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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한계상황
신외숙 ( HOMEPAGE )01-27 12:32 | HIT : 90
한계상황
신외숙



길을 걸어가는데 등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난 어릴 때 얼마나 머리가 나빴는지 스스로 저능아라고 생각했어요. 제대로 된 판단력이나 분별력도 없고 이성(理性)이나 존재했는지 모르겠어요.”
“어릴 때 무슨 생각인들 못하겠어요, 점차 자라면서 지혜도 생각의 틀도 변하는 거겠지요.”
“그게 아니라 내 말은 눈치코치도 없을 만큼 아둔함 그 자체라는 뜻이지요.”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상대는 위로나 격려해 주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세상은 공평해요, 왜냐하면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재능을 주셔서 그걸로 먹고 살라고 은혜를 주셨거든요.”
“공평하다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셨다는 뜻이에요.”
발걸음을 시장으로 향하는데 그들과 길이 엇갈리면서 대화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길을 지나는데 길냥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는데 그녀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주신 사료, 얘네들한테 잘 먹이고 있어요.”
아기 냐옹이 3마리가 맛있게 사료를 흡입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내가 준 사료 외에 캔 사료도 함께 먹고 있었다. 여자는 아기 냐옹이를 계속 쓰다듬으며 귀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네거리를 지나 어린이 공원을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어 앙칼진 여자 목소리도 들렸다. 사람들이 금세 모여 들었다. 5-6세쯤 됐을까. 여자 아이는 엄마로 보이는 여자로부터 무수히 난타를 당하고 있었다. 눈에 독기가 오른 여자는 아이의 조그만 어깨를 흔들고 주먹으로 아이의 얼굴을 암팡지게 두들겨 팼다.
누군가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112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때였다. 젊은 청년 한명이 여자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왜 애를 때립니까? 말로 하시죠.”그제야 여자는 정신이 들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사람들의 눈초리가 사납게 변하며 여자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순간이었다. 언제 왔는지 경찰이 여자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잠시 서로 가 주실까요?”
“왜요? 내가 뭘 어쨌다고요?”
“글쎄 뭘 어쨌는지는 가 보면 알거고요, 방금 신고가 들어 왔거든요.”
경찰은 여자의 팔을 강하게 낚아챘다. 아이가 갑자기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엄마, 저 아저씨 누구야? 아앙! 무서워.”
아이는 엄마의 치마꼬리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젊은 여자가 물었다.
“아가 너희 친엄마 맞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 끄덕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말했다.
“아! 애가 뭘 알아요? 친엄만지 아닌지. 하긴 제 배 아파 낳은 자식도 목 졸라 죽이는 세상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 어린 걸 물건 때려 부수듯 때릴 수 있어요?”
“저 여자도 틀림없이 맞고 자랐을 거야, 그러게 핏줄이 중요한 거야, 결혼할 때 왜 가문을 보고 집안 내력을 따지겠어?
그러자 어떤 여자가 지나가며 말했다.
“잘 키우지도 못할 것들이 낳긴 왜 낳아? 힘없는 어린 아이 때리고 괴롭히는 것들은 능지처참을 해야.”
그때였다. 아이 엄마가 그녀를 향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뭐가 어째고 어째? 네깟 년이 뭔데 그딴 소릴 지껄이는 게야? 내 새끼 내가 때리는데 뭔 상관이야? 니가 내 새끼 키우는데 보태준 거 있어? 이 씨발년아,”
아이 엄마는 욕설과 함께 여자의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광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눈빛에 분노와 악이 충만했다. 여자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이 여자가 어디서 주먹질이야? 니가 그러고도 엄마야? 아니지? 너 친엄마 아니지?”
한낮에 길거리에서 때 아닌 핏줄 논쟁이 일자 구경꾼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아이 엄마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그렇게 때리고 미워할 거 뭐하러 낳았니? 애가 불쌍하지도 않냐? 애가 무슨 죄가 있냐?”
경찰은 더 이상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여자에게 경찰서까지 동행을 요구했다. 여자는 사람들의 기세에 눌렸는지 순순히 경찰을 따라 나섰다. 사람들은 돌아서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저 부모 잘 만나는 게 가장 큰 복이야, 부모가 반복을 준다는 옛날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니까. 부모 잘못 만나봐 일평생 신세 조지고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다니까.
그들은 모두 원한 맺힌 사람들 같았다, 그러니까 매 맞는 어린 아이를 그냥 못 지나치고 울분을 토했던 것이다. 돌아서는 내 발걸음도 분노에 차 덜덜 떨고 있었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현관 앞에 딍구는 휴지통을 발길로 걷어찼다. 뿐만 아니라 탁자 위에 있는 책과 필기도구를 바닥에 쏟아버렸다.
그러면서 후회했다. 좀 전의 그 아이 엄마를 뒤쫓아 가 머리통이라도 힘껏 내리치고 도망칠 것을. 하긴 경찰이 출동해 있고 지나는 행인도 많은데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과 함께 분노가 가슴속에 요동쳤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분노조절 장애라고.
나 역시 공감했지만 기분이 더럽게 나빴다. 요즘 들어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따로 따로 움직였다. 마음으로는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입에서는 거침없이 비방과 욕설이 튀어 나왔고 생각은 의도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과거의 수렁을 맴돌았다. 생각은 의지로 제동이 안 걸리는 이상한 수레바퀴 같았다.  
의지로 제어가 안 되는 현상을 통제불능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난 이상하게 생각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게 가난에 뿌리박힌 인식이었다. 가령 물건을 사러 마켓에 들렀다 치자. 같은 종류의 물건을 사는데 디자인이나 품질보다 낮은 가격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라도 손해 보는 일이 발생하면 이성(理性)을 잃고 마구 난동을 피웠다. 그것은 내 부모가 내게 물려준 대물림 현상이었다. 물 한방울도 아껴 쓰라는 소리를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라 쓸데없는 일에도 지나치게 아꼈다.
그러다 개망신을 당하고 수모를 뒤집어 쓴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피눈물로 범벅이 된 나 자신을 보면서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해도 똑같은 상황이 닥치면 매번 반복했다. 때에 따라 나의 행동은 극과 극을 달렸다. 선과 악, 진실과 위증, 평안과 불안의 끝을 끊임없이 질주했다.
어떨 땐 내가 꾸며낸 감정에 스스로 함몰되어 허우적댔다. 누군가 내 안에서 말했다. 넌 정서불안이야. 어릴 때 불안한 환경에서 자라 늘 감정이 파도치는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음이 안정될까. 마인드 콘트롤 있잖아 그걸 해봐. 마인드 콘트롤?
그래 일종의 명상이야. 잡념을 없애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거야. 하지만 곧 내 안에서 반론이 일었다. 그거 하다 우울증에 빠진 지인(知人)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신앙에서도 떠나고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마음의 평정은 고사하고 삶의 질서마저 무너질 위기에 이르자 신경정신과를 찾기도 했다. 그렇다면 적절한 취미생활을 해봐. 즐거움을 찾아 집중해 봐. 훨씬 효과가 클 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딱히 좋아하는 게 없었다. 무언가 취미생활을 하려고 해도 돈이 가로막았다. 돈에 대한 한 맺힌 기억이 포기와 절제를 요구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돈에 구속되고 그에 따른 상처를 그대로 방치했다. 돈 한 푼에도 벌벌 떠는 내 모습에 스스로 화가 나 그때마다 누군가를 향해 원망의 화살을 쏘아 올렸다.
어느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심리테스트를 했다. 이른바 우울증과 정신분열 요즘 말로 조현병 검사였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비정상인 것은 확실했다. 특히 불안 증세가 심각했는데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보니 회복탄력성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한번 감정이라는 맨홀에 빠지면 오래간 모양이었다.
나는 동료가 소개해 주는 심리검사 사이트를 접속해 간단한 조사와 함께 치유책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복잡한 내용도 그렇거니와 유투브와 인터넷에 재미있는 볼거리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그러자 동료는 자기 교회에서 하는 상담세미나가 있으니 참석해 보라고 권유했다.
강사진도 다 대학 교수 출신에다 경력도 화려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솔깃했다. 다음주 일요일 동료와 함께 상담세미나에 참석했다. 교인들의 수다도 귀에 거슬리고 종교적인 분위기도 거부감이 들었지만 공짜라는 말에 열심히 참석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공짜가 아니고 회비가 십만 원이었다. 동료가 내 대신 내준 것이다. 코끝이 찡했다. 왜? 라는 물음표가 마음속에서 계속 떠올랐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동료의 얼굴에 답이 있었다. 그에겐 나에겐 없는 포용력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용납할 줄 아는 넓은 아량이었다.
어쨌거나 공짜라는데 못 나갈 이유가 없었다. 열심히 참석하는 동안 난 내 마음의 실체에 대해 점차 눈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집안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과 그 배후에 대해서도 느낌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강의 도중 간간히 성경적 비유가 등장했는데 그건 신앙적 믿음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세미나는 총 10주에 걸쳐 진행 되었는데 동료의 말에 의하면 내 얼굴빛이 나날이 좋아졌다고 한다. 강의는 매우 유익했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전에는 문제에 집착했다면 이제는 문제의 원인과 해석에 집중했다. 부정적인 사고가 긍정적인 사고로 변하기 시작했다.
동료는 교회 출석을 권유하며 등록하길 바랐지만 난 끝내 거절했다. 일단 교인으로 소속이 되면 귀찮은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매주 교회 출석은 물론이고 헌금 강요도 이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건 나로선 끔찍한 시나리오였다. 언젠가 들었던 십일조 헌금 강요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로서는 그것만큼은 단연코 노였다. 그 대신 동료와 약속했다. 시간 나고 마음 내키면 교회에 나가 주겠노라고. 동료는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이내 얼굴에 어떤 확신 같은 게 보였다. 그 일이 있고나서 동료는 내게 더없이 친절과 배려를 베풀었다.
불쌍한 어린 양 하나를 구원해 보겠다는 계책(計策)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계책이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따스함이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차츰 안정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안정기조가 유지되는 건 아니었다.
마음이란 게 언제나 변화무쌍한 것이 아니던가. 늘 빛과 어둠이 갈리고 천국과 지옥이 엇갈리는, 그리고 강사의 말대로 사람의 마음이란 절대 믿을 게 못된다는 그 말이 팩트였다. 내 마음도 못 믿는데 어떻게 남의 마음을 믿겠는가. 그러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대표적인 게 속임수와 배반일 것이다. 심리 전문가인 모 대학 교수가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심리학자인데 얼마 전 가까운 지인에게 엄청난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사람 마음을 읽는 전문가가 속임수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사람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마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말이나 표정 행동인데 그런 것은 얼마든지  연기(演技)로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꾀에 속고 어쩔 수 없이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두뇌가 비상한 사람도 학력이나 스펙과 상관없이 속임수에 예외 대상은 없다.
또, 사람들은 흔히 말에 실린 진실성에 무게를 두고 판단하는데 그 역시 믿을 바 못되는 게 위선과 매너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듣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절친을 믿고 거액을 맡겼다가 일순간에 전 재산을 날려 버렸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욕심이라는 변수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가 막힌 건 피붙이를 이용한 사기극이다. 돈은 때에 따라 피보다 진하고 목숨만큼 위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그 모든 게 부패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만물보다 부패한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그 부패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때론 독을 뿜어내고 그로 인한 상처는 원한이 되어 가슴 속에 쌓인다. 특히나 어릴 때 받은 상처는 일평생 따라 다니며 시한폭탄 노릇을 한다.
또한 어린 시절 받은 상처와 학대는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가정 폭력 속에 자란 여자는 결혼 이후에 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70퍼센트다. 이것은 어느 상담학자가 밝힌 증거다. 한마디로 어릴 때 잘못된 환경이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이다.
악은 집요하고 반드시 보복하고 싶어 한다. 특히 약자의 대상을 향해 잔인성을 발휘하는데 그 대상이 바로 자녀이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라. 당연하게 여긴다. 일전에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다. 어린 시절 계모에게 극심하게 학대를 당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학대를 피해 친모에게 찾아갔다.
친모는 처음에는 받아 주었지만 나중에 사정이 바뀌자 계모보다 더 끔찍한 학대를 가했다. 딸은 그 분노를 가슴 속에 쌓고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 한의사가 되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갈 무렵 어느날 학대 받은 상처가 떠올랐다. 분노의 화신이 된 여자는 계모가 아닌 친모를 찾아갔다.
어릴 때 친모로부터 학대 받고 살았던 그곳에 아직도 친모가 살고 있었다. 한밤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친모가 나와 보고는 깜짝 놀랐다. 딸은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친모에게 말했다. 계모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난 친딸이 불쌍하지 않았냐, 그런 딸을 그렇게 또 때리고 학대하고 싶었냐.
친모는 대답했다. 난 모르는 일이다. 니가 지금까지 살아온 게 부모 덕인데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못된 버릇이냐?
못된 버릇? 딸 가슴에 못 박아놓고 뭐 부모 덕? 그게 말이냐?
학대라니? 내가 너를 언제, 난 모르는 일이다.
친모는 자기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했다. 분노가 치솟은 그녀는 친모의 집안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며 악담을 했다. 심지어 욕설까지 퍼부으며 말했다. 계모에게 학대당해 쫓겨온 친딸을 또 구박하고 때려서 내쫓은 넌 엄마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너 같은 인간은 살 가치도 없다.
딸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난동을 부렸다. 그녀는 진료를 마치고 나서도 또다시 분노가 폭발하면 친모에게 찾아가 욕설을 퍼붓고 난동을 부렸다.  
드디어 상담사가 중재에 나섰다. 상담사는 딸의 입장을 충분히 들었다. 그리고 친모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린 딸에게 왜 그렇게 몹쓸 짓을 했는가. 친모는 전혀 딴소리를 했다. 난 모르는 일이고 딸이라는 년이 찾아와 살림 도구를 때려 부수고 난동을 부리고 창피해 못 살겠다.
말이 전혀 안 통했다. 사회자는 상담사에게 물었다. 왜 딸은 계모가 아닌 친모에게 찾아가 분풀이를 한 겁니까? 이에 상담사는 시청자에게 말했다. 학대를 맨 마지막으로 가한 당사자에게 가장 많은 분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계모는 피 한방울 안 섞인 남이니까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친모는 피를 나누었기에 분노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딸은 자기의 행동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용서도 빌지 않는 친모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어린 딸을 지옥 속에 살게 했으니 응분의 보응(報應)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천륜이라고 한다.
그 천륜을 설명할 때 자녀의 효를 먼저 강조하는 게 도덕관념이라고 가르친다. 부모의 자식 사랑을 내리사랑이라고 절대적인 사랑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인륜을 저버린 건 자녀이지 결코 부모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을 보라.
신생아 자녀를 죽인 20대 부모와 어린 자녀를 노동자로 팔아먹고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 하여 다 성장한 딸을 생매장 한 경우도 있다. 어떤 여 목회자가 유투브에서 한 설교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 담임교사로부터 성폭행 당할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났는데 그로 인해 엄청난 폭력에 시달렸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친아버지로부터 엄청난 폭력을 당했고 학교에 가져가는 준비물을 어머니가 해주지 않아 학교에서 또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그 대목에서 나는 폭발했다. 잠재된 의식 속에서 상처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내 의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난에 대한 수모감이 머리를 태울 듯이 달려들었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난과 수치는 내 의식을 압박하고 비굴하게 만들었다. 비굴함이라니, 그건 낮은 자존감과 함께 심령을 병들게 했다. 공부에 필요한 준비물은 물론 필기도구도 없어 빌려 써야 했다. 야외 수업이나 소풍 때는 갖은 핑계를 대 불참해야 했다.
이유는 교통비가 없어서였다. 이러한 처지를 간파한 친구들이 사방에서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다. 툭하면 왕따 시키며 괴롭혔고 거지라고 놀렸다. 한때는 고아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런 속사정을 누구에게도 말 못했다. 말했다간 집안에서 당장 내쫒길 게 뻔했다.
집안에서는 내가 돈 달라고 할 때마다 엄청난 욕설과 매질을 했다. 단돈 몇푼 아니 동전 몇 개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돈 이야기만 하면 중죄인 취급을 받으며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갔다. 누군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부모 복도 지지리도 없지. 어린 나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돈을 많이 벌어서 이 지옥 같은 집안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능하면 먼 타지로 날아가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고 싶었다. 나를 아무도 알아 볼 이가 없는 타관 벽지 외진 산골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사람이 무서웠고 그중에서도 피붙이가 가장 두려웠다.
영양불량으로 온 몸의 뼈가 휘고 빈혈증세로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사랑이니 정(情)이니 인정(認定)이니 하는 단어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대신 철천지원수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다. 뜻도 모른 체. 몸이 자라자 각종 질병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차라리 죽어버리란 말이 들려왔다.
병원에 데려갈 돈이 아깝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없는 살림에도 내 오빠는 극진한 대우와 사랑을 받았다. 그게 바로 아들과 딸의 차이라고 했다.
늘 삶과 죽음의 경계선 속에서 세월이 흘러 청소년 시기가 다가왔다. 그동안 나는 여러번 자살 위기를 겪었고 집안 형편도 조금 나아졌다. 간신히 고등학교까지 졸업은 했는데 문제는 몸이었다. 어릴 때 못 먹고 산 탓에 병마(病魔)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강박증 우울증에다 정신분열 증세마저 보였다. 그러나 병원에 가 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어릴 때 당한 상처가 고착화 돼 자신을 스스로 방기하고 학대하는 것이었다. 사고체계에 이상기류가 발생한 것이다. 돈 한푼에도 벌벌 떨며 온갖 수모와 비굴함을 자초했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왜 그렇게 자존감이 낮은 거냐고? 내가 물었다. 자존감이 뭔가요? 자존심이란 말은 들어 봤는데 자존감이란 말은 처음 듣는 단어라고. 상대방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경제적인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 해서 집안 분위기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
내가 먹는 반찬은 언제나 김치나 나물 종류였다. 오빠 밥상에는 간혹 고기나 생선이 올랐다. 내 오빠도 여동생에 대한 사랑 같은 건 먼지만큼도 없었다. 오직 제 한몸만 위하며 밖으로만 돌았다. 못 사는 집구석이 지겹다며 가끔 내게 주먹질을 했다. 딱 한번 내게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불쌍하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후에도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가난은 거절감이라는 상처와 함께 마음을 옥죄는 족쇄였다. 마음과 발목을 옥죄는 족쇄는 언제나 내 뒤를 따라다녔다. 비굴함과 수치 분노도 함께 따라 다녔다. 족쇄는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깊게 내 마음을 할퀴고 통증을 유발했다.
그리고 이러한 약점은 언제나 내 앞길을 가로 막았다. 내 모습에는 항상 궁기(窮氣)가 흘렀고 그건 인간관계에 있어 항상 치명타로 작용했다. 상대방의 입가에서 번지는 야릇한 비웃음은 곧바로 멸시에 찬 말로 돌아왔다. 어느날 나는 생각했다.
부자가 되고 싶다. 마음의 부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돈이라는 집착과 수모감에서 벗어날까. 고안해 낸 방법이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었다. 언젠가 뉴스 화면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야. 처음에는 내 안의 옹색함과 위선에 벌벌 떨었다. 타협이라는 단어가 내 양심을 고발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백퍼센트 진실이었다면 거짓말이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단돈 한푼도 못 쓰는 처지에 이웃 돕기 성금이라니 돈의 액수와 관계없이 수차례 망설여졌다. 언젠가 보았던 인터넷 기사가 떠올랐다. 국제적인 구호단체가 선량한 시민들이 보낸 성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그래서 많은 회원들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그렇지만 계획을 미룰 수는 없었다. 당시 나로선 거금을 해당 구좌로 송금했다. 이깟 거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데. 그런 식으로 몇 번 보내고 나자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졌다. 따라서 내 마음속의 위선이나 가식도 점차 사라져 가는 느낌이었다.
이젠 나도 사람답게 살아보자.
현재 내 수입은 결코 적은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먹는 음식은 고작 떡볶이나 라면이다. 십년도 넘은 이야기다. 최고의 영화배우 대중의 스타로 불렸던 최진실은 거대한 저택에 관리인까지 두고 살면서도 먹는 음식은 늘 떡볶이나 라면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돈이 없어 학교 앨범도 못 샀다고 한다, 춥고 배고픈 시절을 지나 최고의 스타덤에 올랐지만 생각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나는 구제품 가게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기겁할 듯이 놀란 적이 있었다.
말이 구제품이지 남이 입다 버린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사이즈도 큰 옷을 억지로 꿰어 입으며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얼마나 비참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 길로 가게를 나와 백화점으로 향한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지만 여러번 망설인 끝에 포기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내 주제에 이런 비싼 옷이 가당키나 할까. 어릴 때 내 귓가에 들렸던 말이 또다시 마음속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가족을 철천지 원수처럼 대하는 아버지와 딸에게만큼은 물 한모금도 아까워하는 엄마가 내 의식 속에서 가난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아들한테는 고기 반찬 집어주면서 하나뿐인 딸에게는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면서 온갖 악담을 다했다. 딸년 키워 봤자 다 소용없다. 결국 남의 집 사람 될 것을. 영양불량으로 쓰러져 누워도 병원 한번 데려가지 않았다. 대신 엄청난 욕설을 퍼부었다.
끔찍하게 아끼던 아들이 온갖 사고를 치고 돌아다녀도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내가 버는 돈은 오빠에게 한정없이 들어갔다. 그 아들이 결혼할 때는 집안 기둥뿌리 뽑아 해주더니 내 결혼에는 아예 무관심으로 대체했다. 친척들이 쟤 승희 시집 안 보내냐고 물으면 지가 알아서 가겠지 했다.
그 아들이 장가가자 며느리 공대는 얼마나 깍듯하게 하던지 옆에서 보는 나는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핏줄보다 더 진한 사랑을 며느리에게 쏟아 붓는 모습이라니 이런 엄마를 사람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 며느리한테는 밥 한번 못 얻어먹으면서 나만 보면 며느리년한테 잘하라고 훈시를 했다.
집안의 생활비는 내가 몽땅 충당하는데 그 잘난 아들 며느리한테는 용돈 한푼 못 타 썼다. 보다 못한 나는 독립을 선언했다. 돈줄이 끊어진 부모는 팔팔 뛰고 난리가 났다. 아들 내외한테는 죽어도 생활비 내놓으라고 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짐을 싸고 있는 내게 부모 은공 모른다고 장탄식을 했다.
이젠 잘난 아들 며느리한테 생활비 타 쓰시지, 나한테 뭘 해주었다고 돈 달라고 큰소리야. 그러자 여태껏 먹여주고 키워주었다고 징징대며 말했다. 나는 못 들은 체 돌아섰다. 나오면서 부모의 면전에 대고 말했다.
다신 이 집구석 들어오나 봐라. 며느리년한테 밥 한번 못 얻어먹는 주제에. 더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참았다. 다신 얼굴 안 보고 그만일 테니까. 그렇게 해서 독립을 했는데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웬만하면 현재에 집착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우면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 가득 찬 분노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인터넷을 열면 각종 심리상담 코너가 있었고 그와 연관된 책 소개도 많았다. 하지만 너무 광범위 했고 그때뿐이었다. 전문적인 상담사를 찾아가 볼 수도 있겠지만 돈이 아까워 그만두었다. 언젠가 지인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아니 어째 매사에 돈! 돈 그러세요?”
나는 다시 유투브에 난 여목사의 간증에 귀 기울였다. 그녀의 설교는 힘이 넘쳤고 공감대가 흐르고 있었다. 내게 들리는 메시지는 과거를 이기는 힘은 영적인 능력이었다. 그녀에게 과거라는 상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고난이 유익이 되어 지혜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뛰어난 두뇌와 학력, 남편의 적극적인 외조와 헌신적인 사랑이었다. 그녀의 멘트 하나 하나에 실린 메시지는 엄청난 파장과 능력이 되어 나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바쁜 일정에 쫒기다 보니 그보다 돈에 집착하다 보니 더 이상 설교는 듣지 않게 되었다.
그보다 더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는 유투브에 차고 넘쳤다. 유명한 강사진의 생활 철학 심리치유 성공담 옛날 드라마 무료 영화 소통에 관한 강의 등 나는 남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 쏟아 부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인터넷 검색 한번이면 각종 정보가 눈에 쏟아져 들어오고 공짜로 이용하는 코너도 많았다.
그렇지만 재테크나 고소득을 미끼로 한 사이트는 절대 접속하지 않았다. 언젠가 지인이 소개한 펀드에 투자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본 것이다. 그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멘붕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이후부터 돈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건 전혀 예측하지 못한 현상이었다. 이후부터는 의심병이 생겨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이웃돕기 성금 보내는 게 낫다 싶었다. 흔한 말로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 마음먹으니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다 보니 그때 손실된 액수는 여러 모양으로 채워졌다. 돈에 대한 한(恨)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돈 되는 일이라면 불을 켜고 달려들어서그런지 돈은 언제나 넉넉하게 채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들어온 돈은 빠져 나가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돈 씀씀이는 더욱 줄어들었고 여가 시간을 유투브로 보내다 보니 별별 희한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평범하고 진솔한 이야기도 많았고 가슴 저미는 상처와 기가 막힌 역전 드라마 같은 이야기도 많았다.
그때 알았다. 세상에는 나처럼 상처 깊은 사람들이 많구나. 아니 내가 당한 상처보다 더 기막히고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억울하고 슬픈 사연 중에는 나중에 통쾌하게 원수로 되갚아 준 경우도 많았고 서로 화해하고 용서한 경우도 가끔 있었다.
대부분이 가정사에 관한 이야기인데 세상에 가장 큰 원수가 가족이었다. 피붙이를 이용한 범죄와 착취 그리고 결혼을 빙자한 사기 사건이 많았다. 그중 어떤 여자들은 나처럼 딸이라는 이유로 학대와 가정 폭력을 당한 사례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울면서 수없이 많은 댓글을 달았다.
동병상련보다 더한 공감대는 없었다. 그중 어떤 여자는 나보다도 한참이나 어렸는데 자신을 미아리 텍사스촌 출신이라 소개했다. 사연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녀 역시 나처럼 딸이라는 이유로 방치된 채 거의 굶다시피 살고 수없이 폭력에 노출되었는데 그 과정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아들에 집착한 엄마가 딸에게는 방치와 학대를 일삼았는데 한번은 아들이 엄청난 폭력사건에 휘말려 구치소에 입감된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합의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자 이제 13살 된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의 손을 잡고 미아리 텍사스촌으로 찾아 갔다고 한다.
예전에 미아리는 술집 사창가가 밀집된 곳으로 환락가였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술집을 찾아다니며 값을 흥정하는데 딸이 아무리 울며 불며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여러 포주를 만나 값을 흥정하는데 돈에 환장한 포주들도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고 한다.
아무리 우리가 돈에 환장했어도 그렇지 이제 13살밖에 안 된 어린 아이를 받아줄 수가 없다. 그리고 딸을 팔러온 엄마에게 말했단다. 세상 살면서 별 쓰레기 잡종 같은 인간들 많이 만나 봤어도 너 같은 인간은 처음 본다. 아무리 아들한테 미쳤어도 그렇지 이 어린 아이를 술집에 팔아넘기려 하다니 너는 인간쓰레기다.
그러자 엄마는 미쳐 날뛰며 말했다.
그럼 어떡하나, 내 아들이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넘어가게 생겼는데 이년이라도 팔아서 합의금을 해주어야지. 잔말 말고 얼마 줄 건지 그것이나 말해라. 포주들은 모두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불쌍한 어린 것이 엄마 잘못 만나 고생하구나. 세상에 저런 걸 어미라고 달고 태어났으니.
그러자 한 여자가 나서며 말했다. 내가 그 합의금 줄 테니 애는 나한테 맡기고 가라. 값을 흥정한 엄마는 돈을 받자마자 아들한테로 달려갔다. 못된 패거리 짓하다 잡힌 아들에게 딸을 팔아 엄청난 합의금을 물어준 것이다. 한편 술집에 팔려온 어린 여자애는 좋은 포주를 만나 술청에는 나가지 않고 그 대신 술집에서 청소나 설거지 등을 하며 지냈다.
포주는 여자애와 동일한 상처를 지니고 있어 누구보다 가슴 따듯하게 대해 주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어린 그녀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었다고 한다. 성인으로 성장한 그녀는 유투브를 운영하며 꽤 많은 돈을 모았고 어느새 이름이 알려지자 엄마와 오빠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방송이 끝나갈 무렵 한통의 전화가 왔는데 본인인지 아닌지 확인이 끝나자마자 엄마와 오빠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이미 소문을 들어 다 알고 있다며 엄청난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 아직도 그녀가 철모르는 어린 아이로 착각한 것이다. 그들에게 딸은 여전히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녀는 옛날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지인들을 통해 아동학대에 관한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증인들을 내세워 법원에 고발했다. 다행히 아동학대나 방기는 공소시효 기간이 길었다. 증인들을 내세워 고발하겠다고 하자 엄마와 오빠는 해볼 테면 해보라며 막무가내로 나갔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오직 돈이었다.
딸은 갈취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뻔뻔한 태도는 법정을 울리고도 남았다. 판사는 눈물을 머금으며 친모에게 징역형을 명령했고 현장에서 법정 구속 되었다. 판사가 징역형을 내리기까지 친모와 오빠는 전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고 그런 사실이 없다고 계속 발뺌만 했다.
유투브 시청자들은 모두 분개했고 당사자에게 위로의 댓글을 올렸다. 그와 비슷한 예로 아들에게 올인한 부모가 있었다. 그 집 역시 아들에게 올인하면서 딸에게는 말할 수 없는 방치와 학대를 일삼았다. 딸에게 들어가는 돈은 아예 해주지 않았다.
많은 재산은 아들에게 주면서 딸과는 아예 인연을 끊고 살았다. 그렇게 20년간을 절연(絶緣)하고 살았는데 어느날 오빠한테 연락이 왔다고 한다. 엄마에게 중병이 발생해 간병인이 필요한데 니가 와서 간병해라. 그게 무슨 소리야? 요양병원 보내면 될 것을 이제까지 20년간을 인연 끊고 살다가 갑자기 간병인 노릇을 하라니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그동안 인연을 끊고 살았어도 그렇지 너는 자식 아니냐? 딸도 자식이니까 이제라도 자식 노릇을 해야지.
너무나 기가 막힌 그녀가 말했다.
당신들이 언제 나한테 자식 취급 한 적 있냐? 모든 재산을 차지한 아들이 부모를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이건 나 혼자의 의견이 아니라 엄마와 합의된 거다. 요양병원이 어디 한두 푼 들어가는 줄 아냐? 딸도 자식이니 돌아가실 때까지 니가 모셔라.  
너무나 당당했다. 조금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러니까 말을 요약하면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병원비를 아들한테 부담시킬 수 없으니 딸한테 부담시키던가 직접 간병하라는 것이었다. 뻔뻔하기가 하늘을 찔렀다. 물론 그녀는 당연히 거절했다. 또 한 케이스가 있다.
그녀는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유학파에다 박사 출신이다. 그녀의 이야기는정말이지 눈물겨워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50대의 나이에도 미모인 그녀의 일생은 오로지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폭행과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그것도 친부로부터.
가족을 팽개치고 도박과 술로 소일하던 아버지는 자식들의 교육은 나 몰라라 방치했다. 집안살림을 통째로 들어먹은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조차 국졸로 마치게 했다. 그 주제에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그는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중학교 진학을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딸은 학구열이 강했다.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등학교를마쳤는데 엄마가 대성통곡하며 반대했다고 한다. 아들도 못 보낸 중학교를 딸이 들어갔다고. 그런데 딸은 대학 가는 게 소원이라 남몰래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모았고 가족에게 알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도 못 간 대학을 딸인 니가 어떻게 가겠다고 하냐며 칼을 들고 나섰다. 딸이 놀라 도망치자 칼을 들고 온 동네를 쑤시며 돌아다녔다. 딸을 만나면 칼로 찔러 죽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동네 아주머니가 숨겨 주어 간신히 죽임을 면한 그녀는 입학시험장에서 이번에는 막내 삼촌에게 붙잡혀 개처럼 끌려 나갔다.
집안의 큰형님으로부터 조카의 대학 입학을 저지하라는 명을 받은 막내 삼촌은 조카를 3시간 동안 죽을 정도로 때려 기절시켰다. 그 미친 악마는 기절해 있는 조카를 성폭행 하고 입막음을 위함이었는지 짜장면을 사주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가정폭력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러다 맞아 죽지 그녀가 생각해 낸 건 결혼이었다. 결혼하면 더 이상 쫒아와서 때리지 못하겠지. 그런데 홀어머니 외아들인 남편은 신혼여행 첫날부터 외도를 했다. 첫사랑인 유부녀와 함께. 그리고 그녀는 신혼에 들어가자마자 시어머니로부터 엄청난 폭력에 시달렸다.
그러니까 상담심리학자의 말이 맞았다. 결혼 전에 가정폭력에 시달린 여자는 결혼 이후에도 폭력에 시달릴 가능성이 70퍼센트다. 통계에 나온 사실이다. 시모의 감시 속에 어쩌다 딸 하나를 낳은 그녀는 매일 시모와 남편으로부터 얻어 듣는 소리가 있었다.
너만 없어지면 돼. 너만 없어지면.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다. 학비가 싼 대학이 있는데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게 해달라. 이미 유부녀와 불륜관계에 있던 남편은 흔쾌히 승낙했다. 시모에게 딸을 맡기고 떠나는 건 불안했지만 학구열이 높았던 그녀는 꿈에도 그리던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딸을 프랑스로 불러들여 행복한 유학생활을 마친 뒤 귀국하여 대학 강사생활을 했다. 언제가 TV 조선에도 출연한 바 있는 그녀는 나이보다 젊고 아름다웠고 당당하고 씩씩했다. 전혀 불행과 관계없는 얼굴 같아 보였다. 희귀한 불치병을 앓는 그녀는 과거와 관계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직 신앙심 하나로 불치병과 싸워가며 딸과 함께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녀와 과거는 전혀 무관한 듯 보인다. 아름답고 환한 표정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TV 조선 대담자가 충격과 눈물로 대신할 뿐이다. 어떤 힘이 그녀를 과거로부터 자유하게 했을까.
그 사이트를 빠져 나오는데 또다른 동영상이 연결 되었다. 이번에는 50대로 보이는 여자 전도사의 간증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은 파란만장(波瀾萬丈) 그 자체였다. 그러나 역전 드라마도 그런 역전 드라마가 없어 보였다. 가난과 학대로 점철된 그녀의 삶은 오직 신앙의 힘으로 일궈낸 기적의 연속이었다.
폭삭 주저앉을 것만 같은 움막집에서 살던 그녀의 어머니는 매파에게 속아 자식 딸린 남자에게 후처로 시집갔다. 외항선을 타는 남편은 의처병이 도져 걸핏하면 아내를 매질했다. 뼈가 부러지고 기절해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매기도 여러번 나중에는 기다시피 고향으로 도망쳐 버렸다.
한밤중에 딸을 버리고 도망치자 딸은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그녀의 학력 전부였다. 어머니가 내쫒기자 그녀는 고아로 떠돌다가 남의 집 식모살이를 갔는데 주인 여자가 얼마나 때리고 굶겼는지 이웃집 여자가 먹을 것을 주어 겨우 연명했다고 한다.
그나마 내쫒겨 거지가 된 그녀는 또래의 아이들에게 돌멩이 세례를 받았다. 그러다 12살 어린 나이에 17살이나 많은 배다른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17살에 2차로 또 성폭행을 당했다. 상심한 그녀는 자살하기 위해 바닷물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죽음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거지로 떠돌던 어느날 누군가 그녀에게 어머니의 소재를 가르쳐 주었다. 읍내에서 20리 길을 걸어 산속 움막집에 기거하는 어머니를 찾아간 그녀에게 다가온 건 극심한 굶주림과 멸시였다. 값싼 노동력으로 목숨을 이어가던 그녀는 초등학교 3학년 학력에 매일 책을 빌려 읽으며 지식을 쌓았다.
그리고 매일 새벽마다 산길 20리를 달려 읍내에 있는 교회에 출석했다. 운동 과다에다 썩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던 그녀에게 질병이 찾아왔지만 신앙으로 극복했다. 오직 신앙의 힘으로 굶주림과 멸시 과거의 상처도 이기고 났을 때 길이 열리고 있었다.
신앙과 헌신, 봉사와 열성으로 교도소 사역을 이어가던 중 생각지도 않은 시련이 다가왔다. 바로 아버지의 형상을 닮은 남자가 남편 행세를 하며 집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모습 위에 전처 자식 아들 2명에다 술과 도박 폭행까지 추가하고 있었다.
아내가 번 돈을 도박으로 날리고 폭행과 속임수 기만으로 아내를 끝없는 절망으로 추락시켰다. 거기에다 거짓 회개 야비함으로 아내를 2중 3중으로 괴롭혔다. 하지만 그가 데려온 아들들은 오히려 그녀를 따르며 신앙에 합류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학력으로 학원을 운영해 또다른 기적을 탄생시켰다.
남편은 돈만 떨어지면 찾아와 타락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또다시 악마의 모습으로 집에 찾아왔는데 새벽에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애끓는 기도 소리에 그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거짓과 협잡하고 악의 구렁텅이에서 아내와 신을 조롱하던 그에게 양심(良心)의 불이 떨어진 것이다.
그는 철저히 무너졌고 자신을 신(神) 앞에 거꾸러뜨렸다. 악의 화신이었던 자신을 회개하며 개과천선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보인 첫 번째 변화는 신학교 등록이었다. 전도사인 아내를 따라 신학교에 입학해 자신도 전도사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두 아들도 신학교에 들어가 전도사가 되어 한 집안에 전도사만 4명이라고 했다. 그녀는 외국까지 드나들며 간증사역을 이어가고 있는데 과거의 고통이 그녀와 전혀 무관한 듯 보였다. 밝고 당당하고 에너지가 넘쳤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 사람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닌 영적 에너지 두나미스였다. 끔찍한 과거의 고통을 술회하면서도 여전히 당당했다. 죽음보다 가혹한 시련을 이겨내게 한 힘은 어떤 능력을 지녔기에 저토록 파워가 넘치는 걸까. 언젠가 방송에 출연했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집에는 아들 둘까지 포함해 전도사가 모두 네 명입니다.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설교는 주로 남편이 합니다, 설교 내용은 매일 똑같습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혈기를 죽여야 한다. 속사람이 새로워져야 한다. 그러면 저는 속으로 웃습니다.”
그 말에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악마의 탈을 벗고 새사람으로 거듭난 그는  인간성을 상실한 쓰레기 같은 자신을 버리지 않고 받아준 신의 은총에 대해 눈물 흘리며 감사했다. 전자의 그 여목회자와 고난의 차이는 있었지만 어쨌든 과거의 고통은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끌려다니며 살아간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무의식에 조종당하며 알게 모르게 지배를 당한다. 경중의 차이이겠지만 신앙인이라고 해서 다 과거를 이길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힘들었던 만큼, 과거는 현재를 이겨낼 수 있는 저력이 된다.
쉽게 고난에 무너지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려는 이들에게 용기와 도전의식을 준다. 어둠을 빛으로 밝히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래서 역경을 이겨낸 실화는 교훈이 되어 언제나 기회라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나의 유전자 속에는 가난과 상처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무의식을 조종하고  있다. 분노가 솟을 때마다 감정 조절이 안 돼 후회가 봇물처럼 밀려온다. 자존감은 땅끝까지 추락하고 자괴감으로 정신이 어수선하다. 무언인가 나를 결박하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받는다.
자유가 송두리째 결박당한 채 상처가 비난이 되풀이 되고 있다. 원인을 분석하면 언제나 한가지다. 사랑받지 못하고 비난과 정죄에 노출 되며 살아왔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이제와 어쩔 수 없는 기억을 놓고 매일 사투를 벌인다. 한계상황의 그물에 갇혀 허둥대는 꼴이라니.
시간이 가면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그건 속임수였다.
상처는 세월이 흐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무의식 속에 살아 언제나 시한폭탄 노릇을 했다. 돈에 관한 문제도 여전히 숙제였다. 생각이 고정관념에 갇혀 넓혀지지 않았다. 부정적 사고 속에 이익이냐 손해냐를 놓고 늘 마음이 조급하다.
조급해지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실수가 잇따른다. 후회와 자책도 꼬리표처럼 잇따른다. 평정심을 잃고 또다시 불안이 반복된다. 감정의 수레바퀴 속에 갇히는 현상이 연속되는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인정받고 사랑받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에게도 사랑이라는 행운이 찾아와 줄까. 언제쯤 내 마음의 빗장이 풀릴까. 사람을 대할 때면 또다시 상처 받을까봐 멸시 당할까 항상 초긴장했다. 칼같이 마음을 무장하고  경계하다 보니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나는 생각했다. 무엇이 내 마음을 지키는가. 당연히 돈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의 평안이었다. 그건 돈을 주고도 못 살 보석과 같은 것이었다. 어느날 깨달았다. 과거는 과거일 뿐 끌려 다니다 보면 미래는 없다. 누구나 상처를 겪는데 누구는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가는데 누구는 과거에 묶여 세월을 낭비하고 산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한번 살다 가는 인생 즐겁게 재미있게 폭 넓게 좋은 일도 하며 살자. 긍정적인 사고로 마음의 전환을 이루자. 힘들겠지만 돈에 집착에서도 벗어나자. 더 이상 돈을 무서워 말자. 돈으로부터 자유해지자.    
어느날 나는 홀로 여행길에 올랐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돈 한푼이 아까워서 정신적인 사치라 생각되어 단 한번도 마음 놓고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에 개통했다는 경강선 열차를 타고 처음으로 바다 여행을 하면서 속에서 떠받치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옆에 앉은 여자가 휴지를 건네주며 눈치를 살폈다. 여행은 알 수 없는 흥분과 설렘에서 시작되었다. 자연의 풍광이 마음을 힐링하면서 기분이 명료해졌다. 창밖으로 도심과 농촌 들판과 수목이 우렁찬 삼림이 휙휙 지나갔다. 북한강을 지날 때면 마음속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잔잔한 평화가 안정된 마음과 함께 모든 시름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생소한 느낌이었지만 그건 기쁨이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가 싶었다. 마음이 넓어지면서 여유가 생겼다. 넉넉한 마음이 용서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했다. 열차가 강릉에 닿았을 때는 호기심과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근처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한 뒤 바닷가로 향했다. 시내버스 대신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는 주택가를 한참 돌더니 한적한 곳에 정차했다. 안목항 커피 거리였다. 소나무 숲과 함께 바다 갯내음이 엄청난 파도와 함께 밀려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바다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며 눈물이 흘렀다.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걸으며 주변을 걷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에 자꾸 마음이 끌렸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속삭임이 부럽고 신기했다. 바다는 파도소리와 함께 엄청난 힐링을 선사하고 있었다. 곁을 지나는 여자가 연인에게 말했다.
“바다를 왜 바다라고 하는지 알아?”
“글쎄.”
“바다는 모든 걸 다 받아준대, 그래서 바다라고 하는 거래.”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도 받아주고 배려하라는 뜻이라고 여자는 말한다. 바다는 파도물결과 함께 끊임없이 몰려 왔다 쓸려갔다. 곳곳에서 즐거운 함성이 들려왔다. 바다는 힐링을 선물하고 있었다. 마음을 부드럽게 만지며 자연을 즐기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기타 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러운 음률애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모래사장 끝나는 곳에 소나무 밭 근처 바위에 앉아 젊은 남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사가 의미심장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주밖에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날 치유하네
고통 받는 자녀 안으시니 주밖에 없네>
노래하는 남녀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한쌍의 음률은 부드럽게 지친 마음을 힐링하고 있었다. 곡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또다른 곡을 연주하고 계속 힐링을 선사했다, 파도소리는 노랫소리와 함께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사람들 입가에 미소가 번져났다.
그런데 아까부터 누군가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뒤에서 옆에서 흘깃거리며 다가올까 말까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들은 젊은 남녀였고 망설이는 걸로 보아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그들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대인기피증이 심했고 지금 누리는 평화를 유지하고 싶었다.
바람이 갯내음과 함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커피 향기가 바람에 함께 실려와 후각을 자극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던 그들이 결심한 듯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먼저 여자가 내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저기 승희씨 아니에요?”  눈이 번쩍 떠지면서 상대를 바라보는데 기절할 듯이 놀라고 말았다. 오빠와 올케가 수년간의 세월을 뚫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올케는 젊고 몸매도 날씬하고 예뻤다. 나도 받지 못한 부모 사랑을 시부모로부터 받으면서 여유롭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곁에 서 있는 남자는 여동생에게는 냉혈한이면서 아내에게는 그윽한 사랑을 눈빛으로 전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여유롭던 마음이 사라지면서 어색했다.
피붙이로 살가운 정을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는 터라 어색하고 내재된 상처가 속에서 꿈틀거렸다. 저것들은 내가 고생한 덕으로 여유롭고 한갓지게 살고 있구나. 내가 죽을힘을 다해 모아놓은 돈으로 결혼식을 치른 그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거지같이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돈을 내놓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중에 후회하고 미칠 것 같았다. 왜 내 전 재산을 내놓고 말았는지 두고 두고 후회했다. 그렇다고 가족들의 태도가 전혀 달라진 건 없었는데. 오빠 내외를 바라보는데 당장 내 눈에서 불이 튀었다. 그냥 지나갈 것이지 아는 체를 할 게 뭐람.
어색한 분위기에 당장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올케가 친절한 척 하면서 자꾸 말을 시키는 바람에 그대로 있었다. 도망치고 싶은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가씨 잘 지내고 계시죠? 그래도 부모님께 가끔씩 안부전화도 드리고 그러세요. 어머님 걱정하세요.”
그때 내 입에서 실소가 터지면서 막말이 나왔다.
“누가 내 걱정을 해요? 살다 별 희한한 소릴 다 들어보겠네.”
“네?”
올케가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보는데 오빠가 안절부절 했다. 망할 자식이 제 여편네 눈치 보는데 속에서 천불이 올랐다. 생각 같아선 니 결혼식 때 들어간 내 돈 내놓으라고 하고 싶은데 사람들도 많고 간신히 참았다. 하나뿐인 여동생은 정신분열 되기 직전인데 저것들은 여유롭게 바다 여행이나 즐긴다 생각하니 피해의식으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해야 저것들한테 가장 가슴 때리고 내 속이 시원할까. 올케의 얼굴은 가진 자의 넉넉함으로 여유로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부모 사랑 받고 자라 성격이 모나지 않고 온화하고 긍정적이었다. 나와는 여러모로 반대적 성격이었다. 그러면 뭘하나 시부모 생활비 한푼 안 보낼 텐데. 그러나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승희야 너 요새 만나는 사람있냐?”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지가 언제부터 내게 관심 있었다고? 한마디 쏘아부치려는데 올케의 목에 십자가 목걸이가 보였다. 속에서 반감(反感)이 불같이 솟았다. 질투 시기심도 같이 부채질을 했다.
“참 살다 별 소릴 다 들어보겠네, 언제부터 내게 관심 있었다고 천사 같은 멘트를 하고 그러실까, 그럴 여유 있으면 엄마 생활비나 보내 드리시지 그러셔. 아마 굶어 죽지는 않았는지 모르지.”
“생활비는 내가 꼬박 꼬박 보내 드리고 있으니까 걱정 마라.”
“거짓말 아냐? 진짜?”
그러자 올케가 나섰다.
“네 아가씨 집 나가시고 나서 어머님께서 전화 하셔서.”
그럼 그렇지.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하고 분한 걸까. 나 아니면 꼭 굶어 죽을 줄 알았는데. 뭔가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말없이 돌아서려는데 전혀 예상 못한 말이 들려왔다. 바로 오빠의 입에서.    
“승희, 너도 결혼해야지. 그동안 가족들 위해 일하느라 고생 많았다.”
속에서 울컥 하면서도 말은 거칠게 나왔다. 내 가족들은 나를 비롯해서 공치사를 하거나 부드러운 말은 아예 할 줄도 모른다. 거칠게 비난하고 욕하고 험담부터 먼저 한다. 어쩌다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 온몸이 근질거리며 어색하고 생소해 불편하다.
“언제부터 내 생각을 그렇게 했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너도 이젠 사랑 받고 사랑하며 살아야지.”
“성인군자 같은 말 하고 자빠졌네, 지가 언제 내 생각해 주었다고.”
그러나 마음속에선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살다보니 별 소리를 다 듣겠네, 아직도 나한테 빼앗을 게 있는 모양이지.”
“부모님도 이젠 많이 늙으셨어 이젠 그만 돌아가라,”
“너나 돌아가. 너나 아들 노릇 제대로 해. 나한테 떠넘길 생각 말고.”
모든 게 위선과 가식으로 보였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말을 듣고 있자니 어색하고 불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언제 너하고 나하고 이런 대화 나눌 시간 있었냐,”
“공연히 착한 척하고 있네.”
“아가씨 그동안 마음 고생 많이 한 거 다 알아요, 앞으론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고진감래라고 고생 끝에 낙이 있다잖아요.”
어쭈 제법인데. 그러나 그 말이 왠지 싫지 않았다. 고진감래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 앞서 유투브에서 본 그 여자들처럼.
“그런데 어떻게 날 알아볼 생각을 한 거야?”
목소리가 약간 누그러지면서 부드러워졌다.
“그럼 못 알아보냐? 하나밖에 없는 내 핏줄 여동생인데,”
언젠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불쌍하다고 눈물 흘리던 모습이 생각났다.
“미안하다. 오빠 노릇도 못하고 상처만 주어서.”
“나 돈 없다니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넌 돈이 다냐?”
“그럼 뭐가 단데?”
“이제라도 대학 가서 못 한 공부 마저 해라. 내가 밀어줄게.”
“웃기고 있네, 대학갈 생각도 능력도 없지만 니 도움 받을 생각은 먼지만큼도 없다. 공연히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고 있네, 그렇게 안심시켜 놓고 내 남은 돈 몽땅 빼앗아 가려는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딸한테는 독사같이 굴면서 며느리한테 잘하라고 훈시를 하던 내 부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딸 팔아 아들 구한 유투브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난날 가족으로부터 당했던 상처와 분노로 피해의식이 재생산 되고 있었다. 팔자에도 없는 여행 왔다가 저것들한테 덤태기 씌우는 건 아닌지 자꾸만 의심이 되었다.
평소에 온갖 악담과 착취만 당하고 살다가 살가운 소리를 들으니 어색도 하거니와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고도의 속임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도 말투도 다 연기 같았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의심하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이 연민으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았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에 대한 원망과 설움이 통곡으로 터지는데, 바닷가를 산책하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가까이 와 구경하고 있었다.
성난 파도가 내 발끝을 간지럽히며 발목이 모래에 푹푹 빠지고 있었다.
그때 내 손에 무언가가 쥐어지고 있었다. 하얀 봉투였다. 안에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다.
누가 이런 거 달라고 그랬니?
던지려고 하는데 오빠 부부가 저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울음이 그치면서 궁금증이 일었다. 신용카드라. 잔금이 얼마나 남았을까. 정말 내가 써도 되는 걸까. 그런데 저 인간들이 혹시 미친 거 아닐까. 어떻게 나를 믿고 이걸 주었을까. 나는 카드를 두 손에 꼭 쥔 채 모래사장을 정신없이 뛰어 갔다.
이건 분명 현실이 아니고 꿈속일 거야. 아니면 내 상상드라마의 한 장면이거나, 제발 꿈이라면 깨어나지나 말라.
돌아오는 경강선 열차는 쾌속으로 질주했다. 열차 안에 앉아 있는 동안 처음으로 안락함을 느꼈다. 마음의 여유가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다. 가난과 불운에 응어리졌던 결박이 조금 느슨해진 것 같았다. 이젠 나 자신한테 좀 더 너그러워지도록 하자.
스마트폰에 문자음이 울렸다.
내게 상담세미나와 교회 출석을 권유했던 직장동료가 보낸 메시지였다. 내일 새신자 초청 대잔치가 있는데 딱 한번만 와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받은 도움도 있고 해서 딱 한번만 가주겠다고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결심했다.  
나 자신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내 만족감을 추구하며 살자. 돈보다 더 귀한 가치를 추구하며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좀 더 노력하자. 스마트폰을 여니 소통에 관한 사이트도 여럿 있었다. 그들 역시 가정에서부터 많은 상처와 어둠이 있었다.
그러기에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문화의 편리성은 홍수같은 정보력을 제공하며 상상 외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작으나마 악의 행태에 대해 공분하며 의를 나타내고 있다.
인터넷 망으로 소통하며 사회악을 고발하며 공분함으로 선한 영향력도 끼치고 있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안에 쌓였던 부정적인 악감정이 많이 해소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든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내게 누군가 다가와 사랑의 언어를 들려준 것도 같다. 기억이 안 나서 그렇지 상담자 역할을 해주며 배려해 준 은인도 있었다.
직장 동료를 따라 교회 본당 안에 들어섰을 때 성구(聖句)가 써진 대형 현수막이 보였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설교 도중 목사가 힘주어 외쳤다.
그리스도께서도 고난과 수치와 가시밭길을 가셨는데 내가 못 갈 이유가 무엇인가. 내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성육신 하셨는데 이보다 더 큰 희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을 왜 피하려고만 하는가.
나는 설교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가만히 교회 문 밖을 나서는데 회사 동료가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유투브를 열었다. 희대의 살인마 장하영이 입양한 땅 정인이를 끔찍하게 학대해 죽인 정황이 실시간대 별로 보도되고 있었다.
공분에 찬 시민들이 남부지검으로 몰려가 울부짖으며 사형을 외치고 있었다. 살인마 부부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뒤집어 쓴 채 범행 사실을 계속 부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형 당한 죄인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각계 전문가가 나서 그들의 죄상을 소상하게 보도하면서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공분된 분노가 의(義)를 나타내면서 사람들은 계속 사형을 외치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서도 분노가 통곡이 되어 그들과 합류하고 있었다. 겨울 하늘에 미세먼지가 날리며 슬픔이 고조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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