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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하루
이 경옥01-06 17:00 | HIT : 152

  비닐 위로 사락사락 눈송이가 떨어진다. 원없이 눈을 보니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마을을 둘러싼 산마다 골격을 드러낸다. 덮었으나 발가벗겨진 기분. 등성이마다 솜털이 빳빳하다. 산토끼는 어디로 숨었을까?

작업장에 연탄난로를 설치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한켠에 수북히 쌓인 연탄은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새카만 몸뚱이가 허옇게 탈 때까지 부른 배는 쉬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난로 한 뼘 근처까지 다가가야 아ㅡ 살덩이가 뜨끈뜨끈 하구만을 외칠 수 있지만, 연탄만의 매력 은은한 미열은 작업장 문을 엶과 동시에 알 수 있다. 고작 비닐 한겹이지만 안과 밖의 온도차는 길고양이들을 불러 들이는데 모자람이 없다. 한동안 침대가 되주던 쇼파엔 고양이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아침마다 닦아야 하는 수고는 냥이의 쥐구멍을 찾지 못함이였고, 눈이 내려준 덕분에 쥐구멍을 찾을 수 있었다. 훗, 약 오르지롱~

새해 첫 날이라고 여기저기서 떡국 떡을 준다. 아침으로 이미 떡국을 먹었다. 두 그릇 먹었는데 두 살 먹는 건 아니더라. 그래서 세 그릇 먹었다. 아들은 나이 먹기 싫다며 꽁치 김치찌개만 먹는다. 아무리 아이들 성숙도가 빠르다지만, 벌써 사춘기인건지 갱년기인건지 말섞는 것도 싫어하고 본인 하고 싶은 것만 하려한다. 조금이라도 먹으라 했더니 간섭하지 말라며 손을 휘젓는다. 하아, 그래 뭐 지 배고프지 내 배고픈가. 그 덕에 아들 것까지 세 그릇이 됐다. 배 터져불것네..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었는데도 여전히 눈이 내린다. 동네길은 제설이 되지 않아 소복히 눈이 쌓였지만 큰 도로는 괜찮지 않을까 은근슬쩍 엉덩이를 들썩여본다. 난로를 마주하고 앉은 남편은 벌떡 일어서며 연탄의 타오른 정도를 확인하고는 한마디 한다.
"가자"
아쌰뵹~~ 제법 굵은 눈발이긴 하나 선뜻 나서주는 남편이 고맙다. 눈웃음 한 번 씽긋 지어주고 종종종 앞서 걷는다. 마음은 벌써 미끄러져 도로를 질주한다. 시동은 걸리고 미처 예열되지도 않은 싸늘한 실내에 잽싸게 올라타 벨트를 맨다. 썬루프 실내커버를 여니 떨어지는 눈송이들이 유리에 닿아 녹는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눈송이를 보고 있자니 마치 화이트홀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드라이브를 거부한 아들을 놔두고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긴다. 역시 도로는 제설이 되어 녹은 상태라 운전하는데는 조금 덜 위험하다. 앞유리를 뚫을 기세로 달려드는 눈발을 두 시간 가량 물리치고 나서 집으로 귀환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었지만, 눈만큼 좋은 렌즈는 없는 듯하다. 모두 삭제. 머릿속에 담아둔 것으로 만족하련다. 주차를 하고 차문을 열고 두 발을 가지런히 모아 마당바닥에 안착시키고 자연스럽게 일어나 차 문을 닫는다. 1초의 연속동작이 끝나고,

으악!!  온 도로의 때꾸정물은 죄다 차체에 묻혀 왔다. 염화칼슘이 잔뜩 묻은 타이어는 회색으로 변했다. 마당 수도도 얼었는데. 차가 커서 자동세차기에는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손세차장에 가려니 족히 30분은 넘게 걸린다.  질끈 눈을 감고 날이 풀리기만을 기다리기로 한다. 동지가 지났어도 아직 낮은 짧다. 곧 어둠이 다가올 것이다. 오늘은 포기하는 것이 맞다. 다시 작업장 난로 곁으로 돌아온다. 난로 위에 석쇠를 얹고, 남아도는 떡국떡을 올린다. 부풀어오르다 퍽!하고 쪼그라드는 떡을 보는데 나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눈이 내리기전, 열심히 손 세차를 했었는데.. 혼자서 하느라 막말로 디지는 줄 알았는데.. 눈이 온다는 사실에 들떠서 부풀어오른 마음이 시커멓게 더럽혀지고보니 쪼그라든 떡마냥 쭈글댄다. 뭐 푹해지면 또 세차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독이고보니 쭈글대던 떡이 배를 통통히 불리며 맛나게 그을린다. 빠삭, 빠그작. 아고.. 이 약한 사람은 씹지도 못하겠다. 이리 단단하게 다독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아무래도 갱년기는 내가 오는가보다. 뭐가 이리 맴의 기복이 심한겨ㅡㅡ


D.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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