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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해는 서쪽에서 뜨는 걸로
이 경옥02-16 11:25 | HIT : 98
*내일 해는 서쪽에서 뜨는 걸로

주부라면 당연하게 오늘의 메뉴를 걱정한다. 아침은 뭘 하나, 점심은, 저녁은 또 뭘 해 먹지? 사는 동안 하게 되는 고민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먹는 것. 굶고 살 수도 없으니 요거요거 어쩌쓰까나..

물론 사이비주부인 나는 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아침을 건너뛰기 시작했고ㅡ자랑은 아니지만 이건 정말 나의 의지로 이리되진 않았다고 핑계는 대보지만 믿을 사람이 있을랑가ㅡ 점심은 간단히 외식, 저녁은 더 간단히 외식. 이것도 핑계를 대자하면 시부모와 함께 사는 이유로 식사자리가 좀 불편하다고 해야할까. 외식이라고 거창하게 먹는다기 보단 주로 백반을 먹는다. 돈으로 계산해보니 장봐서 음식하나 백반 외식하나 그 돈이 그 돈이다. 소고기 한덩어리 사면 이틀치 외식비다. 씀씀이가 헤픈 시어머니는 본인의 군것질거리와 머리지지는데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돈을 주로 쓴다. 아주 가끔 돼지고기와 계란으로 냉장고를 채워주시기도 하고.

뭐 처음부터 사이비주부였던 것은 아니었다. 아직은 어머니가 정정하셔서 아버지 식사를 챙겨 드릴 수 있기에 아침에 시부모님이 드실 밥과 국은 미리 끓여놓긴 해도 남들이 볼 땐 못된 며느리가 될 법도 하다. 같이 사는 마당에 내꺼 네꺼 나눌 수도 없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집부터가 내꺼가 아니기에 내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결혼 6년차까진 그냥저냥 숙이고 살았는데 이래저래 고부갈등으로 마무리 짓고 가족 아닌 가족으로 살아간다. 벌써 10년차, 늙으신 부모를 두고  측은하기도 했다가 죄송하기도 했다가 화가 나기도 하고 분가를 외치기도 한다. 생각해서 반찬과 국을 준비하면 아버님은 어머니에게 다른 것을 요구한다. 여러번 그런 모습을 보고나니 그 뒤로는 주방에서 손을 뗐다. 왠지 내가 시댁의 영역을 침범하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한 집안에서 살지만 나는 아직도 이방인이었다. 내가 이 집 며느리일 때는 제삿날과 명절날 뿐이다. 그 무렵은 늘 '애미야~ 식혜 언제 해야하냐~~'로 시작해서 '니가 이 집 큰며느리니 니가 다 알아서 해야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로 끝난다.
그래 뭐 내가 선택해서 온 집이니 내 의무는 해야겠다. 아니 한다. 제사땐 거의 혼자 준비하다시피 하는데 하나뿐인 동서는 서방님이 일한다는 이유로 오지 않는다. 어차피 안오니 기대도 안하지만 작년은 코로나 덕분에 명절도 피해갔다. 이젠 짜증도 안난다. 오히려 사람 많으면 설겆이만 느니 단촐하게 음식준비 하는 게 훨씬 편하다. 올 들어 제사가 있었는데 남편과 알콩달콩 전 부치고, 상 차리고, 같이 설겆이도 하고 좋더란 말이지ㅎㅎ구정 때도 아무도 오지 말라 해야겠다.

이렇듯 왠만해선 요리를 잘 하지 않는 나도 움직일 때가 있다. 동네삼촌들이 뭉칠 때다. 오늘은 한 분이 해삼을 잡아오신단다. 난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그런데, 해삼으로 장정 서너명의 저녁을 떼우자면 양이.. 부족할거란 말이지..
아무래도 손에 물을 묻혀야겠다싶어 부랴부랴 남편을 앞세우고 냉이를 캐러 갔다. 깨끗이 씻은 냉이는 고추장양념으로 버무리고, 삶아 둔 부지깽이나물은 들기름 팍팍 넣어 버무리고, 작년 열심히 말려둔 토란대와 고사리를 넣어 육개장을 끓였다. 손은 작은편인데 음식손은 커서 한 솥이 되버렸다. 국물보다 건더기를 좋아하는 내 취향이 적극 반영되어 국자로 떠지지도 않는다. 남편이 좀 과하지 않느냐 묻는 말에 '괜찮아~죽으면 줄어~'라는 말로 안심시킨다. 오래오래 끓여야겠다.. 좀 과한거 같긴 한데..

어쩌다 한번씩 뜬금없이 요리가 하고 싶을 때도 있다. 내가 먹고 싶은 요리가 있거나 위의 상황처럼 긴급대처가 필요할 때 또는 그냥 나도 주부랍니다ㅡ말하고 싶을 때. 이럴 때마다  남편은 창가로 가서 기웃거린다. 해가 서쪽에서 뜰지도 모른다고.. 콱 그냥., 막 그냥..

비록 지금은 사이비주부 노릇이지만
나도 꿈꾸는 주부로서의 삶은 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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