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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탄다 하더이다
이 경옥08-31 14:57 | HIT : 94
*속이 탄다 하더이다


내 일이라면 땀을 얼마를 흘리던지 참고 할 만하다. 허나 남 일을 내 일 하듯 하기란 참 쉽지 않다.

하루는 S삼촌이 일꾼이 구해지지 않는다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쉽게 잡을 수 있는 손이 아니었다. 천평에 콜라비를 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골살이를 하는데도 햇빛알러지가 있는 나는 땡볕 아래 드넓은 밭에서 쭈그리고 해야하는 이 일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모르지 않다. 그런 나에게 자꾸 부탁을 해대니 아ㅡ어쩌란 말인가.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도 후유증이 심각할 것임이 눈에 뻔히 보이는 선택의 기로에서 침묵을 고수하자 S삼촌은 한숨까지 푹푹 내쉬며 한탄을 하니 마음 약한 여인네 어이할 수 없어 조건부 허락을 했다. 우리집 일도 삼촌이 도울 일이 있으니 일꾼으로서가 아니라 품앗이로 돕겠다는 것이었다. 새벽같이 나가서 하루종일 일 하기 힘든 내 육체와 정신을 위해 최대한 잔머리를 사용하여 선택한 방법이었다. 뭐 잠깐 가서 조금만 도와주고 오겠다는 심산이었단 말이다. 근데 이걸 워쪄.. 판단 실수였다. 조금은 무슨, 8시간을 일을 했다.  하루종일 한 것이나 다름없다. 혼자 일 다했다고 끙끙거리며 하소연 할 수도 없는 게 남편도 함께 도왔기 때문이다. 물론 나무꼬챙이로 비닐에 구멍 뚫고 서서 돌아다녔으니 쭈그리고 앉아 게걸음 걸으며 콜라비를 심던 나에 비해서 육체노동의 강도는 약했을지 모르겠다. 하늘 아래 탁트인 밭위에서 같은 햇살을 쪼이며 구슬땀을 흘린 건 매한가지니 니가 더했네 내가 더했네 말하는 것도 웃긴 일이겠다.

어찌어찌 시간은 가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려오고, 엉치부터 종아리까지의 근육은 터져나갈 듯 아파오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큼은 어린애처럼 울부짖는데 차마 자리를 떠나지는 못했다. 간간이 일어서며 농땡이도 쳐보지만 슬슬 굳어오는 발걸음이 질퍽한 흙무더기 마냥 들러붙어 쉬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굳이, 왜, 나는 이 상황을 초래했는가. 콜라비 모를 하나씩 뽑아 구멍에 던지며 쉴새없이 자신을 탓하다가도 우연히 구멍에 정상적으로 안착하는 콜라비 모를 볼 때면,

''오! 나 던지기에 재주가 있나본데~''

라며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삼촌과 남편은 어이없어 웃다가 박수도 쳐 주기도 했다. 나도 안다. 다들 힘든 상황인데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버겁게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 힘을 북돋아주고 싶었던 것일게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끝날 때까지 게걸음을 걸었다.

주말이다보니 점심은 집에서 아들과 간단히 먹고 오후에도 일을 도와야할지 말아야할지 또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몸에서는 쉰내가 폴폴 났고, 등짝을 바닥에 붙이면 그대로 잠이 들어도 무색할만큼 지쳐 있었다. 일단은 꾸물대며 집앞 작업장에 앉아 냉커피를 마시는데 남편이 담뱃불을 붙이며 말을 했다.

''내일부터 비도 온다는데 그냥 좀 더 도와주자. 혼자서 낑낑대는 모습도 안쓰럽잖아. 일단 한숨 돌리고 가자''

그래, 나도 아는데.. 그래서 언제 갈껀데 당신은 줄담배만 피누?  

외국인 일꾼 5명을 인력사무소에서 얻긴 했는데, 이건 뭐 일을 하러 온 것인지 수다를 떨러 온 것인지 도통 일의 진척이 없었다. 남편과 둘이 한고랑을 끝내는 동안 둘이서 한고랑을 못 끝내니 속이 터져서 원. 내가 고용주라도 되야 빨리빨리를 외치기라도 할텐데 충성심 강한 진돗개도 아니고 주인 눈치만 보니 옆에서 뭐라하지도 못하고 뒷골만 땡겼다. 하루 일당 13만원을 받는 그녀들은 3만원은 인력사무소에 넘기고 순일당 10만원을 받기 위해 일을 나왔다. 엉덩이깔개를 하고 뭉기적거리며 고랑을 움직였다. 지나가는 개미가 훨ㅡ씬 빠르다 느낄만큼 느려터진 움직임에 벙진 입이 다물 줄을 몰랐다. 나와 남편이 한고랑을 끝내고 나무그늘에서 좀 쉴라치면 이들의 손은 눈에 띄게 한량이 되었다. 저걸 죽여 살려.. 와ㅡ 나 환장하겠네. 품앗이로 일을 도와주기로 오긴 했지만 솔직히 모판이나 날라주고 부족한 부분만 채워주면 될거라 생각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일꾼보다 일을 더 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히려 일꾼들은 우리가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을 보며 모판을 바꾸는 횟수가 줄었고, 은근히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참다못한 남편이 S삼촌에게,

''18, 쟈들은 여기 수다떨러 왔냐? 니가 사장이니 한소리 좀 해! 아주 놀러왔네 놀러왔어''

''쟈들요? 뭐라고 하면 댑대로 큰소리 쳐요. 아쉬운 게 나지 쟈들은 시간만 떼우다 돈만 가져가면 된다는 입장이라니까요. 더 짜증나는 건 조금만 인상 쓰면 여긴 악덕고용주라고 소문내서 인력사무소에서 사람도 안보내요. 완전 쟈들 세상이에요''

''외국인 노동자 편에서 시위나 하지말고 이런 현장에 나와서 쟈들 하는 꼬락서니나 보지. 자꾸 나라에서 공짜로 코로나 검사에 백신에 사는 집까지 다 챙겨주라하니 이게 누구를 위한 나라냐? 열받아서 살겠나 원''

''형님, 야들은 그래도 일 잘하는 거예요~ 상추따는 곳 가는 애들은 서너박스 따고 십만원 받아가요. 환장하지 ㅋㅋㅋ''

''등신같이 그런 고용주가 있으니 쟈들 기세가 등등한거야. 막말로 일 못해서 안쓴다고 주인들이 배짱을 튕겨야지 쟈들도 한풀 꺾이지 아주 갑질도 저런 갑질이 없어''

둘의 대화는 답이 없었다. 결국 뻔한 스토리의 대화만 오가다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두세고랑 남아 있는 상태였고 퇴근 전 30분이 남았을 때, 남겨두기도 애매하니 일꾼들을 재촉했다. 놀러 온 S삼촌의 지인 둘과 우리 둘, 삼촌과 늦게나마 합류한 그의 아내까지 전부 달라붙어 시간에 간당간당하게 끝냈다. 시계만 확인하던 일꾼들은 종료시간이 되자마자 그대로 일어나 짐을 챙기고 뒷마무리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난 크게 한숨을 내쉬고 그대로 뛰어가 그녀들에게 '좀 치우고 가라!'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남일에 괜히 참견했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낼 수 있음에 그냥 꿀꺽 삼켰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것마냥 저녁 내내 속이 불편했다. 살짝 더위를 먹었는지 미열도 계속되고, 어지러움증이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기력해진 상황에서도 S삼촌이 고생했다며 저녁식사 초대를 하는데 메뉴가 무엇인지 물었다. 닭도리탕이라 했다. 흔쾌히 승락했다. 밥은 밥이고 아픈 것은 아픈거니까. 그날 저녁, 또 한번 외국인 일꾼들에 관한 주제로 열띤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역시나 답은 없었다. 바꾸려는 자와 바뀌지 않으려는 자들과의 눈치싸움은 법이 선을 긋지 않는 한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나저나 윗분들은 현실의 이런 상황에 대해 알고는 있을까? 아니, 알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10만원 받고 땡볕에서 콜라비 천평 심으실 분?
아마도 없으실 것이다. 그것이 외국인 일꾼이 살아남은 이유이며, 갈수록 콧대가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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