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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상/떠나지 않은 겨울 끝에서
백원기01-26 18:23 | HIT : 78
나의 단상/떠나지 않은 겨울 끝에서                   鞍山백원기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가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더니 웬걸 그 반대로 옥죄는 시간의 심술스러운 장난에 세워놓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한 술 더 떠서 기상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 안 할 수도 없다. 아기자기하고 비단 같은 길을 걷자고 했지만 그러하질 못하고 가장 가깝고 테마가 없는 평범하고 자주 접했던 성남시와 강남구의 경계, 해발 327m의 인릉산에 오른다. 봄기운이 감도는 날씨이지만 아직 겨울 속에 묻혀 있는 봄, 뿌연 수증기에 가린듯한 산, 길게 누어 서울 공항을 바라보는 인릉산 발치, 신천동을 들머리로 삼고 팔꿈치를 90도로 접어 길게 뽑은 스틱을 꼭꼭 짚으며 한 발짝씩 오른다. 밋밋한 산길은 노닥거리며 오르기 좋은데 어느 정도 오르다 긴 능선에 다다르면 계속되는 오르내림 길에 무릎 힘이 들었다 나갔다 한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씩 보이더니 이곳저곳에서 산님들이 줄을 잇는다. 작년 여름에 오지 못해 오늘 처음 보는 시커먼 나무들이 바닥에 너무 많이 넘어져있다. 아마 태풍에 쓰러진 나무인가 보다. 덩치 큰 나무들이 검게 들어 누었는데 많은 나무들이 토막으로 잘려서 묶어 놓은 것이 어디론가 화물차로 실어가려는가 보다. 그렇게 큰 나무들이 바람에 쓰러지다니 너무 놀라웠다.

봄 가뭄에 산길은 밟을 때마다 풀썩풀썩 흙먼지가 일어 등산화와 바지가 뽀얗게 뒤집어쓴다. 모두가 잠자는 듯 고요한 나무, 봄이면 화려한 꽃들이 수를 놓던 산길에 적막만 흘러 모두가 멈추어 있다. 나무껍질을 손톱으로 긁어본다. 끝도 들어가지 않는 딱딱함, 모진 세월 견디느라 추운 겨울 삭풍을 견뎌내려 굳어진 딱딱한 껍질, 나무 스스로 해 입은 옷인가 보다. 사람만 두꺼운 옷을 해 입는 줄 알았더니. 잔나무가지 줄기를 긁어본다. 죽은듯한 나무껍질 속에 파란 속이 보이고 물기가 손에 묻는다. 거친 세월 견뎌내고 살아 있는 생명이 경이롭기만 하다. 정상과 약수터 갈림길에서 나는 집사람에게 물었다. 산에 오면 기도를 하느냐고. 집사람은 휴식할 때 잠깐 하게 된다고 한다. 나는 말하기를 걸으면서 해보라 하면서 특히 가파른 길을 숨차게 오를 때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가장 절실한 기도를 짧게 해보라고 했다. 일상에서도 평온할 땐 기도가 잘 되지 않듯이 산에서도 룰루랄라 쉬운 길을 걸을 때는 기도를 깜빡 잊게 되고 가파르고 힘든 오르막에서는 열 마디 이내의 짧은 기도를 하게 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두 시간 만에 정상에 다다랐고 따끈한 차 한 잔이 온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 조금씩 벗겨지는 하늘, 아직 떠나지 않은 겨울 끝에서 봄볕이 따사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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