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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단편] 완전 이중살인범죄 (전편)
이일우01-31 05:25 | HIT : 213

나는 요즘 들어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내가 얼마 전에 어디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차의 브레이크가 갑자기 고장나 가로수를 들이받아 요절날 뻔했던 사건, 어두운 극장식 홀에서 누군가 나를 노리고 멀리서 독 발린 바람화살을 쏘았던 사건, 바로 며칠 전에 에도 강변에서 바람을 쐬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등뒤에서 탁 밀어버렸던 사건 등...

그러나, 내 命(명)은 생각보다 질겨서 이럴 때마다 죽지는 않았었다. 브레이크 고장 사건도 나중에 알아본 바, 브레이크를 누군가 건드린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를 노리는 자가 누군지 이미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바로 나의 처다.

아내는 나보다 10년이나 연하로, 별로 잘 생기지도 뛰어난 재능도 없는 나와 정말 알 수 없는 인연이 맺어져 부부가 된 사이였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나와 아내를 보면서, 돼지 발굽에 황금편자라고 했다. 여자가 남자에 비해 너무 아깝다고...

그도 그럴 듯이, 아내는 나보다 젊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보다 훨씬 배운 것도 많고 실력도 있었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일류 대학 국문학과 졸업을 한 엘리트로서, 졸업하고 나와 결혼을 한 뒤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성찰을 아끼지 않아서 지금은 이 일본에서 제일 가는 추리작가 중 한 명이었다. 대단한 有名人(유명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낱 월급쟁이에 불과한 데다, 그나마도 4년 전에 거품경제 붕괴로 인해 일하던 회사에서 構造調整(구조조정)되어 그녀에게 빈대 붙어 살아가는 처지가 된 나에게 그런 소리가 안 돌아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다 2년여 전부터, 불원간 아내는 부쩍 눈치가 수상해졌다. 처음에는 그래도 제 딴에는 자기 서방이라고 열심히 새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던 그녀도 급기야 낌새가 변한 것이다.

그녀는 화장이 처녀 시절 못지 않게 진해지고, 가끔은 어딘가 나가 밤을 새고 돌아오는 일까지 생겼다. 그녀의 말로는 일본 제일의 추리작가인 자신이, 바깥에 나가 사업상 이야길 하려면 이런 정도는 당연하지 않느냐고 따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미 깨닫고 있었다. 아내가 그때부터 무능한 남편인 나에게 정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사실을 눈치로 보아도 대충 알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요즘 들어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젠 정말이지 나도 전혀 아내가 한때는 평생을 같이 하리라 마음먹었던 배우자 지간으로 보이지 않고, 철천지 원수 같이 보이기만 한다. 한 마디로, 작금의 내 인생을 괴롭히는 애물단지같이 보이는 것이다.

하긴 아내도 자기 입장에선 피차 마찬가지이겠지만... 하지만, 아내는 자기의 사회적 입장을 고려하여 정식이혼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부부가 이렇게 완전한 냉전시대로 돌변해 버린 것일까?


하긴 아내가 나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한데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단지 내가 재수도 없고 무능해서, 직장을 잃고 유명한 추리작가인 자신에게 빌붙어 살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만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옛말이 되어버렸지만, 우리 부부에게도 자식이 있었다. 그것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살점을 떼어줘도 쓰라리지 않을 귀여운 딸이...

지금부터 10년 전, 결혼한지 3년이 지나도록 전혀 태기가 없던 처가 여자아이를 순산했을 때에 나는 너무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니까...!!

내가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겨우 낳은 딸인지라, 사실상의 마지막 자식이어서 우리 부부는 여자아기가 태어나자 불면 날아갈까 하고 고이고이 키웠다.

그런데 3년 전 봄, 마침 그 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던 딸아이가 그만 교통사고로 遺命(유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그 날 나는 어린 딸을 데리고 시내로 나들이를 나갔는데, 내가 마침 뭔가 일이 있어 전화를 걸려고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있을 때에 딸이 혼자 주위를 배회하다가 운전을 부주의하게 하던 취중 운전자의 차에 치이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그 취중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복역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100% 운전자 잘못이라고 해서 한번 죽은목숨을 결코 물려주지는 않는 게 세상사였다.

아내는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어린 딸의 시체를 부여잡고 마치 정말 미쳐버리기라도 한 듯이 꼬박 이틀 동안 통곡을 했었다. 정말 생떼 같은 무남독녀를 그토록 허망하게 잃고 말았으니...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아이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겨우 사태가 끝나자 아내는 그 때, 딸이 차에 치어 죽은 것은 순전히 내가 아이를 잘못 보았기 때문이라고 나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었다. 날더러 하나뿐인 자신의 딸을 잡아먹은 놈이라고 별의 별 소리를 다 하면서...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억울한 누명이었다.
물론 내 잘못도 있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운전자의 잘못이었다. 내가 결코 나의 상황을 변명하려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그런 것을, 아내는 오직 내가 연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책임을 돌렸던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의 사이는 결정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딸의 죽음으로 인해...
정말 그 전에는 다정다감하기만 하던 아내가 그토록 무서운 얼굴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었다. 아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 직후부터였다.
우리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專導體(전도체)의 고리 역할을 해주던 귀여운 딸이 하루아침에 이슬처럼 사라지고 말자, 우리 부부 사이는 급속히 냉각되어갔다.
아내는 그토록 애타게 사랑했던 딸이 죽자, 그 슬픔으로 인해 심한 갈등을 겪어 사람이 변했는지 그 뒤로부터는 나에 대한 애정이 싹 사라진 듯 했다. 그녀는 머잖아 집에 있지 않는 빈도가 높아졌으며, 가끔씩 하지 않던 술까지 하고 밤늦게 취해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나도 딸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크면 저럴까 하고 애써 그녀의 처지를 이해해 주었지만 어느 날인가는 우연히 아내가 어떤 남자와 호텔에 출입하고 있다는 친구의 증언을 들은 뒤론 문제가 달라졌다.
이미 아내는 나에게 마음이 멀리 떠나, 자신이 나름대로 딸을 죽였다고 믿고 있는 범인인 나에게 반기마저 들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남자와 난잡한 생활을 하면서...

내가 급기야 참다못해, 어느 날인가 아내에게 그런 문제를 들고 따지자 시작하자 아내는 오히려 나에게 반기를 들고 대들기 일쑤였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이미 몇 년 전에 직장까지 잃고 나에게 붙어살고 있는 주제에... 남자든 여자든 사회생활 하려면 술도 마셔야 하고 가끔 밤샘도 하고 들어와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
그리고 솔직히, 내 사랑하는 새끼도 이젠 없고 집에 있는 거라면 나무토막 같은 이름뿐인 늙은 남편만 있으니 누가 집에 들어오고 싶겠느냐고... 이제는 정말 당신 꼴도 보기 싫어!"

아내의 한없이 차가워지고 냉정한 선언이었다. 나는 그때, 아내의 너무도 비정한 목소리에 울화가 치민 나머지 그녀의 뺨을 올려붙여 버리고 말았다.
아내는 나에게 강하게 한 방 맞고 나가 떨어졌었다.

'이런...!'

나는 그때, 감정을 못 이기고 엉겁결에 저지른 행위에 대해 그때는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때, 아내는 나의 강한 주먹을 맞고 기절하고 말았으니까...

그녀는 다음 날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그때 어찌나 심하게 맞았는지 한달 가까이나 얼굴에 멍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그때, 나도 모르게 저지른 일에 아내에게 크게 사죄하였으나, 아내는 전혀 듣지도 않았다.
"됐어... 어차피 이제 당신에게 애정 같은 것은 남아 있지도 않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이번에 그것을 직접 확인하니 속이 시원하군 그래.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았어?
어젯밤에 나를 팬 것은 결코 순간적인 욱하는 성질에서 한 짓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에게 서서히 식은 유감이 결정적일 때 무의식적으로 폭발했을 뿐이라고 말이야..."

그때, 아내는 눈두덩이에 파랗게 멍이 든 흔적을 얼음으로 찜질하면서 나에게 이처럼 되물었었다.

나는 그러나, 그때 그 질문에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였다.

원래 나의 잘못이었던 데다가, 그 아내의 말이 결코 감정에서 나온 헛소리가 아니라 바로 내 마음속의 의표를 찌르는 것 같은 강한 여운을 남겨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정말 나의 심중을 아내에게 들키고 만 것 같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서 한동안 무거운 침묵만 흐르다가 부부싸움은 끝이 났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겪기까지 했으면서도, 아내는 그 뒤 나를 본 척 만 척 할뿐 끝내 이혼해달라는 소리까지는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 이유는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남편인 나에게 아직 미련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밀리언셀러 추리작가라는 사회적인 지위가 있으므로 아직 유교 봉건적인 사고방식이 상당히 남아 있는 이 일본에서 이혼이라는 것이 유명인사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일 게다. 나도 그 정도는 벌써 알고 있었다.

유명 여류작가가 과부도 아닌 이혼녀라면, 선진국치고는 아직도 너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이 나라 일본에서 당장 독자와 주위의 시선이 따가워질 것이 뻔하고, 자신의 인기도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 뻔하니까... 아내는 결국, 자신의 인기가 주위의 이미지 평가를 능가할 때까지만 이해득실 차원에서 이혼을 보류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 후, 나와 아내는 명목상의 부부일 뿐 실제 2년이 훨씬 넘도록 부부관계 한번 가져보지 못한 채 그냥 호적으로만 부부로 남아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아내가 나를 완전 남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순전히 90% 이상 자신의 힘으로 사고 장만한 이 집과 재산에 대해 기거하고 어느 정도의 처분권을 준다는 것 뿐이었다. 하긴 이것도 자신의 인기관리를 위해서겠지만...

아내는 한 달에 한번씩, 몇 년째 백수로 지내고 있는 나에게 찾아와 얼마간의 생활비를 훌쩍 던져 주고는 밖에 나가 며칠씩 안 돌아오는 게 보통이었다. 분명 밖에 남자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주 집을 비울 리도 없지만 가장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30대 중반의 여성이 2년 넘게 나와 동거하지 않으면서 남자 없이 견딜 리도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도 명목상의 남편 수행은 하기 위해, 초 인기 추리작가인 그녀의 일은 가끔 거들어 주고 있었다. 아내가 소설을 구상하면 그 소설을 대신 옮겨 적거나 오타나 맞춤법을 고쳐 써주는 일을 내가 맡고 있었던 것이다. 생활비는 그 수고비로서 주는 것이다. 어느 새, 우리 사이는 부부가 아닌 소설가와 조수 사이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어쨌건 아내도 나도 서로에게 애정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이렇게 보면 아내가 2년여 전에 나에게 구타를 당하고 나서 나에게 원망했던 그 소리, [어쩌면 아내 자신을 팬 것은 결코 순간적인 욱하는 성질에서 한 짓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에게 서서히 식은 유감이 결정적일 때 무의식적으로 폭발했을 뿐이라고 말이야.] 라는 그 당시의 증언이 어쩌면 정말로 맞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내가 무의식적으로 아내를 정말로 해꼬지하고 싶다는 은연 중의 본심이 감정에 복받쳐 무의식적으로 폭발해버린 것인지도...

나는 요즘 들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정나미가 뚝 떨어진 나머지...

'망할 년... 끝내 어제도 돌아오지 않았군... 지금쯤 어디 놈팽이의 품에 안겨 지금까지도 한밤중이겠지?'

나는 어느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가 어제밤에도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그녀에게 한번 더 진저리를 쳤다. 아내가 이 남자 저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다닌다는 것은 이미 설명했듯이 2년여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우리 사이의 사실상의 부부 관계는 벌써 有名無實(유명무실)해진지 오래였던 것이다.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대충 치우고 토스트를 구운 후, 혼자만의 식사를 해야만 했다. 여느 때처럼... 그리고, 배달되어 온 신문을 집어다 펼치고서 홍차를 토스트와 함께 마시면서...

여기까지는 언제나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평상시의 요즘 내 생활의 나날이었다.

그렇지만 운명의 그 날~ 그 날이 바로 나의 운명을 결정짓는 날이 될지는 당시로서는 나 자신조차 꿈에도 상상 못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나는 그 날도 아무런 할 일도 없이 집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나를 파멸로 이끌었던 악마의 낚시밥은 바로 그 날 오후에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그날, 약간은 고즈넉한 기분이 드는 초여름의 한낮, 급작스레 거실에 있던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아내의 업무에 대한 전화는 집으로 오는 게 많았기에, 어쨌건 그런 전화는 내가 받지 않으면 안되겠기에...

'여보세요.'

그런데, 내가 전화를 받고서 누구냐고 묻는 순간 저 건너편에서 울려오는 음산하기 짝이 없는 웃음소리...!!

'크크크... 크핫핫핫...'

내가 잘못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굵직한 한 남자의 음성이었다.

"누구요? 장난전화라면 끊겠소."

나는 그렇게 밝히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려고 하였다. 집에 있다 보면, 이런 미친놈들의 전화도 가끔 걸려오는 것이었기에...

그러나, 나의 그 행동을 제지한 것은 막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그 전화기에서 울려온 커다란 고함소리였다. 워낙 목소리가 컸기에, 귀에 대지 않고 있어도 확연히 들렸다.

"끊지 마! 장난전화도 아니고 잘못 건 것도 아니야. 당신에게 용건이 있어서 그래."
난 그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다시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나한테? 처음 들어보는 목소린데? 잘못 건 것 아니오?"
"잘못은 무슨? 내가 한번 그 집이 어떤 집인지 말해볼까? 그 집은 지금 한창 잘 나가고 있는 밀리언셀러 추리작가인 후네이 미유카 씨 댁이지? 전화 받고 있는 당신은 바로 그 부군되시는 분이고?"

나는 그 증언에, 잠깐동안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건 무슨 소리야? 아내의 팬인가? 아냐. 마치 내게 용건이 있다는 듯이 말하잖아? 나는 뭔가 일이 심상찮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람에게 강하게 되물었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야?"

나는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건 주인공의 신원을 재촉하고 말았다. 그러자, 더욱 놀랄 소리가 송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내가 누구냐고? 당신 마누라하고 일전에 사귀었다가 채인 사람... 몇 번인가 당신 마누라와 잔 일도 있지..."
"뭐. 뭐야? 너 이 자식, 너 누구냐?"

나는 그때,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서 그 전화건 사람에게 욕을 하면서 되물었다. 그러나, 그 자는 되려 천연덕스러운 태도로 나에게 이처럼 밝혔다. 되려 떳떳하다는 듯이...

"허, 이러지 마슈. 난 그때 유부녀인줄 모르고 그랬으니까... 당신 부인 재작년부터 바람난 것 알지? 난 그때 처음으로 사귀었던 남자요."
"너, 대체 무슨 일로 나에게 전화를 건 거야?"
"이거 왜 이리 푸대접인가요? 난 지금 당신을 구제하려고 일급 비밀정보를 알려주러 전화한 구세주인데..."
"뭐? 일급 구세주라구?"
"그렇수. 솔직히, 만약 조금 전에 전화를 받은 사람이 당신 아내 목소리였으면 그만 두려고 생각했수. 그런데, 댁이 바로 받는 것을 보니까, 이것도 아무래도 그냥 덮어둘 수는 없는 운명 같아서 알려주려고 했는데... 싫으면 그만 둡시다. 하지만, 아마 안 들으면 댁은 오래 못 살 거유!"

놈은 그렇게 밝히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하였다. 뭐? 오래 못 살다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순간적으로 불길한 느낌이 등골을 오싹하고는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잠깐! 정 그렇다면 용건만이라도 알려줘."

나는 이 놈에게 화를 버럭 내려다가, 이 놈이 무슨 연유로 직접 우리 집에까지 전화를 걸어 나에게 뭔가를 밝히려는 게 있는 듯 싶어 일단 감정을 삭이고 놈의 용건에 귀를 기울였는데...

뜻밖에, 놈은 내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전화는 끊지 않고 한 가지 중대한 제보를 해주었다.

"아, 그게 궁금하셨군. 하긴 그럴 줄 알았지. 정 그렇다면 말씀은 해 드리겠는데..."
"그게 뭐요?"

나는 조금 전까지 그 남자에게 완전 욕지꺼리를 하던 언행을 낮추고, 그에게 그 사실에 대해 조심스레 캐물어 보았다.

"실은 말이오... 나는 댁에게 아주 중대한 정보를 가르쳐 주려고..."
"중대한 정보라니?"
"사실은 말이오. 당신 부인이 지금 가까운 시일 내 당신을 살해할 계획을 짜고 있는 것 같소. 며칠 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 함께 술 한잔하면서 물어보니까 당신 부인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사실에 대해 술술 불더군... 지금 사귀고 있는 애인과 결혼하려면 당신이 없어져야겠다고... 머잖아 자살을 위장해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흥얼대는 소릴 들었어요.
뭐, 자긴 사회지도급 인사라, 남의 눈 때문에 차마 이혼은 못 하겠고 그렇다고 저 산송장 같은 남편이 계속 내 호적에 붙어 있는 것도 무척 싫고... 그래서, 없애버려야만 뒤가 깨끗해지겠다나? 아무리 들어도 취한 김에 내뱉는 虛言(허언)같지가 않았소. 오히려 취중진담임이 확실했지. 그래서, 늦기 전에 당신에게 이 사실이나 가르쳐 드리려고..."
"그, 그게 사실이오? 우리 마누라가 나를 죽이려고 벼른다고?"
"허, 이 양반 속고만 살았나? 나도 피차 그 여자에게 채이고 배신당한 건 마찬가지 처지길래, 이거나마 댁에게 알려드리고 싶어 전화한 거요. 믿기 싫으면 말고... 난 이제 용건 전했으니 이만 끊겠수다... 잘 있으시오. 나도 뭐 어차피 간통범인 이상,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았자 유리할 것 없으니..."

전화 속의 목소리는 그 사연만을 남기고, 이내 뚝 끊어졌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나는 여러 번 다시 전화 스위치를 누르면서 재통화를 시도했으나 소용없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부부하고 기분 나쁜 기계 송신음만 연달아 들려올 뿐이었다.

나는 거기서 그만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전화기를 가만히 내려놓은 후, 나는 한동안 사색에 잠겨 과연 이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걸려온 전화내용이 정말일까 하고 머리를 굴려보았다.

우선, 지금 나에게 이 사실을 밀고한 남자가 아내의 정부였다는 제보가 사실일까? 나는 그 사실에 대해 나름대로 이리저리 상황을 판단하여보고는, 이내 그것은 정말일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 전화 건 남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나이는 한 20대 중후반 정도로 들렸다.

나도 다른 건 몰라도 귀썰미는 매우 강한 편이었던지라, 음성만 듣고도 그 인물의 나이나 연령은 대강 짐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대학을 막 졸업하고서 사회에 나와 가진 것이라고는 남아도는 힘뿐인 젊은 남자와, 가정이 파탄난 돈 많은 30대 유부녀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은 굳이 상상할 것도 없이 어디에나 있는 흔한 스토리 설정에 불과했다. 텔레비젼의 불륜 드라마에서도 언제나 단골메뉴로 나오는 흔한 배경일 뿐이다.

단지 그 유부녀가 내 아내라고 응용만 해보면, 아무 것도 부자연스러울 것이 없다. 굳이 의심할 필요도 없다.

세상의 불행이란, 당사자인 나의 문제라고 결코 예외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냉정해지면 누구나 깨닫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갈 상황이다. 생각해 보니까 과거라면 몰라도 근래, 즉 한 3년 전부터의 아내는 넉넉히 그럴 여자다.

나뿐 아니라, 많은 남자를 울렸으리라... 지금 내가 그 상황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내가 직접 바로 그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데 모를 수 있을까?

타락할 대로 타락하고서도, 사회유명인사라는 체면 탓에 나와 이혼을 하지 않고 있는 아내의 행태를 말이다.

더욱이 그 시기가 3년 전이라니... 아내가 타락하고 밤샘하고 돌아오기 시작한 그 시기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어떻게 놓고 보면, 정말 나처럼 그녀에게 실컷 농락 당하다가 쓰레기처럼 버림받은 남자가 나 하나뿐이라고 보는 것부터가 염치없는 기대일 지 모른다.

자신의 육체적 매력과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서 벌써 여나문이나 되는 남자를 울렸을 거라고 보는 것이 더욱 지금의 상황에 걸맞다.

그래서 거기에 앙심을 품은 한 남자가 우연히 그 상황을 알게 되어, 그 위기로 인해 생길 患亂(환란)에 대해 복수심 비슷한 감정에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하니, 비록 그 자식이 내 아내와 일전에 간통했던 남자라 해도 딴은 기특하다.

"음... 우연히 엿듣게 된 상황인데, 당신 아내가 당신을 노리고 있는 것 같으니 조심하라고 했지? 당신을 자살을 위장하여 죽이려는 것 같다고..."

나는 그 불길한 전화를 들은 후에, 아내의 容態(용태)에 대해 더욱 의심을 가지게 됐다.

아무리 추측해보아도 그 제보가 거짓말 같지는 않다. 이미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나를 노리고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부터 깨닫고 있는 바가 아니던가? 그 장본인이 아내라는 사실도...!!

'이거... 아무래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어... 그냥 있다간 언제 내 목을 눌려버릴지 모르겠다...'

경찰에 신고할까도 생각했지만, 그게 아무 소용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내는 일본 최고의 추리작가 중 한 사람으로서, 법의 허실과 이런 급작스런 경우의 대처에도 達人(달인)이었다.

자칫 섣불리 이 사실을 경찰에 고발했다간, 나를 피해망상증에 걸린 것으로 치부하여 정신병원으로 보내 버리거나, 아니면 그것을 구실 삼아 정말 이혼소송을 할지도 모른다. 정신병자 남편과 같이 살 수 없다며... 증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데 내가 당하지,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지식과 수완이 나보다 몇 수 위에 있는 아내다. 그런 생각을 못할 리 없다.

결국 설 잡았다간 오히려 불 속에 기름 부은 꼴이 되고 말 것이 뻔하니,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도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래서, 나는 아직 경찰에는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있었다.

'이 일을 어떡한다? 빼도박도 못하니... 아내가 지금 누군지 모르는 정부놈과 짜고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은 틀림없는데... 증거가 없으니 경찰에 신고도 못 하겠고... 경찰에 신고했다간 오히려 억울하게 내가 정신병자나 의처증 환자로 몰려, 위자료 한푼 못 챙기고 쫓겨나기 십상일 거야... 지금 마누라는 그것을 노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그 날도, 이 문제에 대해 이리저리 고심하면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마침 아내가 그간 정리한 추리소설 파일을 출판사에 갖다 주겠다며 집을 비운 날이었다. 나는 아내가 없는 동안, 아내의 서재에 들어가 보았다.

일전에 그 전화가 걸려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아내에 대한 의처증이 생긴 후로, 나는 아내가 집을 비운 때만 되면 이 서재에 들어와 아내의 행적을 살피곤 했다. 혹시 아내의 무슨 약점을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그 전화가 걸려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날이었다. 그 전화가 사실이라면, 아내가 내 목숨을 결정적으로 노릴 시기는 바로 지금이 제일 적당하다.

대개 추리소설이나 범죄파일을 읽어보면, 지능범은 살인계획을 완벽하게 세운 뒤 한두 달이 지났을 때 실현에 옮긴다니까... 나도 잘 나가는 추리작가의 남편으로서 그런 정도는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럴 때였다. 그날도 아내의 서재를 살피러 아내의 방에 들어간 날, 아내는 어젯밤도 추리소설 원고를 쓰다가 잠이 든 듯, 쓰다 만 원고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날 바로 아내의 책상 위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것은 아내가 마침 새로 쓰기로 작정한 원고인 듯, 어떤 소설의 시놉소스가 책상 위에 호치키스로 박아진 채로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이 나의 주의를 끌었기 때문이었다.

'음? 아내가 이번에 새로 쓰기로 한 소설 시놉소스인가? 무슨 내용인지 한번 보자!'
나는 아내의 소설 줄거리를 치켜들고 책상 위에서 읽어보았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원래는 사이좋은 부부였으나, 결혼한지 10년이 되도록 아이가 태어나지 않고 그로 인해 애정이 식자 아내는 귀찮고 자신의 인생에 방해만 되는 남편을 없애버릴 음모를 꾸민다.

아내는 마침 추리작가였던지라, 남편에게 추리물에 쓸 원고의 일부라며 어떤 범인의 유언장을 자기가 부르는 대로 좀 작성해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을 손을 다쳐 쓸 수가 없다고 변명하고는... 남편은 속도 모르고 그녀가 부르는 대로 자필로 유언장을 작성하고...

그녀는 그런 후, 남편이 평소 먹고 있던 영양제 캡슐에 한 개의 청산가리가 든 캡슐을 몰래 섞어 넣었다. 이렇게 하면, 언제건 남편이 가까운 미래에 그 캡슐을 마실 차례가 되었을 때 독을 먹고 즉사할 것이다.

남편은 방안퉁수라서 당연히 웬만한 일이 없는 한 집에서 죽을 것이고, 설혹 재수가 없어 나가서 죽는 경우가 생긴다 해도 집에서 그이의 자필 유언장을 찾았다며 그 문제의 가공된 자필 유언장을 조사 나온 경찰들에게 보여주면 영락없이 그는 밖에 나가서 청산가리가 든 캡슐을 먹고 자결한 것으로 보이고 말 것이다. 이러면, 완전범죄는 가능해진다고 아내는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상이몽이었다고나 할까? 그 당시 남편 역시 아내를 죽이고 어딘가 시체를 암매장할 작정을 하고는 아내가 자고 있을 때 목을 졸라 아내를 먼저 죽여 버린다. 그리고 나서, 시체를 끌어내어 멀리 사람이 전혀 모르는 깊은 산속에 가서 구덩이를 파고 묻어 버린다.

그리고, 그 위에 나무를 심어버린다. 이렇게 하면, 천년만년 끄덕없이 아내가 죽을 줄 모르고 실종처리를 해도 문제가 없기에...

그는 집에 돌아와 아내의 실종신고를 한다.

요즘 들어 이웃 사람들도 이미 자기네 부부가 무척 사이가 나빴고, 그 집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아내가 그 남자와 눈이 맞아 해외로 도망이라도 갔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오쟁이진(아내가 다른 남자와 야반도주함) 줄 알고 조금도 의심살 것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내를 죽이고는 실종신고를 하고서, 일정 기한이 지나도 생사가 확인되지 않으면 아내의 재산은 어차피 사망처리되어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었기에...

그러나, 마침내 아내가 살아 생전에 장치한 덫에 남편도 걸릴 날이 다가오고 말았으니...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그가 먹던 영양제 중에 독약 캡슐이 들어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내가 살아 생전에 독약이 든 캡슐을 넣어 두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남편은 그 캡슐을 먹고는 뱃속에서 캡슐이 다 녹자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공교롭게도 그가 독을 먹고 쓰러진 현장은 바로 생전에 아내가 주로 쓰던 안방이었고, 그 한가운데서 죽자 안방의 문갑 서랍 안에 감춰두었던 아내의 가공된 남편의 유언장은 며칠이 지나 시체와 함께 이웃이 신고한 경찰에 발견되고 말았다.

자필 유언장이 죽은 현장의 서랍 안에서 발견되자, 당근 경찰은 이 사건을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 여기게 되었고, 자살동기는 그 가공된 유언장에 쓰여진 대로의 나름대로의 원인이 이유일 거라고 수사를 종결짓게 되어서 두 부부간의 [상호살인의 완전범죄]는 누구에게도 밝혀지지 않은 채로 끝나게 된다.


'히야...'

나는 아내의 천재성에 기가 막혔다. 완전범죄를 짜내는 트릭의 스토리 한번 기가 막히다.

이럴 정도의 재능을 갖고 있으니, 주위에서 아내를 일본 추리작가협회의 보배라고 떠받들지...

하지만, 이런 것을 보고 감탄하고 있을 시간은 전혀 없었다. 왜냐면, 조금 흥분이 가라앉고 이 시나리오에 신경이 쓰이자 이 줄거리가 결코 남의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만? 이거 혹시...??'

난 부쩍 의구심이 들었다. 뭔가 불안한 예상을 하고는...

나는 이 소설이 누구를 모델로 쓴 것인지 모를 정도로 무식하지는 않았다. 이 여자... 이번엔 추리소설이 아니라, 진짜 실화를 바탕으로 쓴 것이 틀림없다.

바로 자신이 이 살인범 주인공이고, 그 피해자는 바로 나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넘겨버리기엔, 이 줄거리가 너무나 우리 부부의 처지와 비슷하다.

비록 아이가 없었다는 배경은 우리 부부와는 다르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금덩어리보다 더 귀했던 무남독녀 딸아이가 나 때문에 죽었다고 믿는 아내로서는 충분히 이런 살인계획을 세우고도 남았다.

'틀림없어. 이건 단순한 소설 줄거리가 아니야! 바로 나를 해치려는 아내의 살인 시나리오야.'

나는 그처럼 판단하고는, 머리털이 쭈삣하고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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