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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산 저녁노을
정하득04-02 10:32 | HIT : 68
“여보, 우린 뭐야, 애들하고 나 말이야! " 외출했다 들어오는 동수에게 화살이 날아든다. 참을 수밖에 없다. 그날 밤 동수는 돌아누운 아내 은주에게 한마디 말도 건 내지 못했다. 예측 할 수 없는 상황이 두려운 것이다. 섬세하고 온화한 은주가 그렇게 달려들다니 앞이 캄캄했다. 하긴 그런 조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은주는 자기를 소 닭 보듯 한다는 둥, 휴일에는 하루 종일 잠자는 잠보라는 둥, 다른 남자들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보기나 했느냐는 둥, 이런저런 불평을 가끔 듣고 넘기고 만 것이 드디어 터진 것이다. '은주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모양인가 동수는 곱씹어 본다. 아이들을 다섯 손가락도 모자도록 낳고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한 마디 불평 없이 꾸려온 은주의 인내심이 한계가 드러난 것이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동수가 퇴직하고 난 후 매일 해가 중천에 떠오르도록 이불을 뒤집어쓰고 뒤척이는 꼴을 은주가 보면서 속이 터졌을 것도 뻔하다. 오늘 아침 은주가 한마디 말없이 외출채비를 하고 나섰다. 무슨 일인가 싶어 걱정이 된다.   “ 여, 여보, 어디 가는 거야 ?” 은주는 어제보다 약간 누그러진 표정으로 머뭇거린다. 스트레스 풀려고 백화점 쇼핑을 간단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은주가 한 말이 생각난다. ‘ 우리는 한 이불을 덮고 있으나 너무 먼 거리에 살고 있어요. 나 같은 여자는 누군가 옆에서 내 수다를 들어주어야 행복해요. 그것이 병인 줄  알기는 하지만 … ’ 은주의 마음을 다독거리고 싶어 따라 나섰다. “ 여보! 같이 가, 내가 가트를 밀고 따라다닐 게!” 은주는 뜻밖인 듯 놀란 토끼 모양으로 현관에서 서성거린다. 승용차에 탄 은주는  미소를 짓고 있다. 운전하는 동수가 듣거나 말거나 계속 수다를 떤다. 그렇게 단순한 여자를 삐치도록 놔두었으니 내가 얼마나 한심한 놈인가. 은주는 반찬거리며 아이들 옷이며 소품 하나하나를 고르며 매장 안을 이곳저곳 하루 종일 돌아다닌다. 물건 하나를 고르는데 지나치도록 세심하다. 가트를 잡고 기다린다. 매장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반색을 하며 수다를 떠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은주 옆에 우둑 커니 서서 그 수다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왜 그리도 만나는 사람이 많은지 짜증스럽다. 에스컬레이터를 탄 부부가 손을 잡고 올라가는 것을 손짓하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외롭고 서러웠는지 알기나 하느냐는 표정이다.   하루 이틀도 아닌 은주와의 쇼핑과 나들이는 아니다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동수는 낚시를 생각했다. 입사하기 전 즐겼던 낚시였기에 곧 익숙해졌다. 울창한 숲속, 맑은 물, 바람결에 흔들리는 수초 사이에 찌를 띠우고 이따금 걸려드는 월척의 손맛을 즐기며 낚시에 푹 빠지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은주는 낚시를 싫어했다. 매일 도시락과 간식을 싸는 일이며 저녁 늦게 돌아와 잡은 고기를 손질 하느라고 싱크대며 주방에 비린내를 풍기니 질색을 한다. 늦게 돌아오는 날엔 또 밥상을 차려야 한다며 식사 시간에 맞추어 꼭 들어오라고 한다. 더구나 동수가 다음 날 낚시채비로 밤늦게 까지 거실에서 달그락 거리는 것도 신경 쓰인다고 잔소리를  퍼 댄다. 뒤늦게 잠자리에 든 동수에게 비린내가 난다며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걸 구걸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 동수의 자존심이다. '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 동수가 서재에 잠자리를 펴는 날이 늘어갔다. 별거 아닌 별거가 서로의 갈림길이 되었다. 이따금  큰 소리가 나기도 했다. 은주는 지금까지 한 남자의 아내와 가정주부로, 아이들의 엄마로 일인 삼역을 해가며 동수의 무관심속에서도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아왔던 억울함 날이 갈수록 더해 갔다. 은주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동수가 스스로 선택한 셈이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만 것이다. “ 이봐요, 더 이상 못 참아. 내가 파출부야. 어디가면 밥 못 먹어. 친정에 가요.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하세요.” 올 것이 온 것이다. '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뼈골이 빠지도록 돈 벌어서 밥 먹여 주고 등 따듯하게 해 주니까  시집갈 애들을 앞에 놓고 갈라서자. 이거지. ' 동수는 하루 종일 그 말이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렸다. 딸 순영이가 생각난다. 순영은 성격도 원만 했고 눈치가 빨라서 동수가 원하는 건 다 오케이다. 낚시도 종종 따라다녔다. 순영이 있으니 아무런 불편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은주가 곁에 없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은주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 가고 있다고 느끼자 손을 놓고 말았다. “ 당신은 당신 밖에 몰라, 밤낮 회사만 들먹 거리리다가 겨우 과장으로 명퇴하고 말아? 회사보다 더 중요한 건 아내고 자식이고 가정이야, 퇴직해서 달라지나 했더니 또 그 모양이야?” 지난 밤 은주의 막말이 떠오르며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결혼 이후 줄 곳 회사업무에 만 미쳐 가정을 팽개쳤으니 이제 와서 어쩌랴. 다음날 은주는 입을 옷 몇 가지를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한낱 나뭇잎처럼 지금까지의 모든 삶이 가물거렸다. 아이들이 외출하고 없는 것이 다행이다. 문제가 생길 때 마다 아이들은 언제나 은주 편이다. 아이들 앞에 막 되먹은 소리를 할 수 없어 참다보면 수세에 몰리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아빠의 잘못이니 참으라고 한다. 그럴 때 마다 돌담이 와르르 무너지는 같다. 아이들이 오면 아빠가 엄마를 내 쫓았다고 할까 싶어 은주를 붙들고 싶었지마는 이미 때는 늦었다. 친정에 간 은주는 보름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귀를 쫑긋이 세웠으나 아이들 전화다. 순영이가 외갓집에 드나들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묻고도 싶지 않았다. 순영이가 외갓집을 다녀오는 날엔 하루 종일 말이 없다. 그런 순영이가 못마땅했지마는 모든 것이 가장의 잘못이라는 죄책감 때문인지 오히려 순영이가 두렵기까지 했다. 어느 날 저녁식사 후 순영이가 아메리카노커피를 들고 오면서 엄마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했다. 온 몸에 피가 역류하는 듯 이성을 잃고 말았다. “ 듣기 싫어, 아빠를 뭐로 보는 거야! 엄마한테 가고 싶으면 너도 가!” 보름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는 은주. 스스로 지치고 외로웠던 분노가 터진 것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영이가 아빠의 돌발적 행동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태연하다. 이미 그러리라고 직감 한 듯 침착하다. “ 아빠는 사람도 아니야, 엄마도 마찬가지야, 모두 그 잘난 자존심 하나를 붙들고 무덤을 스스로 파는 거야, 외할머니가 나보고 뭐라고 하시는지 알아요?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는 것이래요. 못나면 못난 대로, 잘나면 잘난 대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했어요. 네 아빠, 엄마가 그걸 모르니 이 꼴이 아니냐. 외할머니는 엄마를 심히 꾸짖고 때로는 엄마를 붙들고 울기도 하셨어요. 엄마는 ‘아빠가 무서워 가고 싶어도 갈수 없다.’ 하셨어요.” 순영이가 어린애인 줄로만 알았더니 그렇게 속이 꽉 찬 아이 인 것을 동수는 미처 몰랐다.  순영이 앞에 애비가 질그릇처럼 부서진다. 다리가 떨리고 현기증이 났다. 순영이가 핸드폰을 내 코앞에 들이대며 엄마에게 무어라고 한마디 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젠 순영이 앞에 꼼짝 할 수 없다. 순영이의 애절한 눈빛 속에 나는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풀이 죽었다. 핸드폰을 받아들고 숨을 가다듬었다.   “ 여, 여보! 내가 잘 못했어, 당신 자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어?” 은주의 흐느끼는 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들려올 뿐이다. 핸드폰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하루하루가 천년 같은 침묵의 나날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기력을 잃은 것이다. 매일 잠만 퍼 자는 나를 보고 순영이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 아빠! 우리 낚시 가요. 다 준비 해 놓았어요. 날씨가 좋아요. 어서 !” 순영이가 동수의 목에 팔을 휘감고 재촉을 한다. 창문을 여니 뜰 앞에 활짝 핀 핑크색 과꽃이 눈부시다. 하늘은 끝없이 맑고 드높다.   “ 그래. 어서 가자. 순영 이와 같이 간다면 지옥 인들 못 가겠니?” 단골인 만수산 계곡 저수지로 차를 몰았다. 저수지 배수로 옆 나무그늘에 자리를 잡고 낚시 대를 폈다. 순영이도 옆자리에 세 칸 대 하나를 걸고 나란히 앉았다. 가끔 서로가 바라보며 씽긋 웃기도 한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수초사이로 잠자리가 이따금 지나간다. 먼 산봉우리에 걸린 하얀 구름이 한가롭다.   “ 아빠! 낚시하는 거야, 안하는 거야. 그러다가 월척이라도 물리면 어찌하려고?” 순영이의 말이 맞다. 낚시찌에 마음을 매달아 둘 수가 없다. 순영이가 호수 건너 편 구멍가게에 다녀오겠다고 간지 한 참 후였다. 그때 내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고개를 돌렸다. 은주였다. 핑크색 원피스에 짙은 자주색 모자를 눌러쓰고 소녀처럼 부끄럽게 얼굴을 붉히고 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다. 벌떡 일어났다. 은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여보! 보고 싶어 왔어.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어!” 은주는 끝내 반짝이는 이슬을 눈가에 비치고 만다. 보고 싶다는 그 절박한 한마디에 얼어붙은 동수의 마음은 봄눈 녹듯 녹아 버렸다. “ 으응! 여기 앉아, 순영이가 앉았던 자리야.” 보조의자를 내 밀었다. 아무 말 없이 없다. 은주가 김밥 한 덩이를 동수 입에 넣어준다. 포도주도 한잔도 건네받았다. 그때 은주 낚싯대 찌가 물속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낚싯대 끝이 요동을 친다. 내가 머뭇거리자 은주가 잽싸게 낚싯대를 잡아끌며 일어났다. 운주의 재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동수는 다급하게 소리를 지른다.     “ 두 손으로 낚싯대를 꼭 잡고 45도로 세워야 돼! 큰놈이야, 뜰 대를 받혀 줄께!” 은주와 그놈과 줄다리기가 시작 되었다. 은주의 낚싯대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 은주는 낚싯대를 세웠다가는 눕히고 다시 세우고 당겼다가는 끌려가고 다시 당긴다. 은주는 그 상황에 몰입하고 있다. 이따금 수면 위로 뻐끔한 아가미가 보였다가는 다시 물속으로 곤두 박칠 한다. 월척이 넘는 듯 했다. 팽팽한 낚싯줄을 타고 전해오는 그놈의 짜릿한 전율의 손맛을 은주는 이미 즐기고 있다. 그놈이 지친 모양이다. 이윽고 햇살에 번쩍이는 비늘을 들어내며 그놈이 은주 발 앞에 끌려나온다. 동수는 들고 있던 뜰채를 그놈 꼬리 밑으로 들이댔다. 그놈이 뜰대 망 속에 들어가자 몸부림을 포기한 듯 조용해 졌다. 월척을 넘어 45센티가 될 듯한  잉어였다. “ 여보! 잘했어. 프로야! 나도 힘들어! 당신 보약 감이야. 용봉탕을 만들어 줄게 !” 이웃 낚시꾼들이 몰려들었다. 잉어와 은주를 번갈아 보며 축하한다고 야단법석이다. 은주는 졸지에 꾼이 되었다. 이따금 마주치는 은주의 눈가엔  행복한 이슬이 반짝였다.   “ 여보, 그동안 당신을 뜯어 고치려고 한 것이 내 잘못이었어요. 내가 당신에게 맞추어 가는 삶이 행복인 것을 … 난 당신 것이에요.” 은주의 고백이다. 오히려 은주 앞에 점점 작아만 지는 동수는 자신을 주체 할 수 없다. “ 여보,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했어. 내 그릇이 얼마나 작은지 이제 깨닫게 되다니 사람도 아니야!” 언제 왔는지 순영이가 두 팔을 벌리고 동수와 은주를 한꺼번에 끌어 앉고 힘차게 외친다. “ 엄마, 아빠! 사랑해요. 엄마, 아빠 파이팅!” 만수산마루에 걸린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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