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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요
이 경옥02-03 11:09 | HIT : 104
잊지 말아요

새벽 5시 12분. 평상시라면 귀신이 업어가도 눈 뜨지 못할 시각. 어쩐일인지 목에 진동이 온다. 감기라도 걸린 것인지 옥죄는 느낌과 더불어 쉬지 않고 징징거리는 진동은 텀을 두고 전율을 준다. 움직일수록 조여드는 목. 이대로는 죽는 게 아닐까 싶어 번쩍 눈을 뜬다. 세상에, 이어폰을 꽂은 채  잠든 모양이다. 칭칭 감겨있는 이어폰을 따라 폰이 딸려 나온다. 꺼져 있어야할 액정엔 요양보호센타'란 글자가 또렷하다. 그렇다. 전화가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보세요?"
"여기 주간보호센탄데요. 눈이 많이 와서 아버님을 모시러 갈수가 없어요. 오늘은 집에서 쉬시도록 해주세요."
"네? 뭐라구요?"
"폭설로 인해서 차량운행을 못해요. 아버님께도 연락드려주세요."

아, 눈이 왔구나. 많이 왔나 보구나. 비몽사몽간에 받아든 전화는 통보만 하고 끊겨 버렸다. 이런 황당할 때가. 아버님이란 친정아빠를 이르는 말. 이 말은 아빠의 하루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가까이 사는 막내딸은 아빠의 전담 가정부이다. 위로 오빠가 넷이 있긴 하지만 모두 멀리 살기에 자의적, 타의적 몫이 되었다. 홀로 계신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어. 왜?"
"오늘 눈 많이 와서 차가 못 움직인대요. 센타 쉰다니까 쫌 있다가 밥 챙겨 드리러 갈게요. 기다리구 있어용~"

새벽잠을 방해받긴 했지만 자연현상을 두고 타박할 순 없는 일이니 기분좋게 아빠에게 내용을 전달한다. 그런데, 대답대신 콜록콜록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뭣이여? 아빠 감기 걸렸어? 추워?"
"추운갑다. 방바닥이 썰렁혀"
"보일러 안돼? 메인화면 바바요"

부스럭부스럭, 끙~차. 느릿느릿 일어서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야, 03이 써 있다?"
"03? 에러 떴나보네. 언제부터 그랬어?"
"몰라~ 어제 저녁에도 바닥이 차갑던디."

아고 못 산다. 연세가 많으셔서 살갗이 무뎌지셨다고 해도 본인 몸이 으슬으슬 해지실 때까지 그냥 계신 모양이다. 아직 5시 안에 있는 새벽, 상황이 이리되고 보니 따뜻한 침대 속도 편치않다. 서둘러 이불 밖을 나선다. 맨 살에 닿는 방기온이 차다. 에이 설마~ 우리집도? 다행히 보일러는 제 기능을 충실히 이행중이다. 바깥 날씨가 보통 추운게 아닌가보다. 거실 창을 슬쩍 열어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허걱. 눈님이 참 많이도 오셨다. 큰일이다. 마음이 바빠졌다.

새벽통화에 잠을 설친 남편은 마당과 골목길의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완전무장을 마친 나도 합세했다. 도로로 나가는 골목까지 치우다보니 영하의 날씨에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손끝은 누가 물어 뜯는 것처럼 어찌 이리도 아픈 것인지. 양쪽 주머니의 핫팩에 열이 오른다. 쉴새없는 손놀림에 뜨끈한 열기는 사치다. 어림잡아 7센치 정도 쌓인 눈이 갓길을 차지한다. 원치않던 눈 바리게이트가 생겼다. 6시부터 시작한 제설작업은 두 시간에 걸쳐 끝났다. 발가락과 손가락은 제 살이 아닌듯 낯설다. 그제서야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있었다. 살살 녹아드는 몸, 만사가 귀찮아진다. 하아, 눈 치우고 지쳤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고된 제설작업으로 달아났던 정신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자 슬슬 아빠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시장하실텐데, 얼른 아침밥을 해드려야 하는데. 마음이 먼저 언 도로를 뛰어간다. 8시를 넘어서도 제설작업 차량들은 보이지 않는다. 동네마다 할당된 염화칼슘은 도대체 어디에 쌓여 있는 것인지, 트랙터 앞에 장착해 눈을 치울 수 있는 장비는 국 끓여 드신건지. 기다려도 치워지지 않는 도로가 원망스럽다. 한참만에야 제설용 트랙터가 움직인다. 길이 열린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03. 보일러 콘트롤화면에 떠 있는 숫자. 전원을 껐다켜도 다시 뜨는 숫자. 몇 번의 전화 시도에도 해당 보일러 콜센타는 묵묵부답이다. 속이 터진다. 네이x창을 연다. 검색 중. 점화불량. 친절한 불로거들이 상세히 설명을 곁들어 두었다. 허나, 수박 겉핥기 식인지라 일단 뜯고 보자.
불꽃감지센서를 깨끗이 닦으란 말에 열심히 닦아 다시 꽂았다. 다른 부분은 손 댈 수가 없었다. 뭘 알아야 건드리지. 더 고장날까봐 겁이나니 이 쯤에서 물러선다.
전원 버튼을 켰다. 실내온도 12도. 차디찬 바닥은 꽃만세를 부르게 만든다. 이런 방에서 주무셨으니 얼마나 추우셨을까.

일단 가동된 보일러는 제껴두고 아침을 부랴부랴 차렸다. 식사를 하시는 동안 훌쩍이시는 모양새가 감기다. 식사를 끝내시자마자 차에 태우고 친정동네 보건소를 큰 골목으로 빙~돌아 찾아간 후 주사를 맞추고 약을 지었다. 보건소까지 걸어도 되는 거리지만, 혼자사는 노인집 주변까지 눈을 치워줄 착한 주민은 없었다. 서글픈 일이다. 덕분에 사위는 친정집 골목길까지 제설작업을 해야했다. 늦었지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돈 있으면 과자도 사먹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보일러는 작동된다. 바닥도 점점 따뜻해지고, 실내온도 숫자도 느리게 오른다. 아빠도 약을 드시고 잠이 드셨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몸둥이가 급 피로해진다. 눈꺼풀이 점점 내려 앉는다. 일찍 깬 하루가 참 길다. 실내온도 23도. 이제 맘을 놓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영하의 날씨. 도로마다 미끈미끈한 카펫이 깔려있다. 아무래도 제설작업은 눈만 치우는 것인가보다. 다른 동네는 하얗게 염화칼슘을 뿌려놓아서 차량들 망가진다고 세차하기 바쁘던데, 이곳은 그런 걱정을 미리 차단하려는 것인지 하얀 가루는 커녕 소금덩어리도 못 봤다. 속도30으로 슬슬 기어오니  잠도 솔솔 오고. 잠시 눈 좀 붙여야 할거 같다. 마당에 차를 세우니 오후 2시58분. 적어도 두 시간은 여유가 생겼다.

거실이 소란스럽다. 잠결에 시어머니의 외침이 들린 듯도 하다. 물, 이란 단어가 유독 많이 들리다. 꿈속인가보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사망 후에도 귀는 열려 있다던데,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 것인지 모르겠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그 어디쯤. 그리고는 다시 점멸. 또 다시 들려오기 시작하는 시어머니의 말소리. 점점 가까워진다.

"수도가 터졌는디 어쩐다냐?"

눈을 떴다. 잠든지 고작 한 시간만에 또 일이 생겼다. 무거운 머리를 드니 같이 잠들었던 남편은 보이지 않는다. 주섬주섬 잠바를 주워입고 현관을 나선다. 문이 벌어지기 무섭게 칼바람이 날아든다. 볼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다. 일단 후퇴. 마스크를 장착하고 핫팩을 다시 챙긴다. 바깥으로의 한 걸음. 급습한 바람이 뼈속에도 박힌다. 날씨 진짜 끝내준다. 수도꼭지가 떨어져나간 마당수도관에서는 정신없이 물을 뱉어낸다. 그 순간에도 수도세가 걱정이 된다. 대충 상황을 짐작하자니 보온조치를 해놓지 않은 수도가 얼었고, 약한 부위가 부러지면서 물이 샌 듯 싶다. 차가 없는 것이 남편은 수도꼭지를 사러 간듯 하다. 마당을 배회하며 그를 기다린다. 그 와중에도 눈은 눈이 시리게도 반짝인다.
물벼락을 맞으며 수리를 끝내고 작업장 연탄난로에 다시 몸을 녹인다. 붉어진 남편의 손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통증을 호소한다. 핫팩을 쥐어주고 수건을 칭칭 말아 조물조물 주무른다. 친정 집, 우리 집 번갈아가며 이번 한파는 한시도 마음편히 쉬질 못하게 한다. 연탄을 갈며, 다 타버린 연탄재를 들고 응달의 녹지 않은 골목길로 걸어간다. 불씨는 보이지 않으나 열기 간직한 연탄재를 빙판 위에 내려놓자 치이익ㅡ거리며 얼음을 녹인다. 덩어리를 발로 으깨려니 열기에 신발이 상할까 연탄집게로 톡톡 두드린다. 감질나게 부셔지는 연탄재. 조각조각마다 열기도 깨어진다.

"아빠~  깼어? 몸은 어때?"
"어. 괜찮어. 근데 03  또 나온다?"

아, 미춰~불것네~ 오늘은 쉴 팔자는 못되는 것 같다. 눈가에 연탄재가 걸린다. 발끝에 연탄재가 채인다. 죄없는 연탄재만 허공을 난다. 뜨겁게 타오른 시간은 과거가 되었다. 겨울이 오기 전, 점검을 했어야 했다. 괜한 자책과 반성의 시간. 16살 기름보일러. 겉은 멀쩡한데. 신경질적으로 콜센타에 전화를 건다. 여전히 대기중이다. 수리받기 참 힘들다. 이 참에 확 바꿔버려?

수시로 들여다 보지 않은 죄목은 잊었다. 단 한 번도 따뜻한 적 없었다는 듯 부서진 연탄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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