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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서설) 가뭄1
mount ( HOMEPAGE )12-14 07:21 | HIT : 123
                                                 가뭄
      
  하얀 화면 속에 정지된 시간이 머무는 동안 커서(cursor)는 가느다란 생명체가 되어 긴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자동차처럼 할딱이고 있었다. 그는 한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제목도 잊어버린 인기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환자의 최후를 알리는 호흡기의 멈춤이 길게 이어지는 직선의 외침으로 이승에서의 허무한 삶이 저승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깜빡거리는 커서 위에 겹쳐서 나타났다. 환자의 가족은 간호사를 부르고 간호사는 의사를 호출하여 급하게 환자에게 다가갔을 때 의사는 잠시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면서 주저하지 않고 환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하고 병실을 나갔다. 그러나 드라마처럼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누군가의 선고가 없어 다행이리라 생각을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먹먹해졌다. 차라리 사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면 포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멍하니 빈 공간에서 할딱이는 모습을 응시하고 있어도 사망을 알리는 통지는 없었다. 단지 깜빡이는 커서를 따라서 그의 영혼도 불규칙적인 파동을 일으키며 거친 호흡을 하고 있을 뿐 이었다.

  넓은 공간에 무엇인가를 뱉어내야 한다는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는 그대로 커서조차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가 어떤 동작을 보여주지 못하면 그 다음날이 되면 독설이 강하기로 유명한 편집장은 있는 말 없는 말을 동원해서 그에게 욕보다 더한 말을 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는 잠시 그녀의 독설을 듣고 있다가 ‘씨부럴’이라는 말을 남기고 휴대전화기를 침대 위로 집어 던질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휴대 전화기에서는 그에게 향한 그녀의 거친 말이 계속 흘러나올 것이다. 한참 동안 머리를 감싸고 있다가 아무래도 자신이 을(乙)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는 언제 그랬나는 듯 씽긋 웃으면서 갑(甲)인 그녀에게 ‘미안해요 선배’라는 말을 할 것 이다. 그 말을 들으면 그때까지 컹컹 소리를 지르던 그녀도 ‘아니야. 그래도 내가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냐. 내일까지 원고 안 보내면 내가 네 침대에 누울 거야.’라고 말을 할 것이다. 그는 그 말에 껄껄 웃으며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꼬랑지를 내리고 잘 자라는 말을 할 것이다.

  그는 잠시 커서의 깜빡거림을 보았다. 겨우 호흡기에 의지해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중환자처럼 그곳에 머물고 있는 커서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컴퓨터의 커서를 그대로 놔두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면 분명 세상은 검게 변하고 그가 돌아와 깨울 때까지 깊은 잠을 자리라 생각했다.

  그가 소설을 써 내려가다가 막히거나 그의 생각이 중단되면 답답한 그의 집을 벗어나 어디론가 잠시 쉴 곳을 찾아 떠나곤 했다. 그가 찾아간 곳에서 잠시 쉬면서 진행 중인 소설의 실마리를 풀면서 자신의 머릿속에 이야기를 채워오는 것이 습관화 되었다. 그가 가끔 가는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땅콩을 씹거나 옆에 앉은 여자의 스커트에서라도 무엇인가 그의 뇌뢰에 잡히는 것이 있으면 그는 술값도 치루지 않고 다시 돌아와 작업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그것은 카페의 여주인과의 약속이었고 그는 외상값이 되어버린 술값을 그 다음 날에 철저히 값아 주었다. 여주인은 그의 그런 행동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의 카페가 한 소설가의 상상의 자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왔고 그가 손만 뻗으면 언제든지 닿을 수 있도록 행동했지만 그는 철저히 자신을 이성의 끈으로 단단하게 묶어놓으면서 방어막을 펴고 있었다.

  사실 카페에 가는 것 보다는 그는 자연 속으로 달려가는 때가 많았다. 저수지가 보이는 산에 올라가 넓은 저수지와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때도 있었다.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을 보고, 황금들판의 주인공인 벼를 보면서도 그의 머릿속에 끊어졌던 선을 이어오곤 하였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복잡한 사연을 이어나갈 때는 가끔 오일장에 가서 물건을 파는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머니들이 가지고 온 콩이나 과일을 사면서 이야기 끈을 찾아내 풀어나가기도 하였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지하 1층의 버튼을 누르고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지금은 지상으로 내려가는 시간입니다. 오늘 제가 머무는 곳에서 무엇인가 떠오르게 하소서. 그녀가 제 침대로 들어오는 날에는 모든 것이 끝장납니다. 그녀의 욕설을 밥으로 먹을 자신이 없으니 제발 하루 동안에 기적이 일어나게 해 주소서. 대작은 아예 바라지도 않습니다. 편집장의 입을 막을 수 있을 정도만 되면 되니 마음속의 가난을 이겨내고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를 주소서.’ 그가 기도를 하는 동안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지만 그는 숭고한 의식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눈을 뜬 것은 향수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향수의 냄새로 보아 9층 노처녀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눈을 감았는데도 향수 냄새로 그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수는 늘 같았기 때문에 그녀로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다가 들킨 사람처럼 멋쩍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그의 모습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호기심이나 궁금한 점이 없었다. 그녀가 그를 보면서 ‘또 발작이 일어나는 군?’이라고 그에게 말을 한다 해도 그는 그녀에게 아무 할 말이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행동을 보면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할 때 그녀가 그에게 궁금해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는 그녀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명예퇴직을 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반 이상은 ‘바보처럼 무엇 때문에 명예퇴직  했니? 능력이 없어서 일거야. 그렇지? 그러니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서 살지’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는 그녀도 분명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것이 완전한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태도를 보면 분명 그의 생각이 맞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들렸고 문이 열리자 그들은 함께 문을 나섰다. 그들의 그런 모습만 보면 누군가는 그들을 부부로 착각 할지도 몰랐다.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그는 그녀에게 편집장에게 들은 독설보다 더한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잘난 척을 하고 다니니 남자들이 너에게 관심을 가질 리가 없지. 그러니 너는 평생 노처녀로 살아갈 거야.’ 그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생각에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의 자동차를 찾았다. 그런데 우연인지 그의 자동차 옆에 그녀의 자동차가 머물고 있었다. 사실 그의 자동차는 십 년이나 되었고 가끔 병원에 가야하일이 발생하였지만 그리 먼 거리를 운행하지 않으니 그 상태로 그의 발이 되어주는 것 만해도 감사할 뿐 이었다. 그에 비해 그녀는 일 년 전에 새로 산 붉은 색의 중형차를 가지고 있어 가끔 주차장에서 그를 만날 때 마다 어깨에 힘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먼저 주차되어있던 자동차를 빼 주었고 그녀의 자동차가 그의 자동차의 꼬리를 물고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외곽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그가 생각하는 ‘가난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 방향을 바꿨다. ‘가난한 곳’은 그가 만든 이름이었고 그를 제외한 어떤 사람도 그가 생각하는 ‘가난 한 곳’이 어디인지 몰랐다. 그가 친구들에게도 ‘가난한 곳’을 말했을 때 그의 친구들은 정말 그가 명예퇴직을 하니 가난해 져서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예 술값을 내는 명단에서 제외시켜버렸다. 그는 그 덕분에 절약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행동이 계속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은 아예 술집에 갔을 때 미리 술값을 내고 그 한도 내에서 술과 안주를 달라는 말을 했다. 그의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인천댁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고 그 이상의 술값이 나와도 그에게 더 이상은 청구하지 않았다. 그녀가 매번 몇 만원은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자신의 행위가 비겁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아예 그의 카드를 맞기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러니 그의 친구들은 그가 밥을 살 때 마다 그가 가난에서 벗어났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쥐꼬리 같은 원고료를 타서 그 돈으로 자신들과의 술자리나 밥을 먹는 것으로 사용할 것이라 추축을 했다. 그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때마다 그는 자신이 명예퇴직을 했지만 연금이 나오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그가 반은 일시불로 찾아서 그의 부모님의 병원비로 써서 나오는 연금으로는 아파트 관리비 내고 의식주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난 한 곳’은 물론 그가 지은 이름일 뿐 그 장소는 모두에게 공개된 곳 이었다. 아마 둔하기로 유명한 편집장이나 빨간 차를 소유하고 허세를 부리는 노처녀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비시시 입술 사이로 빠져나왔다.
  그가 한참 동안 달려서 도착한 ‘가난한 곳’에 놀랍게도 빨간 차가 먼저 주차되어있었다. 실망 하지는 않았지만 왜 빨간 차가 그곳에 주차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의 비밀의 장소가 드러난 것에 대해서 실망을 할 틈도 없이 그가 찜 해 두었던 분화구로 갔다.

  분화구 한 쪽에 노처녀가 사진을 찍고 있었고 그녀는 그를 보자 까르르 웃으면서 자신의 비밀정원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찜해 놓은 곳이 드러나고 거기다가 비밀의 정원을 운운하면서 말하는 모습에서 무엇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분화구가 비밀정원이라면 우주인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그는 그녀에게 우주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대꾸를 하지 않고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고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그녀의 모습을 찍었다.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다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서 자신이 그리 예쁘냐고 물어보았고 그는 외계인을 찍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외계인이 되었으니 오히려 더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화를 내기를 기다렸는데 웃음으로 되돌아와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녀는 카메라로 그의 사진을 찍었고 그를 불러서 뷰 파인더 속의 남자를 외계인의 남자친구라고 말해서 그 자신도 외계인이 되어버렸다.  

  그는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그녀의 카메라를 빼앗아 그녀의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순간적으로 그런 자신의 행동에 의문이 갔다.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그저 한 공간에서 잠시 머물고 있다고 그녀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 그리 변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그녀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그는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녀 말했던 외계인이 다른 외계인 사진을 찍었다. 그는 친절하게 그녀에게 이곳이 ‘가난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곳은 가난한 곳이 아니라 초원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이고 그녀의 비밀 정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겁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에게 말 하듯이 나긋한 톤으로 말을 했다. 물 한 방울 없는 분화구가 왜 오아시스인지에 대해서 묻고 싶었지만 꾹 참으면서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분화구는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었고 그 사이에는 풀이 돋아나고 있었다. 어쩌면 초원속의 오아시스라는 말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그가 잠시 가지고 있던  자신의 카메라를 뺏어들고 넓은 초원을 돌아다니면서 그녀만의 사진을 찍었다. 그는 분화구에 빨려들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가 다른 분화구가 궁금해서 천천히 다른 분화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약간의 물이 남아있는데 그 안에 있던 물고기들은 이미 백로의 먹이가 되었고 얼마 남지 않은 물이 힘들게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다. 바닥에 고인 물도 이제 하루만 지나면 마르고 바닥도 거북등이 되어서 그 사이에 또 다른 생명체를 탄생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가 방문한 두 번째 분화구는 작았다. 중간 중간에 흙이 굳어져 바위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표면에는 많은 구멍이 있어 마치 화산재처럼 다가왔다.

그가 신비로운 가난한 곳의 모습에 빠져있을 때 그녀가 멀리서 손을 흔들어 그를 부르고 있었는데 마치 연인인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어 웃고 말았다. 그는 마음속에는 그런 동작이 어이가 없었지만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가 부르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흙 위에 올라와 있는 조개를 가리켰다. 그는 재빨리 조개이름이 ‘귀이빨대칭이조개’라고 말을 하였고 그녀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에게 생물학을 전공하였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피식 웃으면서 심리학이라고 말했고 그녀는 의아스럽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개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가 왜 심리학을 전공했는지에 대해서 더 흥미로워했다. 사실 그가 심리학과에 가게 된 것은 그가 그 쪽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그의 고등학교 내신 성적 때문이었다. 입시상담을 할 때 그의 성적을 훑어보던 고등학교 삼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그의 집에서 멀지 않는 대학의 심리학과를 권했다. 그의 담임선생님은 심리학과에 들어가도 열심히 공부하면 그가 꿈꾸던 교사가 될 수 도 있다는 말을 하였다. 이 말은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그의 부모님도 그가 교사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추천한 대학이 국립대학이니 학비도 많이 들어가지 않고 통학도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는 교직과목을 이수했고 운이 좋게도 도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교사임용고시에 졸업을 하던 해에 최종 합격 하여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한 중학교에서 도덕교과를 지도하였다. 물론 여려 학교로 옮기면서 생활을 하였지만 거의 한 시간 거리에 있어 자동차로 통근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 주거지를 옮기는 일은 없었다.

  그는 조개에 대해서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가장 큰 민물조개로 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되었다는 말과 아예 먹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조개를 트럭으로 가져다주어도 먹을 생각은 전혀 없다는 말을 하자 그녀는 조개의 살이 질겨서 먹기에도 부담이 간다는 말로 그의 입을 막았다.

  초원위에는 여기저기에 조개뿐만 아니라 썩어가는 붕어도 몇 마리 볼 수 있었고 뼈만 남은 물고기의 모습도 발견되었다. 이곳에 가난이 드리우면서 생태계는 큰 혼란을 가져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가난한 저수지에서 무엇인가를 건져내려는 사람들을 보았다. 언뜻 보아도 베스 사냥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는 한동안 베스가 살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베스를 몇 마리 집어넣어 번식을 해서 베스가 많아졌다는 말도 있고 여기저기에서 베스가 흘러들어왔다는 말도 있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몰라도 저수지는 이미 베스의 점령이 시작되었고 베스 때문에 토종물고기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베스가 많아지자 베스를 잡으면서 손맛을 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우연히 보았던 장면은 그리 유쾌한 마음을 갖게 해 주지 않았다.

   얼마 전에 그가 저수지에 왔을 때 누군가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베스를 잡았다고 말면서 휴대전화로 인증사진을 찍고 순간적으로 그것을 그들의 카페에 올리면서 잡았던 베스를 그대로 물속에 넣어주는 것을 보면서 왜 잡은 물고기를 다시 놓아주느냐고 물었는데 그들은 빙긋 웃으면서 잡은 베스를 처리할 수 없어서 그런다는 말을 했다. 생태교란종인 베스를 놓아주는 것을 보면서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베스를 놓아주어야 다음에 그곳에 오는 또 다른 사람들이 베스를 잡으며 손맛을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몇 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는 동안 똑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물넘이 공사만 할 생각을 하고 바닥 준설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아서 저수지가 늘 그 모양 그 꼴이라는 말을 했다. 사실 몇 년 동안 가뭄으로 말미암아 바닥이 드러나서 쩍쩍 갈라질 정도였다. 마음만 먹으면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공사를 하면 담수양이 늘어날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관계자들은 그것을 알고는 있겠지만 실제적으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하늘만 원망하는 것은 조선시대의 일이고 지금은 저수지 준설로 그 만큼 더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일로 여기고 있었다.

  몇 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면서 저수지의 생태계도 이로 인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물고기가 죽고 귀한 귀이빨대칭이조개가 반쯤 흙속에 파묻힌 상태로 남아있는 등 정말 귀한 자연이 가뭄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난한 저수지에 대한 그의 생각과 일치하여 함께 열을 올리면서 그녀는 다시 분화구로 가자고 했다. 넓은 저수지는 가뭄이 들면서 바닥이 드러났고 그곳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 바닥에 풀이 돋아났으며 가끔 풀밭에는 새 둥지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저수지의 일부는 처음에는 사막이 되었다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초원으로 변하였고 초원은 서 너 개의 물웅덩이를 가지고 있었다. 웅덩이는 작은 운동장만한 것부터 열 평도 안 되는 웅덩이도 있었다. 몇 년 전부터 가뭄은 저수지를 가난 속으로 몰고 갔고 계속해서 웅덩이에는 물이 마르면서 분화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이곳의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니 사진작가들은 가난한 저수지를 찍기 위해서 전세버스까지 타고 내려오는 일이 있어 그들은 이곳의 가난을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그 부류에 속할지 모르는 속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곳의 사진을 찍어 ‘어떤 분화구’라는 제목으로 환경사진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작가도 있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그는 씁쓰름한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진은 반향(反響)이 일어 이곳 관리를 하는 곳에 불똥이 튀어 지사장이 경질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그 이유는 ‘저수지 관리 부실’이었다. 이 내용을 접한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어이없다는 내용의 민원을 발생시켰고 한 달 만에 지사장이 다시 복귀시키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자연의 일은 윗분만 알고 있는 것이지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것인데 어찌 ‘관리부실’이라는 단어로 그의 목을 떼었다 붙였다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역신문에서는 근시안적인 행정이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을 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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