨을 것이다. 그런데, 플래카드가 글자와 반대로 거꾸로 세워졌다. 산골을 찾은 지인들은 오히려 그런 모습에 더욱 정이 간다며 웃었다. 지난 태풍의 바람으로 약간 느슨해지긴 했어도 지금도 일없다는 듯 씩씩하게 걸려있다. 한낮이 지나고 상수리나무에 붙은 매미소리가 드르르, 사방에서 빗소리처럼 거세다. 매미소리만큼 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현관문을 연다. 어, 문 앞에 웬 벌들이 날갯짓을 하고 있다. 비행소리가 억세고 크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덩치가 토종벌보다 훨씬 큰 모양으로 보아 말벌인 듯싶다. 조금 무섭기도 하여 가만히 그들의 하는 짓을 살핀다. 현관 앞 맨땅에 새끼 손톱만한 구멍을 파고 있다. 여러 마리가 제각기의 몫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깊이가 생기자 엉덩이를 뒤로 하여 무언가를 뿜어낸다. 아, 잘 모르긴 해도 알인 것 같다. 손에 들고 있던 파리채를 거두고 짐짓 이 사태를 관망하기로 마음먹고 방으로 들어온다. 읽던 책의 페이지를 펴든다. 몇 쪽을 읽고 나니 땀에 젖은 머리칼과 겨드랑이 사이로 슬며시 잠이 오려한다. 찬 바닥에 드러눕는다. 살짝 잠이 들었다. 꿈결인 듯, 살짝 들었다 깬 잠결 사이로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해에당화 피이고 지이는 서엄 마아을에…. 정말 노래다. 노랫가락 사이로 멋들어진 간주도 있다. 몽롱한 머리를 털고 부스스 일어나 집중해보니 누군가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을 하시는 듯하다. 여전히 매미는 팽나무와 참나무 사이를 넘나들며 큰 소리를 내고 있고…. 그렇게 산골의 한낮이 가고 있었다.

고성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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