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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고성혁09-01 07:13 | HIT : 106

비가 내린다. 산골의 토방에 앉아 안개처럼 내리는 비를 보며 멀리 떨어진 세상을 생각하다가 너를 떠올린다. 삶을 살면서, 내가 너와 같은 ‘철면피’의 노고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다니. 너를 영영 떠나보내는 한낮의 대로변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져 돌아서야 했다. 너를 보다가 문득 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사진을 찍었다. 코끝이 찡하더니 눈 안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동안의 많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세월, 내게 실로 소중했던 시간을 함께 해 준 고마움으로 내 안에 안타까움이 절절해지다 나중에는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아내를 힐끔 쳐다봤더니 그 사람도 눈가가 붉어져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1995년 8월 28일.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다. 무려 21년 11개월 넘게 동고동락했다. 그날이 눈에 선하다. 나는 너의 첫 모습을 보고 기쁨에 넘쳤다. 너와 함께할 수 있는 스스로가 대견했으며 한편으로 너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컸다. 아이들은 그때 야구와 농구를 좋아하는 초등학생이었고, 어머니는 하루 한 통의 막걸리를 마시며 그런 아이들을 돌보고 계셨다. 그런데 2017년 7월 지금, 우리 곁엔 아무도 없다. 어머니는 돌아올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가셨고 아이들은 독립해 곁을 떠났다.

우리 부부는 또 어떤가. 환갑이라니. 우리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불가항력의 노년이 도래했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우리의 굳은 약속과 맹세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가르쳐 줄 뿐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강물의 흐름을 통해 시간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실체적 존재의 미약함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이 모든 상념의 시작은 너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깨지고 부서진 허약한 너는 가고, 묵묵히 헌신해 준 굳센 너만 남았다. 가슴이 연민으로 물결친다. 자신의 역할을 완전히 이해하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눈을 마주쳐 준 너. 눈가에 생채기 가득하고 귀는 찢어졌으며 머리는 깨지고 뒤는 잘린 채 간신히 그 형용만 남아 비웃음을 받았지만, 너는 오로지 해야 할 일만 생각하며 언제나 품위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거리를 나섰다.

그럼에도 너의 입성이 너무 오래되고 험상궂다는 이유만으로 관리사무소에 노숙자로 신고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불같이 분노하고 말았지. 실상은 파악하지도 않은 채 오로지 자신들의 판단만으로 타자의 명예를 더럽히는 가벼운 세태라니.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지금의 트렌드라고 하지만 그러나 그런 흐름을 따르지 않으면 또 어떠랴. 너를 빗대 옛것을 제대로 알고 서 새로운 것을 안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말한다면 내가 과거형 인물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예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에 대한 복기를 통해 소심하게나마 인간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늙은 어머니께 자부심을 갖게 한 네게 고마움을 전한다.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 아이들이 마음껏 비비고 뛸 수 있게 허락하고, 더러 상처까지도 마다하지 않은 네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어느 몹시 미끄러운 빙판길에서 두 번씩이나 내 목숨을 살려 준 네 은혜를 생각하면서 고개 숙여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나머지 자투리 생의 늙은 몸으로 내 아내를 잘 지켜 준 네게 다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너도 알고 있겠지? 아내가 너와 더불어 40년 평생직장을 완전히 떠났다는 사실을. 그 사람의 아쉬움을 생각하노라니 너의 퇴역과 그동안의 분투가 더욱 절절해지는구나. 이 도시에서 가장 고령이었을 너의 노고를 어찌 잊으랴. 한 달에 한 번씩 링거를 맞으면서도 혼신을 다해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 내 영원한 친구! 며칠 전, 고장 났던 속도계가 갑자기 정상 작동되는 것을 보고 너의 ‘마지막 인사’를 직감하며 삶의 덧없음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아, 1995년에 출생해 2017년에 사망한 내 늙은 친구, 너를 영원히 잊지 못하리. 잘 가시라, 쏘나타투 2.0 차대번호 KMHCF31FPSU476430, 9263이여. 부디 안녕히. (2017년 7월 10일에 떠난 친구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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