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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태극기
김정태05-10 10:52 | HIT : 108
구겨진 태극기

겨울추위가 끝나지 않았던 3월초에 대학동기들과 2박3일 일정으로 남도 기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에서 진주성과 칠천량 답사는 지난날 아픈 역사를 통해 어지러운 현실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유유자적 흐르는 남강은 그날의 아우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해 보이기만 했다.

1592년 4월 왜적은 부산포를 시작으로 도성 한양까지 거침없이 진격했다. 그러던 왜적들은 점차 의병들의 반격활동으로 후방에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평양성에서 조.명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한양으로 후퇴한 왜적은 이후 군량미 부족에 시달리게 되는데 안정적인 후방의 보급 확보를 위해서는 곡창 호남지역으로 진출해야만했다. 그러나 바닷길을 이순신이 막고 있어 호남으로 가는 길목인 진주에서 임진왜란 최대 격전이 벌어지게 된다. 1592년 10월에 2만의 왜적이 진주성을 공격하자 진주목사 김시민은 3,800명의 군.민으로 결사항전을 하여 고귀한 승리를 하게 된다. 다음해 6월 왜적은 10만 대군으로 2차 침공을 감행한다. 진주성은 5천의 병력으로 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전략적 요충지 진주가 화적떼들을 맞아 혈투를 벌이고 있을 때 조정은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던 셈이다.
진주성에 올라서니 강산을 피로 물들이며 살육을 일삼던 도적들의 만행이 눈앞에 그려진다. 성이 무너지고 겁에 질려 쫒기며 아우성치는 백성들의 처참한 모습이 명멸(明滅)한다.

2차 침공에 임하여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남기지 말고 다 죽여라’고 했다하니 지금 들어도 오싹 소름이 끼친다. 전쟁은 그런 것, 억지와 궤변, 감상도 고집도 통하지 않는 숨 막히는 현실이 아닌가.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로 끝나던 그날, 그동안 짓눌려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원칙을 강조하던 미국이 시중의 예측대로 핵동결 선에서 모든 제재를 풀어버리고 종전(終戰)선언을 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한 회담 결과는 한반도의 문화와 정치, 경제, 사회 제반 문제를 블랙홀인양 빨아들여버렸을 것이고 이 땅을 더욱 숨 막히게 했을 것이다. 회담을 앞두고 그런 졸속적이고 위태로운 북미합의에 불안했던 것은 어느 한두 사람의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2월28일 세기의 북미 회담이 예상을 깨고 결렬되었을 때 이 땅에서 일부 방송과 언론은 그것을 트럼프의 외교 실패로 몰아가려 했다.

진주성이 무너지고 강산은 왜적의 총칼에 처참하게 무너진다. 바다만 이순신이 사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이 도륙을 당하고 있는 그 엄중한 상황에서도 조정(朝廷)은 불세출의 위대한 장수를 음해하여 끌어내린다. 용렬하고 의심 많은 군주는 이순신을 잡아 올려 가혹한 고문을 가하기까지 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이순신 없는 바다는 왜군이 활개를 쳤고 칠천량 전투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처참히 패배하게 된다.
조정은 초죽음이 된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명했지만 변덕스럽고 의심 많은 군주는 이순신을 육군에 복속시키려한다. 그때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이순신의 읍소가 나왔고 그 유명한 명량대첩이 이루어진다.
중국 후한 말 군웅이 활거 하던 시절, 최강세력의 원소는 조조와 관도대전 중에 맹장 전풍을 죽이고 모사 허유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허유는 치욕과 절망으로 적국인 조조진영에 투항하게 되고 100만 대군의 원소는 20만 조조에게 대패하여 패망에 이르게 된다. 군주의 의심과 변덕, 독선과 고집이 직면해야하는 정해진 자멸의 길이었으리라.

우리역사를 돌아보면 준비 없이 있다가 참화를 맞는 순간이 고비 고비 있다. 그 첫 번째가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여년전 이율곡이 10만양병설을 간곡히 주장했지만 조정은 손 놓고 있다가 왜적의 침략을 받게 된다. 그 두 번째가 병자호란이다. 임진왜란 이후 40여년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조정은 정신 못 차리고 암투에만 몰두해있었다. 그러다가 준비부족과 정세변화에 역행하는 정치외교의 무지가 병자호란의 참화를 불러온다. 그 세 번째가 19세기 중반 서구열강의 문호개방 압력이 가해질 때 빨리 개혁에 박차를 가했어야했다. 쇄국정책으로 손 놓고 있다가 청일전쟁.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의 내정을 장악하게 되고 급기야 을사늑약으로 맥없이 나라를 빼앗긴다.
8.15광복 후 대한민국은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흐름에 능동적으로 발 빠른 대처를 하게된다. 6.25남침의 폐허를 딛고 반세기 만에 이 나라는 대한민국의 기상을 만방에 떨칠 수 있었다. 반만년을 허덕이던 보릿고개도 극복하고 자랑스럽게 세계선진대열의 반열에 올랐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를 향한 대한민국 기업들의 선전과 개가가 자랑스럽다. 이렇듯 한마음 한뜻으로 준비하면 누구보다 우수한 민족이 왜 그동안 오랜 세월 넋을 놓고 앉아 있었던가?

잘나가다가 어디로 빠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 이 나라가 그런 형편이다. 구한말 이전의 우리민족이 겪은 재앙은 번번이 준비 없이 있다가 초래된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동안 잘 준비해놓은 것을 곳곳에서 허물고 있지나 않나 하는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이상한 기류가 나라를 꽁꽁 얽어매려하고 있고 전 방위에 궤변과 억지가 난무하고 있다. 부국강병을 향해 일치단결로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오만과 독선으로 인한 무법천지가 안타깝다 못해 공포스럽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도데체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가?

요즈음 구겨진 태극기가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전략회의 행사장에 구겨진 태극기를 걸어놓는가 하면 대통령외국순방길 전용기에 거꾸로 단 태극기를 꽂아놓았다. 어느 방송은 한미정상회담에 버젓이 인공기를 부착하기도 했다. 너무나 상식과 동떨어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니 혹 불순 세력이 의도적으로 대한민국을 구기고 짓밟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싶은 우려까지 하게 된다. 시국이 어지러우니 시끄러운 모든 것이 번뇌(煩惱)로 쌓인다.

야화소부진 춘풍취우생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들불을 놓아도 풀은 다 없어지지 않고 봄바람 불어오면 또 다시 자라나네.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쓴 시의 한 구절을 생각하며 번뇌를 떨쳐본다.
구겨진 태극기, 거꾸로 태극기, 빛바랜 태극기가 신음을 토하고 있지만 그래도 만물이 약동하고 기화요초는 만발하고 있다. 치세(治世)와 난세(亂世)의 들불에도 살아남아 봄기운에 꿈틀거리는 생명의 경이로움이 천지를 뒤덮고 있다. 20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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